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에선 극장 개봉 위주로 '독립' - '예술' 영화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을 개봉시기에 맞춰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극장 개봉이 영화 소개의 절대 기준이 아니게 되고, '온라인 개봉'이라는 변칙적 용어가 사용되는 빈도가 늘어간다. 예전부터 사실상 VOD나 IPTV 서비스 제공에 '개봉작'이라는 글자를 보태기 위해 1일 개봉, 심지어 1회 극장 상영 후 곧바로 온라인 서비스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개봉영화의 수량만 따져도 대체 언제 이 많은 영화가 개봉했지? 하는 의문이 당연하게 들 정도다.
 
적지 않은 독립예술영화가 극장 개봉을 끝내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개봉에 따른 추가비용 소요 때문일 것이다. 많으면 영화 제작 비용의 1/2, 기본으로 잡아도 1/3 정도의 예산이 별도로 준비되어야 극장에 영화를 걸 수 있다.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 걸기 싫어할 감독이 어디 있으랴마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일화처럼 전세금 빼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이미 주변 가용자원 총동원한 터라 흥행 전망이 없는 해당 부류의 영화가 개봉 비용을 염출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고 쇼 케이스 형식으로 영화제에 걸릴 때마다 감독과 피디, 제작사는 개봉지원 프로그램에 사활을 건다. 공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개봉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프로그램 지원에서 기회를 잡지 못할 경우 속칭 '장롱영화'가 되곤 했다. 과거엔 '서랍 속의 영화', 요즘엔 '외장하드 속의 영화'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계속 신작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애초에 수익을 상정하지 않은 단편이나 실험영화 말고 장편영화의 경우는 어떻게든 세상에 선을 보이고 약간이라도 손해를 벌충해야한다. 그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매일 여러 편의 영화가 '개봉'이 아닌 '공개' 형태로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물론 재미나 화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장 법칙에 따라 걸러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당연히 나올 수 있다. 상당수 경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국내 극장 생태계에서 불운하게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품의 비율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수준이다. 그래서 가끔 세상이 존재 유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계선 상의 영화들도 소개하려 한다. <지구별 방랑자>는 그 첫 번째 주자가 될 테다.
 
'디아스포라'는 내 운명?! 어느 세계시민의 초상
 
 영화 <지구별 방랑자> 포스터

영화 <지구별 방랑자> 포스터 ⓒ 늘샘

 
농담 삼아 한국독립영화계에서 '로드무비'의 장인이라면 유최늘샘 감독이라고 주위에 언급하곤 한다. 빈말만은 아니다. 그의 어느덧 두 자리 수 넘어선 작품목록은 거의 전부 길 위의 이야기다. 특히 감독의 이름을 소수이나마 각인하게 만든 대표작들은 온전히 감독 본인의 여행 기록에 기반을 둔 내용들이니.

1984년생 감독은 대안학교를 다닌 후 10대 후반부터 가족에게서 독립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모아 생활을 해결하고 틈틈이 영화를 제작해 왔다. 그의 작품목록 중 첫 번째를 장식하는 <노동자의 태양: 편의점 야간 파트타이머의 고통> (2009)는 우리가 2030세대의 취업절벽과 청년 빈곤을 떠올릴 때 첫째 이미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체험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다. (그에겐 이미 19번째 일터였다고 한다.) 그리고 몇 해 후 감독은 인력소개소를 통해 건설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일상을 기록한다. 세종시 건설에 전기배관공으로, 당진 현대제철소 형틀공사 보조로 체험한 '노가다' 현장은 후속작 <건설노동자의 날품> (2012)으로 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된다.
 
