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세상을 뒤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이 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사건을 해결하거나 세상에 알리기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의 활약 덕분일 수도 있다. 소위 'N번방 사건'이 그런 경우다. 이 사건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2018년 하반기부터 2020년 3월까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앱을 통해 피해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유포했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기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의 자극성과 잔혹성에만 집중하면 자칫 문제의식이 확장되기 어렵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이하 <사이버 지옥>)는 이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던 사람들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사건의 처음을 추적한 사람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장면 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장면 중. ⓒ Netflix

   
<한겨레> 김완 기자는 텔레그램에서 일어나는 성착취 제보가 처음 왔을 때, 이것이 취잿거리가 되는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아동 청소년 음란물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런데 제보 안에는 구체적인 IP와 가해자의 자세한 신상이 있을 정도로 세세했고, 김 기자는 이를 '단독'으로 기사화했다. 

소위 '박사'를 잡아야 한다는 제보 메일을 받고 박사의 신상을 알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이들이 'N번방'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박사방'에서 꾸준히 'N번방'이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N번방' 특별취재팀이 결성된 이후에야 이들은 이전에도 'N번방' 관련 내용이 보도된 적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추적단 불꽃'이 등장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은 기자를 지망하는 대학생이었다. 불법 촬영을 주제로 기사를 쓰게 되면서 N번방에 직접 들어가 성착취의 현장을 목격한다. 허위 링크를 통한 피싱으로 신상정보가 가해자들에게 넘어가고, 그렇게 성적 협박을 당하게 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중 일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중 일부. ⓒ Netflix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강원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한다. 이후 불꽃과 수사관는 수사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채증에 나선다.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한 유저 '래빗' 검거에 성공한다. '래빗'은 'N번방' 사건 당시 최초로 검거된 인물이다. 그러나 한 명을 잡는다고 무자비한 성착취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계속된 추적과 기록이 필요했다.

변화를 만들어 낸 사람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중 일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중 일부. ⓒ Netflix

 

하지만 큰 반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이 내놓은 여러 번의 단독 기사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회적 무관심과 그것을 조롱하는 듯 계속되는 박사의 협박. <한겨레> 특별취재팀과 불꽃이 직면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지켜보던 방송국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경찰청의 사이버수사대도 수사를 진행하면서 박사를 검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의 사건기록까지 다시 검토하며 '박사장', 즉 박사의 지시를 받는 범죄자들 간의 연결고리를 파헤쳤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박사방을 운영했던 주모자, 조주빈은 결국 검거되었다.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경찰서로 연행되었지만, 끝끝내 피해자들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갓갓마저 익명의 해킹 그룹 도움으로 검거됐다. 

다큐는 언론인, 대학생 활동가, 기자, 시민 등 총 24명의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사건을 추적하고, 그 사건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18일 이 다큐가 공개되고 난 후 국내 넷플릭스 영화 랭킹 1위에 등극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 베트남, 홍콩, 일본 등지에서도 톱10에 진입하면서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는 중이다.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했던 점이 흥행요소가 아닐까 한다.

또한, 이 작품이 보여주는 윤리적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24명이라는 꽤 많은 수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와중에도 피해자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을 연출한 최진성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를 직접 인터뷰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처음부터 선택지에서 배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 감독은 또한 "사건의 실체를 잘 드러나게 하면서도,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안 가는 연출"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작품 마지막,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 문제를 다뤘겠느냐?'라는 질문에 이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진정한 책임의식이란 이런 게 아닐까.

"저는 요새 많이 하는 생각이 뭐냐면, '아, 11월에 왜 그거 안 파 봤지?', '왜 그거 더 안 물어봤지?' 하물며 '그때 왜 그거 나 캡처 안 했지?', '지금 했던 것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좀 더 빨리 잡히게끔 영향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한겨레 오연서 기자)

"저는 작년으로 돌아가면 (이 취재를) 2월부터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 빨리 멈추게 해야죠. 할 수만 있다면 갓갓과 조주빈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서 올바르게 선도해야죠." (추적단 불꽃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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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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