'송해라는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을 불특정 다수에게서 몇 차례 들었다. 모두가 '그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상 최고령 MC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던 송해가 지난 8일 향년 9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한국사의 굴곡을 모두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

그는 1927년에 태어났다. 송해와 동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의 전설인 구봉서나 배삼룡, 서영춘은 아득히 먼 존재였다. 이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많은 나이를 이유로 방송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1924년생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1927년생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았지만, 그들은 근현대사의 전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송해는 달랐다. 1990년대생인 나에게 있어, 그는 유일하게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는 1920년대생이었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 이희훈

 
모두의 놀이터를 지킨 어른

송해는 환갑을 넘긴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그리고 30년 넘도록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 학창 시절에는 <전국노래자랑>을 잘 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만 보는 프로그램 아닌가' 생각했다. 트로트 가락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느낀 것은 20대 이후였다. 

<전국노래자랑>은 매주 각 지역의 비연예인 참가자가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만큼 기상천외한 참가자도 가득하다. 지역 특산물을 무대 위로 들고나와 진행자에게 먹이는 것은 예사다. 온몸에 꿀벌을 붙인 채 등장한 남자, 과도한 스킨십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태지의 'Live Wire'를 열정적으로 부르던 논산시의 의사 , BTS의 '고민보다 Go'를 부르던 20대 여성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전국노래자랑>은 어린이와 청년,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없는 놀이터였다.

예측 불가능성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송해는 넉넉한 웃음을 끌어냈다. 어느 순간 그가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딩동댕'과 '땡'의 판가름은 애초에 본질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한바탕 즐겁게 놀면 그만이었다. 이 유쾌한 순간들은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도 전해졌다.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그의 힘찬 목소리는 일렉트로닉 음악가인 요한 일렉트릭 바흐에 의해 '전국 Handclap 자랑'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가 함께했던 일요일 오전의 공기

그는 방송 역사의 거인이었지만, 젊은이들을 굽어보는 원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너털웃음을 짓는 동네 어른에 가까웠다. 2018년 출연한 KBS2 <대화의 희열>에서 그는 자신이 목격한 퀴어 축제를 언급하면서 "그곳에서 배울 게 많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도 우리가 한 번 체험을 하는구나"라며 흐뭇해했다.

그는 기성 세대의 눈으로 젊은이의 세계를 재단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울 것을 찾는 어른이었다. 송해의 95년 인생은 한국의 다사다난한 현대사와 걸음을 같이 했다. 그의 개인사 역시 현대사처럼 굴곡이 가득했다. 1.4 후퇴 당시 고향의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실향민이 되어 평생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그리워했고,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삶의 황혼기를 지나 가장 큰 꽃을 피워냈다.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평범한 이웃들과 수십년간 어울려 놀았다.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송해의 부고 이후,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조부모를 떠올리며 슬퍼했다. 우리에게 그는 '그 자리에 당연히 있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운명을 다시 상기해야 했다. 누군가는 할아버지와 함께 전국노래자랑을 보았던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운 공기를, 누군가는 송해의 팬이었던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이 나의 교과서다'라고 말한 그는 동시대인들의 친구였다. 지하철을 타면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한 그릇에 2천원 짜리 우거지 국밥을 즐겨 먹었던 모습은 여전히 회자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에게 팬데믹은 유독 야속했다. 2020년 2월 전남 화순 편 이후 '전국 노래자랑'의 현장 녹화는 2년 3개월 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나 송해는 매주 비대면 형태로 펼쳐지는 스페셜 녹화에 나서면서, 끝까지 프로그램의 명맥을 지키고자 했다. 그가 지켜온 <전국노래자랑>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 녹화를 재개했다.

"산도 넘고 강도 건너 나 여기 서있네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네
지나온 길 생각하면 아쉬움이 너무 많은데 좋은 친구 좋은 이웃 내 곁에 함께 있으니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

- '내 인생 딩동댕' 중


지난 1월, KBS는 송해의 일대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 < 2022 설 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를 편성했다. 방송 말미 직접 무대에 오른 송해는 자신의 노래 '내 인생 딩동댕'을 힘주어 불렀다. 작별 인사처럼 들리는 이 곡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이만하면 괜찮다'며 떳떳하게 회고한다. 세월이 자연스럽게 만드는 품격에 탄복했던 순간이다.

나는 '호상'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천수를 누렸든, 요절했든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언제나 허망한 일이니까. 그러나 '일요일의 남자'가 남긴 것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훗날 송해의 이름을 회고할 때마다, 우리는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힘찬 구호, 영롱한 실로폰 소리를 떠올리며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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