'흙수저' 청춘의 전형적인 삶 중간에도 감독은 꾸준히 현대 판 무전여행을 기획하고 결과를 영화로 옮긴다. 한 푼씩 모은 돈으로 2011년 봄, 38일 동안 그가 가본 적 없던 구석구석 26개 지역을 여행하며 만난 100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한 인터뷰 영화 <남한기행-삶의 사람들>(2011)가 그의 '로드무비' 시리즈의 1번으로 등장한다. 국내를 돌았으니 다음번은 해외다. 두 번째 '로드무비' 방향을 감독은 야심차게 잡았다.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 승려 혜초가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여정을 21세기에 뒤따르기로 한 것이다. 중국에서 인도까지 8개국을 방랑하며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기록하는 '디지털로 쓰는 21세기 천축국전'을 의도한 기획은 <늘샘천축국뎐> (2013)으로 완성되었다. 감독의 영화 중에선 제법 영화제에서 상영도 되고 VOD로도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의 인생역정을 영화 속에서 접하다 보면 대체 저 집 가족들은 왜 자식이 저렇게 젊은 나이에 생고생 하는 걸 그냥 두고 있나? 하고 부모 마음으로 염려할 이들이 나올 테다. 그 궁금증은 <통영 가족의 시베리아 횡단기>(2017)로 일정부분 해소될 것이다. 해당 영화가 바로 감독의 일가족이 총출동하는 가족 로드무비이기 때문이다. 통영에 정착한 무명 예술가 4인 가족이 치과 비용 명목의 적금을 털어 20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던 여행기록을 바탕으로 한 여행 다큐멘터리다. 시인(엄마)+문인(아빠)+가수(딸)+영화(아들)의 비범한 풍경이 가득 펼쳐지는 작업이다. (역시 VOD에 올라와 있다.)
 
감독은 본격적으로 세계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형편 때문에 한 번에 전 일정을 다녀오진 못했지만 수차례에 걸쳐 세계를 돌고 돌아 겪은 체험은 곡절 끝에 1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 <지구별 방랑자>란 제목으로.

여행기: '아메리카'의 의미를 사유하다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 늘샘

 
"인간과 문화는 고립되면 소멸하지만,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타인 속에서 인간성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의 인간성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1992)


영화는 국내에도 출간된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저서 일부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세계시민'이자 '지구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감독의 '디아스포라' 로드무비 성격을 도입부부터 분명히 천명하는 선언문 격일 테다. 여행자로서 감독의 태도는 인용된 문장에 철저하다. 작품이 아닌 감독의 평소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셈이다.
 
<어제의 강도와 오늘의 천사>
 
영화의 시작은 예상했던 것과는 안드로메다 광년처럼 당황스럽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감독의 원래 기획의도가 어긋나면서 원안과는 다른 내용으로 마무리되거나 숫제 뚝 끊어지듯 종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지구별 방랑자>의 첫 장면은 딱 그런 다급한 마무리의 풍경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아니 시작만 보면 이 다큐멘터리는 '재난영화' 그 자체다. '이러이러해서 어쩔 수 없이 촬영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감독의 변이 함께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이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다. 감독은 가진 걸 거의 몽땅 다 잃어버린 상황이다. 돈이나 카메라는 물론 싸구려 손목시계까지 탈탈 털렸다. 물론 지금껏 촬영한 기록도 몽땅. 십중팔구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과 현실적 작업분량 미련 때문에 영화를 엎어버릴 상황인데도 감독은 일주일 쉬고 여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배우고 사유하며 방랑을 거듭해 나간다. 지금껏 계속 그랬던 것처럼.
 
2018년 8월 31일, 남미 콜롬비아의 소도시 파스토 병상에서 감독은 셀프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는 심야버스에서 수면마취제를 태운 주스를 옆자리 승객에게 얻어먹고 정신을 잃는다. 아메리카 대륙 여행 103일째였다. 다행히 장기는 털리지 않았다며 자조하지만 감독이 미국-쿠바-과테말라-니카라과를 여행한 기록은 영영 유실되고 말았다. 심지어 북미에서 중미를 경유하며 흙 수저 여행의 후유증으로 자신이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서 그는 변장한 천사를 만난다. 수습 간호사 크리스티안이 그를 자신의 집에서 쉬게 해준 것이다. 몸을 추스르며 감독은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옆 나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감독은 2018년 9월, 경제 파국으로 인해 발생한 베네수엘라 난민 사태에 직면한다. 난민을 만나고 광장의 아이스크림 장수나 간식노점 장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 각자의 행복할 때와 슬플 때를 질문하고 기록한다.
 
감독은 중남미 대부분이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는 풍경에 한국과 다른 낯설음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히스패닉 세계'의 풍경이다. 스페인 식민제국의 유산이지만 그 역사적 상처와 별개로 이 대륙의 통합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방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채 언어의 장벽이 곧 역사와 문화의 단절로 인식되는 한국과 차이를 인식하며 문명사적 사유를 이어간다. 한편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일본인이건 구분하지 못한 채 악의 없이 인종차별로 간주될 행동과 표현을 일삼는 현지인들에 대한 당혹감도 감독은 피력한다. '칭챙총', '치노!', '브루스 리!' 소리와 함께 눈을 찢는 행위 앞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고심했을 감독의 표정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감독의 여정은 불사조처럼 이어진다.
 
