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2>(2022) 한 장면

영화 <범죄도시 2>(2022) 한 장면 ⓒ 메가박스 ㈜플러스엠 외


<범죄 도시>(2017)가 처음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는 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아니었다. '마동석'이라는 캐릭터의 티켓파워를 앞세워 짤막한 흥행을 거둘 심산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범죄 도시>는 걸출한 경쟁작인 <남한산성>(2017)을 가볍게 제치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688만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했다.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둔 <범죄 도시>의 성공 이면에는 단지 시원한 오락 영화를 갈급한 관객들의 바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관록 있는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준 장첸 역의 윤계상과 인상 깊은 사이코패스 조직원 역할을 100% 소화해낸 위성락 역의 진선규, 양태 역의 김성규 등의 연기가 빛났다. 어떤 선과 악의 대결이 분명한 영화는 악역이 빛날 때 주연은 더 빛난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도망가던 장첸이 왕오(엄지성)의 가게에 들러 가게 사장을 비롯한 두 사람을 공격하고 떠났을 때, 왕오를 부여잡고 미치겠다는 심정으로 다급히 지혈을 하는 마석도의 모습은 마동석이 아니라 강력반 형사 마석도의 모습 그 자체였다. 뛰어난 악역들의 열연 속에서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마동석'에 파묻히지 않은 이유다.

배우들의 열연은 <범죄 도시>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지만 조직 간의 대립관계나 경찰과의 유착을 사건에 잇는 인과관계의 사슬 역시 흥미진진했고, 오락 영화로서의 가치도 '이쯤에서 넌 웃어야 해'라며 웃음을 강요하던 상업 영화의 특유의 유머로 잇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상대를 갈취하는 깡패가 경찰한테 갈취 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다거나 해서 자연스러운 해학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무엇보다 <범죄 도시>의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관객들의 실제 삶에서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큰 기대를 품고 있던 관객들에게 나타난 후속작 <범죄 도시 2>에서는 이전의 시원함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 그늘에서는 본부의 파괴와 함께 무너져버린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킹스맨 2>)의 그림자가 짙게 남는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한 장면

영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정체성의 파괴와 자기 복제

시리즈로 이어짐에도 명작 반열에 오른 영화들은 전작의 유산을 물려받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꼭 그렇다. 7편이나 제작된 이 시리즈의 모토는 역시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케 하는' 것이며, 관료주의나 정세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 행동 주체 'IMF'의 위기와 재건이 반복된다. 나아가 이 작품의 주인공 '에단 헌트'는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창 그 자체로 이 작품의 얼굴이며 톰 크루즈라는 한 배우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떤 사건이나 위기, 동료들까지 매 속편마다 바뀌고 방법도 기상천외해지지만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굵직한 토대는 변함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범죄 도시 2>는 배경을 갑자기 국내에서 해외로 돌리면서 전편이 갖고 있던 큰 특징 하나를 놓쳤다. <범죄 도시>에서 극 중 마석도 형사팀의 수사력을 뒷받침하는 건 마석도의 위력만큼이나 국내 범죄 정세에 정통한 형사들의 대응 능력이었다. 범죄 조직이라고 해서 무작정 일망타진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이이제이의 계략을 적극 사용하던 마석도는 액션 신에서 보여주는 무력과 또 다른 모습으로 배우를 내세워 범죄자를 속이기도 하는 등 유연성을 보이며 캐릭터의 매력을 더했다. 

하지만 베트남으로 넘어간 마석도 일행은 단순한 취조와 추적만을 반복하다가 끝내 도망치듯 무대를 국내로 옮겨버린다. 베트남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아무리 장첸을 잡은 강력반 형사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는 정해져 있다. 군더더기 같은 베트남 경찰과의 충돌 역시 공조 수사의 허점을 드러내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극에 긴장감이나 활력을 불어넣지는 못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와 같이, 여장남자였던 유이(박정민)처럼 현지 사정에 능통하면서도 사건에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는 조력 캐릭터가 추가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애초에 <범죄 도시>의 강력반을 정의하던 '유연한 강인함'은 '유연한 대처'를 상실되면서 이미 그 힘을 잃는다. 마치 <킹스맨 2>에서 느닷없이 본부를 파괴해 무기력해진 '젠틀맨 스파이'들을 미국으로 옮겨 생뚱맞은 스테이츠맨들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듯이 말이다.

한 번 토대가 무너진 다리는 무엇을 덧대려고 해도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미 잘 지어진 건실한 기둥 위에서 무리한 확장공사를 하기 마련이다. <킹스맨 2>가 잘 항해하던 바다에서 나와 점점 산으로 가면서 전작인 <킹스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며 과거의 영광에 매몰됐듯이 말이다. <범죄 도시 2> 역시 극의 런타임이 지나갈수록 과거의 영광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뱅크 신처럼 어디서 본듯한 장면이 반복된다. 그 절정에 달한 부분이 강해상(손석구)을 만난 장이수(박지환)가 장첸의 이름을 소환하는 장면이다. 그때쯤에 이르면 마치 영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더 이상 끌고 나갈 방법이 없으니 도와달라!'  
 
