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 포스터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 포스터 ⓒ 넷플릭스

 
2년 전, 'N번방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추적이 어려운 메신저 '텔레그램'에 수천 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고 피해자를 협박해 성 착취 사진이나 영상을 찍도록 만든 후 암호화폐로 거래하여 수익을 창출한 신종 디지털 성범죄는 참으로 치밀하고 끔찍했다. N번방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박사방'은 유료 회원만 무려 3만 명이고 관련 성 착취 영상을 소지하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소 6만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경찰과 언론의 노력으로 2020년 1월 현재 조주빈, 문형욱, 강훈 등 N번방 운영자들을 포함해 총 3757명이 검거됐고, 245명이 구속됐다. 이후 재판에서 주범인 조주빈은 징역 42년형, 문형욱은 34년형, 조주빈의 공범 강훈은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었다.

'사이버 지옥'의 실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지난 5월 18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영화는 추적단 불꽃, <한겨레>의 김완·오연서 기자, JTBC <스포트라이트>의 장은조 작가·최광일 프로듀서 등 언론인과 당시 수사를 담당한 강원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등 24명의 목소리를 통해 '사이버 지옥'의 실체를 밝혀나간다.

연출은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의 사회 현상을 탐구한 최진성 감독이 맡았다. 그는 성 착취 영상, 텔레그램, 해킹, 암호 화폐, 비대면 집단 범죄 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범죄가 우리의 일상 뒤에서 어떻게 참혹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접하면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건을 처음 쫓은 시민들 '추적단 불꽃'을 만났고 사건을 최초로 언론에 공론화한 기자들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면서 N번방 범죄가 그간 알았던 것보다 더 조직적이고, 더 끔찍하고, 더 참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품으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정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닌, '범죄 추적극' 장르를 표방한 동적인 다큐멘터리다. 극 영화 현장에서나 볼 법한 조명을 갖춘 대형 세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진성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기자, 경찰, 추적단 불꽃 등 인터뷰 대상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의 공간 8개를 만들어 '추적자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한다. 영화의 시작을 비롯하여 곳곳에 트위터, 텔레그램 등 모바일 채팅 화면을 넣어 과거와 다른 현대화된 범죄의 특이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최진성 감독은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흥미진진한 범죄 추적극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야 이 작품 속 범죄의 특이성이 잘 전달되고, 추격자들의 고뇌가 잘 전달될 수 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진성 감독은 재미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최대한 선정적이지 않고 윤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깊이 고민했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피해자를 직접 인터뷰하는 건 애초에 배제했으며 피해자가 찍힌 사진과 영상도 일체 쓰질 않았다. 또한, 피해자 사진과 영상이 나오는 분량도 최소화했고 필요한 경우엔 원본 대신 새롭게 만든 걸 흐릿하게 처리하여 사용했다. 피해자가 겪은 범죄의 참혹함을 최대한 덜 직접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모노톤의 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언론·경찰·피해자의 연대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한 명의 영웅담이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N번방의 실체를 파헤치던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추적단 불꽃, 언론인은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다.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사회의 무지와 방관에 힘겨워 했다. 

그러나 앞선 언론의 보도를 다음 언론이 이어 받아 새로운 진실을 더하는 식으로 사건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이렇게 모인 결정적인 단서를 넘겨받은 경찰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데 사력을 다한다. 영화 후반에 보여주는 경찰 사이버 수사대의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과 과학 수사 기법은 실로 놀랍다. N번방 운영자 등이 검거될 수 있었던 건 진실을 좇는 언론인,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 관심을 두는 네티즌, 그리고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연대 덕분이다. 

'N번방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에 주요 공범들은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5월 2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N번방 일반 가담자 378명의 1심 판결문 36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 261명(69.1%), 벌금형 64명(16.9%), 실형 47명(12.4%), 선고유예 4명(1.1%), 무죄 2명(0.5%)으로 나타났다.

성 착취물 소지 및 재배포 등에 대해 사법부가 경각심을 가져 이전보다 징역형을 선고하거나 벌금 액수를 상향했다곤 하나 여전히 소지범 10명 가운데 7명은 집행유예에 불과하다. 초범이라는, 반성한다는,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선처를 받은 것이다. 이들이 죗값에 맞는 처벌을 받은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N번방의 얼굴 없는 가담자들은 사건이 하루빨리 대중들에게서 잊히길 원한다. 하지만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나아가 여성 인권 문제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라고 이야기한다. 

더욱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의 시청자들과 만나게 되었다는 점도 시의적절하다.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가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외국에서 N번방 모방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마지막 문구를 통해 성 착취 피해자가 얼마나 영구적으로 고통을 받는지 호소하고 있다.

"현재 N번방 영상은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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