<씨앗 속에 떨고 있는 농부>

2018.9.25. 감독은 페루의 옛 수도이자 잉카문명의 고도 쿠스코에 도착한다. 안데스 산맥을 경유하며 남아메리카 대륙의 척추와 같은 거대한 산줄기에서 감독의 상상은 계속된다. 남미 관광과 여행의 중심지이다 보니 이곳에서 그는 한국과 일본의 자전거 여행자들도 만나고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서 베네수엘라 난민과 잉카 음악인, 유럽 장기여행객들과 어울리며 함께 거리공연도 해보고 다양한 시각을 나누고 토론을 이어간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유산 마추픽추 여정에 오른다.

"나와 함께 태어나기 위해 오르자, 형제여. (중략)
농부여, 직공이여, 말없는 목동이여.
가파른 발판을 오르내리던 미장이여.
안데스의 눈물을 나르던 물장수여.
손가락이 짓이겨진 보석공이여.
씨앗 속에 떨고 있는 농부여.
너의 점토 속에 뿌려진 도자기공이여. (중략)
그대들의 피와 그대들의 주름살을 내게 보여다오."
- 파블로 네루다, '마추픽추 산정'


경이로운 유적보다 감독의 시선은 그것을 만드는 데 동원되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칠레의 시인 네루다의 글귀를 인용하며 감독은 흔히 여행 브이로그에서 보여줄 유적에 대한 찬탄을 대신한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고도에 위치한 수도, 볼리비아의 라파스로 향한다. 그곳에서도 미용실, 악기점,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며 감독의 행복론 질문은 계속된다.

또 다른 안데스의 경이, 티티카카 호를 찾은 감독은 호수에 떠 있는 섬을 방문해 수천년 전 고대의 삶 방식을 이어가는 이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그리고 남미여행이라면 떠올릴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형형색색 인스타그램 용 사진 대신 태국에서 온 여행 가이드와 대화를 나눈다. 잠시 들른 칠레의 도시에서 원주민 마푸체 족을 찾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짧게나마 칠레 정부의 원주민 탄압에 대해 비판적인 인터뷰를 수록해 아쉬움을 달랜다.

<세계의 끝>

감독은 마푸체 원주민을 옆 나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다. 존 레논의 'Imagine'으로 자신들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꿈을 말하는 원주민과 대화 후 한국의 유가협과 흔히 비견되는 5월 광장 어머니회가 진행하는 목요일 집회에 참석하러 온 이탈리아 & 브라질 커플과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
 
2018.11.25. 감독은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남미대륙 남단 파타고니아에 이른다. 그 입구 격인 푼타아레나스에서 2년 3개월간의 세계일주를 마쳐가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길 위의 인생에 대해 사색한 뒤 '세계의 끝'을 돌아 이구아수 폭포로 향한다. 매일 국경을 넘어 생계를 이어가는 파라과이 과일장수와의 담소 후 브라질로 향한 감독은 리우데자네이루 인구의 3할이 거주하는 빈민가 '파벨라'에 여장을 푼다. 주머니 사정 빤한 동료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미 대도시의 빈부격차를 눈으로 확인한 감독은 이제 284일간 거쳐 온 아메리카 대륙 종단을 마무리한다.

감독의 반골정신은 찰나의 휴식에도 멈추지 않는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페루에서 브라질, 파라과이와 칠레, 아르헨티나를 지나는 내내 감독은 왜 이 대륙이 '아메리카'란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 성찰한다. 누구나 당연시하는 명칭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너무 굳어져버려 대체할 용어를 못 찾겠다는 푸념고 함께 곡절 많았던 대륙 여행은 막을 내린다.
 
여행기: 분쟁과 난민의 곁에서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 늘샘

 
감독은 대서양을 횡단해 유럽의 서쪽 끝, 포르투갈 리스본에 상륙한다. 여전히 최저가 숙소를 이용하는 처지는 변함이 없지만 유럽의 최저가 숙소에는 식기세척기도 있다! 모어로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브라질 출신 이민자들에 둘러싸인 숙소에서 감독은 정비를 마친 후 북아프리카 여행을 출발한다. 아프리카 땅이지만 식민통치의 유산인 스페인 령 멜리아에 2019.2.8. 도착해 '마그레브'(이집트 서쪽 북아프리카 통칭)의 무슬림 사회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동아시아 끝의 여행자가 '이슬람'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에 대해 성찰하고 실제 여부를 조심조심 확인해 나간다. '이슬람포비아'란 실체인가 허구인가에 대해 우리 사회 일반에서 토론해봐야 할 질문이 가득하다.
 
