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숏박스'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숏박스' 한 장면. ⓒ 숏박스

 
"너 뭐하냐."
"인스타 염탐이요."
"뭐 나온 거 있어?"
"그때 말했던 남자 아이돌 있죠? 지금 그때 말한 애랑 장소가 같거든요. 눈동자 확대해보고 있어요."


일부 기자들은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감정은 통쾌함이다. 위의 대화는 KBS 공채 코미디언 출신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 '숏박스'가 선보인 기자 풍자 콘텐츠의 일부이다. 좀더 어처구니없으면서 속시원한 대사도 있다.

"어차피 정정 기사 낼 거예요. 조회수 좀 빨다가."
"요즘 애들 맞춤법에 예민해서 그냥 그걸로 조회수 빠는 거예요."


이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337만 회이다. 

실제로 연예 기사의 상당수가 '인스타 염탐'을 통해 이뤄진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게 생산된 기사는 '복붙'되어 여러 매체와 커뮤니티 사이트, 소셜 미디어에 유통된다.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과 글)을 함부로 스크랩하고, 그에 대해 간략히 몇 문장을 덧댄 '영혼 없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다. 결국 이유는 하나다. 조회수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고소해도 될까요? 보고 계시다면 그동안의 악의적 기사 수정하세요." (하연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반려 토끼 '마요'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배우 하연수도 '인스타 염탐'의 주요 대상이다. 그가 SNS에 게시하는 사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로 재생산된다. 당연히 공식적인 허락 없이 이뤄지는 일이고,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오랫동안 관행화 되었기에 그 누구도 딱히 문제삼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하연수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참담한 심정 드러낸 하연수

지난 24일, 하연수는 SNS에 기자 두 명의 실명을 공개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다름 아니라 하연수가 일본에서 찍은 사진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이었다. 물론 그들 외에도 '복붙'을 시전한 언론사와 기자들이 여럿 있었으나, 하연수는 가장 악의적이라 판단한 두 곳(<헤럴드POP>, <머니S>)을 지목해 기사를 수정할 것을 정당히 요구했다. 

하연수는 질문했다. 연예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을 무단으로 스크랩하고, 제멋대로 과장해 기사를 쓰는 게 언제부터 언론의 '권리'가 되었을까. 그건 질타에 가까웠다. 하연수의 목소리는 울림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성 연예인의 사진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는 언론의 여성 연예인 성상품화를 비판했고, 스크랩 기사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삭제'라는 답이 왔다. 하연수는 "여러분이 함께 목소리 내주셔서 자극적인 기사를 작성하신 두 기자님께서 원문 기사를 삭제해 주신 것 같아 저도 이전 게시물을 삭제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하며 진행 경과에 대해 알렸다. 그러면서 "역시 사람이 움직여야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다며 "용기 내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어떤 기자들은 '발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연수가 발끈했다는 것이다. 발끈하다는 말은 '(사소한 일에) 왈칵 성을 내다'는 뜻인데, 하연수는 부당한 일에 정중하게 항의하면서 당연한 요구를 했을 뿐이다. 화를 낸 적도 없다. '발끈'이라는 말은 무게감이 없다. 하연수가 던진 문제제기를, 언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논의를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하연수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후로도 하연수는 '원조 꼬북좌'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가 '젊은 여성(연예인)'에게 기대하는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고 '대상화'를 거부하자 등을 돌렸다. 하연수가 '할 말'을 하자 사람들은 공격을 가했다. 입을 막으려 했다. 짓누르려 했다. 

2016년 7월, 하연수는 트위터에 올린 사진의 작품명을 묻는 누리꾼에게 "방법은 당연히 도록을 구매하시거나 구글링인데, 구글링하실 용의가 없어 보여서 답변 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유로 '인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젊은 여성 연예인이 감히 상냥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성난 여론은 하연수에게 자필 사과를 받아냈다. 그럴 만한 일이었을까? 

행여나 상처 입지 않았을까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그후로도 하연수는 '할 말'을 했다. 자신을 대상화를 하는 이에게는 '그런 말은 옳지 않다'고 단호히 꾸짖었고,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에게는 '듣는 상대의 기분도 생각하고 말'하라고 맞섰다. 당연히 누군가는 하연수의 행보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이 할 말을 하는 게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젊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본인의 욕망대로 상대를 예뻐한다. 그리고 잠자코 예쁨받으라고 강요한다. 그뿐인가. 상냥하라고, 배시시 웃으라고, 애교를 부리라고 강요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여성이 있으면 집단 린치를 가한다. 하연수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사람들이 '씹으면' 언론이 지원사격했다. 말투를 문제삼고,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교묘히 비난했다. 

하연수는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하연수는 자신에 대한 악성 루머를 양산하는 남초 커뮤니티에 가입한 후 댓글난에 '고소할 수 있으니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하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화들짝 놀란 누리꾼들은 더 이상의 허위사실 유포를 멈췄다. 이처럼 하연수의 행보는 기존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과는 다르다. 

하연수의 문제제기가 언론의 무단 스크랩 관행과 노골적인 여성 성상품화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요지부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단순히 '기레기' 개인이 아니라 트래픽이 전부가 되어버린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버겁다. 후자는 왜곡되고 그릇된 성 인식을 바로잡아야 하기에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하연수'가 필요하다.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이 할 말을 거침없이 하고, 무례한 이들에게 당차게 따지는 존재가 필요하다. 하연수 말마따나 "사람이 움직여야 세상이 바뀌는 것"이므로. 이전에도 그랬듯, 여전히 하연수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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