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강타자 애런 저지는 2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18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미 루키 시즌이었던 2017년에 52홈런을 터트리며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저지는 양키스의 천문학적인 연장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올 시즌이 끝난 후 FA 시장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겨울 뛰어난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저지를 데려가기 위한 각 구단의 치열한 쟁탈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저지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캘리포니아주의 체육교사 부부에게 입양돼 키워졌는데 저지가 입양됐을 때 그에게는 자신, 그리고 부모님과 조금 다르게 생긴 동양인 형이 있었다. 저지의 형 역시 입양아였는데 입양된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저지와 달리 공부에 재능이 있었던 형은 현재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저지는 시즌이 끝나면 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형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드러냈다.

만약 결혼과 출산이라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만 가족이 구성될 수 있었다면 애런 저지 같은 가족은 애초에 탄생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핏줄이 아닌 사랑의 유무다.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가족의 탄생>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휩쓸었다.

<가족의 탄생>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휩쓸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학 졸업 후 영화 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한 김태용 감독은 지난 1999년 영화아카데미 동기인 민규동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연출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여고괴담2>는 전작보다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호러영화로서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울 관객 14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흥행에서는 썩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여고괴담2> 이후 <이 공을 받아줘> <온 더 로드, 투> 등 단편 및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연출하며 차기작을 준비하던 김태용 감독은 2006년 두 번째 영화 <가족의 탄생>을 선보였다. 고두심과 김혜옥, 주진모, 문소리, 엄태웅, 공효진, 정유미, 봉태규 등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출연한 독특한 가족 드라마 <가족의 탄생> 역시 전국 22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은 <가족의 탄생>은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김태용 감독은 청룡영화제와 부산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받았고 <가족의 탄생>의 배우 4명은 그리스 데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태용 감독은 2010년 인기스타 현빈과 중국 배우 탕웨이를 캐스팅해 <만추>를 만들었고 탕웨이는 <만추>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4년 탕웨이와의 결혼한 김태용 감독은 2016년 8월 탕웨이가 딸을 출산하면서 아빠가 됐다. 2018년 국악공연 <꼭두>의 영화 버전인 <꼭두이야기>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4월부터 작년 5월까지 박보검과 배수지, 정유미, 탕웨이, 최우식 등이 출연한 차기작 <원더랜드>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다소 밋밋한 스토리 보완해준 배우들의 호연
 
 <가족의 탄생>은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집단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작품이다.

<가족의 탄생>은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집단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작품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족의 탄생>은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가족 또는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상업 영화에 흔히 보이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이 다소 약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았지만 세 가족이 보여주는 이야기엔 분명 소소한 흥미요소들이 존재한다. 특히 고두심과 김혜옥, 문소리, 공효진, 정유미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 하모니는 단연 일품이다.

문소리는 그동안 대표작이었던 <오아시스>와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 등과 달리 <가족의 탄생>에서 아직 소녀 감성을 잃지 않은 미라를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도 시종일관 하이톤의 말투를 구사하며 갑자기 나타난 사고뭉치 동생 형철(엄태웅 분)과 갈등을 일으킨다. 결국 미라는 화를 내며 집을 나간 형철이 돌아오지 않자 무신(고두심 분)과 채현(정유미 분)을 붙잡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명의 여성은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와 <파스타>에 출연하기 전, 그러니까 공효진이 아직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공블리'라고 불리기 전에 보여준 다소 거친 날 것의 연기도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평생 원망하던 엄마 매자(김혜옥 분)가 사실은 정말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선경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해외 취업계획을 포기한다. 그리고 아빠가 다른 동생 경석(봉태규 분)과 함께 살면서 엄마처럼 넘치는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두 엄마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채현(정유미 분)은 워낙 잔정이 많아 주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남자친구 경석(봉태규 분)은 당연히 여기에 불만이 많고 채현의 오지랖을 두고 '정이 아닌 헤픈 거'라고 일침을 한다. 하지만 '헤프다'는 단어의 뜻을 알아볼 생각이 전혀 없었던 채현은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경석에게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그런데.. 헤픈 거 나쁜 거야?"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이었던 미라와 형철 남매, 매자와 선경 모녀는 가출과 죽음으로 가족의 형태가 해체된다.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식구들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 운식(주진모 분) 가족도 해체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가족의 탄생>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녀, 그리고 아버지가 다른 남매를 통해 또 다른 가족이 탄생하면서 가족에게는 피가 아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연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류승범의 쿨했던 우정출연
 
 <가족의 탄생>에 우정출연한 류승범(왼쪽)은 짧지만 소름 끼치는 '현실연기'를 선보였다.

<가족의 탄생>에 우정출연한 류승범(왼쪽)은 짧지만 소름 끼치는 '현실연기'를 선보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녀는 괴로워> <쌍화점> 등에 출연했던 1974년생 미남 배우와 동명이인인 1958년생 주진모 배우는 영화 <신세계>에서 "신세계, 신세계 프로젝트입니다"라는 명대사를 던진 배우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전우치> <도둑들> 등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한 주진모 배우는 <가족의 탄생>에서도 두 집 살림을 하는 자신에게 따지러 온 선경에게 엄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가족들과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공효진과 류승범은 초등학교 동창이었지만 중학교 입학 후 연락이 끊어졌다가 2001년 드라마 <화려한 시절>을 통해 재회해 연인이 됐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공개연애가 흔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쿨하게 열애 사실을 공개하며 팬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03년 바쁜 스케줄로 헤어졌지만 결별 후에도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류승범은 영화에 우정 출연까지 하는 '의리'를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족의 탄생>에서 류승범이 맡았던 배역이 바로 공효진이 연기한 선경의 전 남친 역할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서로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준호가 선경의 장식장을 어지럽히며 성질을 내는 장면은 어쩐지 현실에서도 있었을 법한 장면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별 후 친구로 지내던 공효진과 류승범은 2008년 재결합했지만 2012년 다시 결별 사실을 알렸다(공효진은 현재 10살 연하의 가수 케빈 오와 열애 중이다).

1996년 SBS 드라마 <임꺽정>에서 주인공 임꺽정 역을 맡으며 유명세를 탔던 배우 정흥채는 <가족의 탄생>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문소리가 연기한 미라의 남자친구 김사장 역으로 출연했다. 형철과 무신 부부와의 식사자리에서 소주를 좋아한다는 무신에게 "오늘 한 번 제대로 놀아 봅시다"라고 했다가 형철의 화를 돋우는 역할이었다. 정흥채는 '꺽정마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지만 작년 12월을 끝으로 업데이트가 중단됐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 문소리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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