북아프리카 횡단을 꾀했지만 여행금지구역 때문에 감독의 꿈은 무산된다. 다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갔다 중동으로 내려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무료 도보 가이드'를 자처한 길거리 뮤지션과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유럽의 현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누구도 불법이 아니다>
 
동남부 유럽을 경유해 터키를 지나 이집트로 향하기 위해 감독은 헝가리와 세르비아 국경에 도착한다. 2019.3.10. 감독은 국경지대를 구경하다 난민 수용을 쇄국정책 수준으로 거부하는 헝가리의 정부방침을 피부로 경험하게 된다. 경찰이 다짜고짜 빈티 팍팍 나는 동양계 여행자를 체포한 것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가운데 건장한 무장경찰에게 끌려가 경찰차 바닥에 웅크려야 했던 순간의 공포를 감독은 이를 악물고 진술한다. 물론 그가 미국이나 서유럽 여권을 내보였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다.
  
그런 공포체험을 마친 뒤 그리스와 북 마케도니아 국경에서 본 폐건물에 적힌 구호, 'no one is illegal!'은 감독의 뇌리에 오랫동안 메아리로 남는다. '불법 사람은 없다'라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빠지지 않는 문장이다. 유럽으로 진입하려는 난민들의 집결지,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감독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세르비아에서 독립한 신생국 코소보에선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기억과 참화를 딛고 한데 어울려 사는 지혜에 대해 배운다. 한국의 분단 역사와 그들의 역사를 비교 토론해보기도 한다. 의외로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한데 어울려 살다보면 과거의 악연은 선한 의도가 이어진다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잠시 충전 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대화와 파티의 시간을 보내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터키 이스탄불의 바다를 보는 감독의 표정은 정치와 전쟁이란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는 듯하다.
 
<난민들과의 하룻밤>
 
2019.4.24. 터키의 동쪽, 반 호수 인근 버스터미널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한 감독은 일군의 난민들과 함께 밤을 보낸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관찰하며 감독은 자신이 그들에 대해 느끼는 시선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혹시 내가 가진 빵과 음료를 나눴다가 내가 먹을 게 없어지면 어떡하나, 저들이 내 물건을 탐내면 어떡하지 같은 소시민적인 고민들이 감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시혜적 태도와 외면하는 태도 사이에서 실존하는 번민이 무척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라마단을 여행자로서 체험해보고 그곳 젊은이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악명 높은 3세계의 허술한 행정처리에 질색도 해가면서 감독이 토로하는 이야기들은 안락의자 여행자로서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근접도가 가득하다.
 
여행기: 수난과 성찰 속에서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 늘샘

 
이제 장구한 여정도 서서히 종막으로 치닫는다.
 
<붉은 바다 거북이들>
 
2019.6.9. 시나이 반도 다합에 도착한 감독은 홍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땅에서 오랜만에 망중한을 누린다.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적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오랜만에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속세를 벗어나 자연의 경이에 빠진다. 붉은 바다거북을 수승 삼아 수중 유영을 즐기면서 감독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내전의 혼란을 잠시 잊는다. 작품 내에서 몇 안 되는 보편적 여행 브이로그의 형상이라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챕터이기도 하다.
 
다시 감독은 아프리카 남쪽으로 향한다. 분쟁의 땅 수단을 지나 소금사막을 건너 에티오피아에 이른다. 낙후한 행정처리와 존재 자체가 희귀한 인프라 사이에서 감독의 수난은 이어진다.
 
<무기 말고 악기를>
 
감독은 영화 속에서 3대 위기를 언급하는데 첫 번째가 콜롬비아 심야버스 강도, 두 번째가 헝가리 경찰의 강제연행이었다. 이제 세 번째 차례다.
 
2019.8.7.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에서 감독과 동행한 한국인 여행객은 4명의 무장 강도에게 위협을 받는다. 얼마 안 되는 현금과 휴대전화기를 빼앗으려 강도들은 칼을 휘둘렀고 겨우 피신했지만 병원 응급실 신세가 된다. 칼침을 맞은 상황에서도 감독은 아프리카 대륙을 뒤덮은 빈곤이 한눈에 봐도 돈 없어 보이는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게 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 가난의 뿌리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과연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는 자문자답이 이어진다.
 
