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들이 특별한 부상 없이도 슬럼프에 빠지는 기간이 있는 것처럼 배우들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배우들의 슬럼프는 주로 자신과 비슷한 매력을 가진 신선한 배우가 등장하거나 특정 이미지가 지나치게 많이 소비돼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줄 때 찾아오곤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슬럼프가 길어지면 그 배우는 대중들에게 '전성기가 지난 한 물 간 배우'로 잊히기도 한다.

1990년대 초·중반 1년에 3~4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영화계를 지탱했던 박중훈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석규,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등 신진세력(?)이 급부상하면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불후의 명작>,<세이 예스>,<투 가이즈>,<강적> 등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하면서 슬럼프는 더욱 길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박중훈은 2006년 <라디오 스타>를 통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커리어 내내 <장군의 아들>의 하야시나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으로 대표되는 진중하고 근엄한 역할을 주로 연기했던 신현준 역시 연기 폭이 그리 넓은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2006년 배우생활에 큰 도전이 된 변신을 통해 자신의 연기 스팩트럼을 넓히며 슬럼프에 빠질 뻔한 위기에서 탈출했다. 개봉한 지 1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야시, 황장군과 함께 신현준을 대표하는 3대 캐릭터 중 하나로 기억되는 <맨발의 기봉이>다.
 
 <맨발의 기봉이>는 2005년에 개봉한 <말아톤>과 소재가 겹쳤음에도 전국 230만 관객을 동원했다.

<맨발의 기봉이>는 2005년에 개봉한 <말아톤>과 소재가 겹쳤음에도 전국 230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쇼박스

 
엄격·진지·근엄 연기 전문 신현준의 변신

신현준은 체육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임권택 감독이 신작 영화에 신인배우들을 위주로 캐스팅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에 도전, <장군의 아들>에서 '최종보스' 하야시 역에 캐스팅됐다. 사실 일제시대의 야쿠자 두목 하야시는 최소 30대 배우가 맡아야 어울리는 역할이었지만 당시 신현준은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청년이었다. 하지만 신현준은 좋은 피지컬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하야시 캐릭터를 잘 소화하며 1992년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상민,이일재 등 <장군의 아들>에 출연했던 주역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신현준 역시 <장군의 아들> 3부작을 마친 이후 배우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신현준은 1995년 손창민, 이병헌, 김희선과 함께 출연한 KBS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권산을 연기했다. 1996년에는 강제규 감독의 장편데뷔작 <은행나무 침대>에서 황장군 역으로 주인공 한석규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며 비로소 하야시의 색깔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현준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상만가>,<마리아와 여인숙>,<퇴마록>,<싸이렌>,<블루>,<페이스> 등이 흥행에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2004년 <가문의 위기>로 560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진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렇게 황장군의 이미지를 깨지 못하던 신현준은 2006년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맨발의 기봉이> 이후 <가문의 부활>로 340만 관객을 모은 신현준은 2007년 <마지막 선물... 귀휴>에서 무기수 살인범인으로 변신했고 2009년에는 소지섭, 한지민,채정안과 함께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 출연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드라마 <각시탈>에서 이강토(주원 분)의 형이자 '1대 각시탈' 이강산을 연기했다. 이강산은 6화에서 하차하는 짧은 역할이었지만 신현준은 20년의 연기 내공을 쏟아내며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각시탈> 이후 드라마와 영화 출연이 뜸했던 신현준은 김영준 감독의 신작 <귀신경찰>을 촬영하며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인간극장' 실화 영화화한 작품
 
 신현준은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하야시와 황장군의 진지하고 근엄한 이미지를 깨고 연기변신에 성공했다.

신현준은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하야시와 황장군의 진지하고 근엄한 이미지를 깨고 연기변신에 성공했다. ⓒ (주)쇼박스

 
<맨발의 기봉이>는 지난 2003년 KBS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방영됐던 '맨발의 기봉씨'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렸을 적 열병을 앓아 지적장애를 갖게 된 엄기봉씨는 실제로도 하프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20km를 완주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실존 인물의 본명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사용했고 기봉씨의 이야기에 워낙 극적인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맨발의 기봉이>는 영화적으로 각색한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맨발의 기봉이>에서 가장 유명한 명장면(?)이자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던 기봉이가 상추에 밥을 쌓으며 "하나 올리고, 하나 더 놔!"라고 장난을 치는 장면은 실제 인간극장에서 나왔던 기봉씨의 일화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신현준은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맨발의 기봉이>는 권수경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연출은 물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권수경 감독은 2011년 옴니버스 영화 <피아니시모>에 참여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조정석과 도경수 주연의 <형>을 연출해 290만 관객을 동원했다.

수경 감독은 지난 4월 손호준, 이규형, 허성태 주연의 <스텔라>를 선보였지만 전국관객 10만을 넘지 못하고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정상급 희극인에서 청룡영화상 조연상까지
 
 1989년과 1991년 KBS코미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임하룡은 2005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9년과 1991년 KBS코미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임하룡은 2005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주)쇼박스

 

<맨발의 기봉이>에서 기봉이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장으로 있는 다랭이 마을에서도 유명인을 배출해 이장직을 연임하고 싶었던 백이장의 욕심 때문이었다. 여기에 이가 좋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어머니(김수미 분)에게 틀니를 해드리고 싶었던 기봉의 효심이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모진 사람이 되지 못했던 백이장은 기봉이 심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오히려 기봉의 마라톤대회 출전을 만류한다.

백이장 역은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배우보다 코미디언으로 더욱 익숙한 임하룡이 연기했다. <도시의 천사들>과 <추억의 책가방>,<귀곡산장> 같은 인기코너에 출연하며 최고의 희극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임하룡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에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하사 장영희를 연기하며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시 컨츄리 꼬꼬의 멤버이지만 2007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예능인으로 더 유명한 탁재훈도 <맨발의 기봉이>에서 백이장의 아들 여창 역으로 출연했다. 여창은 어머니의 제삿날에도 술에 취해 귀가할 정도로 문제아지만 기봉의 순수함과 성실함에 점차 교화돼 기봉을 응원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기봉의 어머니를 마라톤 대회장으로 모시고 가는 기특한 행동을 했다.

읍내 사진관에서 일하며 단골손님인 기봉을 응원하는 정원 역은 2000년대 초반 N세대 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김효진이 맡았다. 기봉의 마라톤 대회장을 찾아 그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맨발의 기봉이 권수경 감독 신현준 임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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