 영화 <범죄 도시 2>(2022) 한 장면

영화 <범죄 도시 2>(2022) 한 장면 ⓒ 메가박스 ㈜플러스엠 외


위험하지 않은 악인, 공감되지 않는 위험

선과 악의 대결이 명징한 극에서 뛰어난 악인은 주연을 빛나게 만든다고 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에서 에그시가 빛날 수 있었던 건 억만장자 빌런 발렌타인의 비범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복하고자 하는 악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인공의 거듭남은 더해진다. <범죄 도시>역시 마찬가지다. 마석도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장첸이라는 극도로 위험한 인물 덕분이다.

장첸은 극 중에서 보여준 잔혹함도 잔혹함이지만, 조직의 세를 불려 나가면서 기업가와 결탁하고 그 특유의 잔혹함을 국지적인 수준에서 전국적인 수준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영화 <신세계>(2012)에서 골드문 그룹의 후계자 계승 작전을 브리핑하던 고국장이 이들 조직의 기업화를 설명하며 '이대로 두면 더 이상 손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절박하지만 담담하게 말한 것처럼, 장첸을 추적하는 이들의 뒤통수에는 지금 하지 않으면 손 쓸 수도 없이 커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바짝 붙어 따라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성장한 그의 잔혹함이 향하게 될 방향은 같은 수준의 조직도, 더 강한 어떤 단체도 아닌 일상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바로 일반 시민들이 될 터였다.

그런데 <범죄 도시 2>의 강해상(손석구)은 한낱 강력범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영욕만을 추구한다는 건 장첸과 같지만 그는 이익을 위해 본성을 숨기기도 하는 소시오패스적인 장첸과는 달리 본능에 따라 살인하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장첸이 팀을 이루고 나아가 조직의 세를 확대하는 반면에 강해상은 같은 팀마저도 적으로 돌려버린다. 아무리 무력이 강한 살인마가 혼자 미치고 날뛰어봐야 그 한계는 정해져 있다. 장첸은 공포를 확산하려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수장과도 같았다면 강해상은 테러리스트 분자 중 하나에 불과한 수준이다. 애초에 무게가 다르다. 가볍게 팔랑거리는 강해상의 캐릭터를 부여잡기 위해 잔혹함을 극대화하고 느닷없이 의경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등의 장면도 만들어내지만 결국 장첸만큼의 강렬한 악인의 무게를 지니지는 못한다. 너무 눈에 띄는 악은 쉽게 잡힐뿐더러 조력자도 없이 혼자 날뛰는 부류의 인간이라면 더 쉽게 잡힐 수밖에 없다.

또한 강해상의 범죄는, 일상에 깊이 녹아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킹스맨 2>에서 빌런인 포비가 마약사업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도 같은데, 마약이 대중적인 문제가 아닌 한국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위기감이 피부 깊숙이 와닿지는 못했다. 다만 마약 때문에 도살장이 되어버린 멕시코 카르텔 장악 지역의 사례처럼 인간의 본질을 전도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모인다면 경각심이 전해질 수 있겠으나, 어쨌든 <범죄 도시 2>에서 그런 모습을 악인에게 주입하지는 않는다. 집 주변 골목에서 토막 시체가 발견되고 상인들에게 매달 수탈에 가까운 자릿세를 뜯어가며 그 세를 전국으로 확장하려는 장첸과 전 세계인들의 뇌를 조작해서 서로 죽이게 만들려는 발렌타인의 위기에 비하면 확실히 강해상이나 포비의 범죄는 관객들의 주변과는 너무 동떨어져있다.

설령 이 모든 걸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또 심각한 문제는, 강해상이 범죄를 저지른 대상이 관객들의 입장과 일치할 수밖에 없는 선량한 시민이거나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오히려 같은 시민들에게조차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대부업자와 그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강해상의 범죄는 더더욱 대중의 피부에서 멀어진다. 마치 <킹스맨 2>에서 포비의 범죄 희생양이 된 마약중독자들에게 오히려 잘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비록 <범죄 도시 2>에서 극의 후반부 형사들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대부업체 사장의 부인인 인숙이 '남편이 많은 죄를 지었다'고 시인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이 연민을 보내기는 힘들다. 따로 의도된 설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고차원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영화를 상정하고 나온게 아닌만큼 그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이모저모를 따져보면 <범죄 도시 2>는 <킹스맨 2>가 '킹스맨'시리즈를 망가뜨린 그 전형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로 장기화된 극장가의 침체가 최근 거리두기 완화 등으로 다시 활기를 띠면서 보복 소비 형태의 관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기대작들이 극장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지금 '범죄도시' 시리즈가 꼭 이런 모습으로 등장했어야 하는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에단 헌트'가 될 수 있었던 마석도가, 'IMF'가 될 수 있었던 가리봉동 수사팀이 '볼 게 없어서 보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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