성찰과는 별개로 외로운 여행자에게 또다시 깃든 공포는 여행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안이 좋지 않다는 몇 개국이 여행지도에서 지워진다. 감독은 케냐와 탄자니아를 경유한다. 그리고 유목민 마사이 부족 루카스 가족의 마당에서 며칠간 야영하며 그들의 삶을 나누기도 한다. 빈대의 텃세에 며칠 못 버티긴 했지만. 칼라하리 사막을 건넌 그는 대륙의 남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다.
 
<희망 없는 희망봉>
 
남아프리카 지역 경제 허브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중에서도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에서 감독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함께 아프리카 전역에서 모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현실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케이프타운 대법원에 기념물로 놓인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정책의 유산, 백인과 비非백인으로 나뉜 벤치를 응시하며 불과 25년 전까지 존재했다는 지독한 혐오와 차별에 전율하기도 한다.
 
그렇게 2019.11.5. 아프리카 9개국을 횡단한 193일간의 여정이 끝난다.
 
감독의 여정은 827일, 43개국, 109,980km. 지구 두 바퀴 반에 이르렀다. 하지만 총 경비는 1,520만원, 일일 여행 경비로 환산하면 평균 18,400원이었으니 역시 여행 다큐멘터리의 대가다운 절약(을 넘어선 고행)이다. 물론 화폐로 환산 불가능한 값어치이지만 다른 여행객에게 권하긴 좀 어려운 전모다.
 
짧은 후일담이 이어진다. 2020.7.15. 감독은 고향인 통영에 머무는 중이다. 귀국 직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 서울에선 도저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감독은 통영에 내려와 여기저기 신세를 지며 영화를 편집하는 중이다. 그나마 대 역병 창궐 이전에 여행을 마무리한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그가 만났던 영화 속 등장인물들 중 익숙한 얼굴들의 후일담과 함께 그들의 사진 옆에 이름이 꼬박꼬박 표기되어 감독의 자작곡과 함께 대미를 장식한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감독의 후일담을 조금 부연하자면 지역에서 문화 활동가로 이것저것 생계 일을 병행하면서 열심히 활약 중이라고 한다. 지역의 여러 풍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바, 해당 작업 중 일부는 <우도마을 다이어리> (2021)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통영 앞바다 큰 섬 욕지도에 딸린 인구 20명의 조그만 부속도서 '우도'에서 만난 14명의 주민들이 들려주는 섬의 이야기 기록이다. 아마 다시 형편이 되면 <지구별 방랑자>에서 못 담은 지역으로 떠나지 않을까.
 
여행 브이로그의 한계를 넘어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영화 <지구별 방랑자> 스틸 이미지 ⓒ 늘샘

 
<지구별 방랑자>의 구성이 여행 브이로그의 형태를 띠는 건 감독의 여행 조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스태프도 없이, 게다가 도입부에서 스스로 밝힌 사정 때문에 이후 상당부분을 카메라도 없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고된 환경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연 때문에 언뜻 평범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포착한 남아메리카와 유럽(의 일부), 아프리카의 풍경들, 세계의 현실과 역사적 경험에 기반을 둔 사유를 멈추지 않는 고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들을 발견하는 거듭된 찰나들, 진짜로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어우러져 2시간 가까운 시간이 물 흐르듯 매끈하게 연결되어 영화는 별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빈자'의 여정이었기에 평범한 여행자들은 결코 겪기 힘든 고행을 거듭하며 감독의 세계관은 계속 확장되어 간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와 리우의 파벨라, 페루의 마추픽추,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을 체험하는 다른 여행자로선 불가능한 체험, 난민들과 노숙하고 마사이 족 마을에서 야영하는 풍경 속에서 감독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어간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의 연속이 거듭되고 가끔씩 감정의 과잉이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듯 그러한 체험을 했던 여행자라면 응당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감독의 파란만장한 고생 덕분에 <지구별 방랑자>에서 다른 여행기들과는 명백히 차별화된 로드무비의 탄생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여행자를 환대하는 웃음과 함께 변장한 천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차별과 혐오, 폭력을 일삼는 이들에 두려워해야 했던 체험 양쪽을 모두 들려주는 균형감각과 공정성은 본 작품의 특성이자 여느 여행다큐멘터리들과의 결정적 변별점이다. 이만큼 특별한 여행기는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p.s. 여행에 관한 세부 기록은 감독이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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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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