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 JTBC

 
황망하다. 

이 말이 제일 적당할 듯하다. <나의 해방일지>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등장인물 관계도에는 어머니 곽혜숙씨는 나와있지만, 정작 한 사람씩 나오는 '소개'에는 어머니가 없다. 묵묵히 일만 하는 아버지, 그리고 날마다 힘들어 하면서도 출퇴근을 반복하는 염씨네 삼남매가 돌아오는 집, 그 집의 일부같던 어머니, 이경성 배우가 분한 어머니는 그렇게 작품의 배경같은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가 싱글대디를 만난다는 딸이 걱정되어 만나고 온 날 저녁 세상을 떠났다. 13부에 이르도록 변변치않은 자식들에 버거운 살림살이로 인해 늘 미간에 갈짓자를 그리고 지내던 어머니가 활짝 웃었다. '지랄 맞은' 성격이 탈이라며 미덥지 않아하던 큰 딸이 만난다는 조태훈(이기우 분)의 선한 인상을 본 어머니의 표정이 모처럼 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시장에 들른 어머니는 내색을 하지 않던 막내 딸이 구씨가 떠나고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딸처럼 엉엉 울며 돌아왔다. 늘 삶에 치이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짜증'이 아닌 감정을 드러내 보인 날,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길이었다. 왜 이렇게 땀이 날까 하던 어머니의 푸념은 시청자들조차 스쳐지나간 대사였고, 이제는 정말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며 밭을 팔자는 어머니의 결심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자리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 ⓒ JTBC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떤 존재의 소중함을 그 '부재'로 인해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박해영 작가는 어머니 곽혜숙씨의 죽음을 통해 염씨네가 유지 가능했던 '접착제'로서 어머니의 자리를 말한다. 

메이킹을 보면 손석구 배우가 말하는 '구씨'를 대변하는 것들에 '고구마순 무침'이 등장한다. 염씨네 식구들과 함께 밥상을 받은 구씨가 반찬으로 나온 고구마순 무침을 맛있게 먹자 어머니 곽혜숙씨는 따로 고구마순 무침을 싸서 보낸다. 

고구마순 무침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고구마를 키우는 밭에서 나온 줄기를 손톱이 시커멓게 되도록 까야 한다. 그리고 그걸 다시 연해지도록 삶아서, 무치거나 볶아야 만들어 지는 게 한 그릇의 고구만순 무침이다. 한 아름의 고구마순 묶음이 겨우 한 보시기의 고구마순 무침이 된다. 밥상에서 구씨가 잘 먹는다고 또 보낼 만큼의 고구마순 무침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어디 고구마순 무침 뿐일까. 식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난 밥상에 닭이 오른다. 갈비를 뜯기도 한다. 그 힘든 밭일을 함께 한 어머니가 만든 음식들이다. 눈썰미가 있는 시청자들은 눈치챘겠지만 늘 염씨네 집 밥상은 풍성하고 넉넉했다. 어디 염씨네 뿐일까. 창희의 동네 친구들은 제 집 드나들듯 어머니의 음식을 축냈다. 당연한 듯 어머니가 해댄 그 음식들로 창희와 친구들은 만찬을 즐겼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가족들이 끼니를 마련한다. 어머니 혼자 해내던 일을 이제 가족들이 함께 나서 하는데도 밥상이 초라하다. 무거운 김치통을 들어올리던 맏딸 기정이 토해내고 만다. "엄마는 과로사야"라고. 

구씨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며 미정조차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했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눈에도 묵묵히 일만 하는 아버지 염제호씨가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차를 사고 싶다'는 아들 창희가 철딱서니없어 보일 만큼. 하지만 창희의 '차를 사고싶습니다'라는 '고소원'은 단칼에 거부된다. 아버지의 분노? 분노하는 아버지 옆에는 창희에게 눈치를 주며 어쩔줄 모르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을 위해 차가 있어야 되겠습니다란 창희의 제안을 대번에 수락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부재한 가족간의 '단합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건 미봉책임을 드라마는 말해준다. 드라마는 결론부터 말한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 염씨네도 더는 가족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고. 3년 만에 돌아온 구씨를 맞이한 건, 사라진 '염씨네'이다. 
 
가정을 메꾼 '접착제', 어머니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 ⓒ JTBC

 
아버지는 말한다. 가정을 지탱하는 건 자신인 줄 알았다고. 당미역에서도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려서 다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되는 곳, 그곳에서 고집스레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며 텃밭을 가꾸는 아버지 염제호씨, 그는 그렇게 자신의 그늘 아래 가족이 살아간다고 믿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 큰 자식들이 꾸역꾸역 하루 다섯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건, '아버지'라는 실체를 가능하도록 만든 건 '어머니'였다.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라는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식들을 닦달하고 자신의 한 몸이 결국 과로사로 무너질 때까지 가정이라는 성긴 울타리를 꼭꼭 메웠던 건 어머니였다고 이제야 드라마는 전한다. 

어머니의 부재로 혼란스러운 가족들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염씨네를 유지해왔던 어머니 곽혜숙의 존재를 깨닫는다. 한여름에도 에어컨마저 마음대로 켜지 못하는 집이지만, 그들이 돌아와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먹이고, 입히는 그 익숙한 편안함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의 무릎뼈는 쇳조각이 대신해야 했다. 

빚보증으로 모든 걸 잃고도 우직하게 싱크대를 만들며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도록, 공장의 보조로, 텃밭의 일꾼으로, 다시 가정의 안주인으로 그 모든 빈자리를 메워 날아가버릴 뻔했던 '가장'과 '가정'의 위기를 견뎌냈던 것도 결국 어머니였다. 

구씨가 좋아하던 고구마순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었던 건, 결국 과로사로 종착역에 이르고야 말 어머니의 고된 일상에 잠시나마 숨쉴 틈을 그가 열어주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런 구씨가 떠나고, 다시 어머니에게 구씨의 무게까지 얹혀졌을 때, 어머니는 앞서가는 승용차를 쫓다 길가로 빠져버린 트럭처럼 결국 주저앉고 만다. 어머니의 육신은 어머니의 의지를 더는 담아낼 수 없었다. 

침묵으로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염씨네 일가, 그 식솔인 자식들에게 때로는 잔소리와 종주먹을 들이대며 그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흩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독려하던 어머니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을 알았는지, 차까지 샀지만 '더 화목해질' 거라는 창희의 장담이 무색하게 '가족'은 사라져간다. 어머니의 부재, 이는 곧 염씨네 아이들의 '이유기'이다. 이제 그들은 더는 온몸으로 가족이라는 구심력을 향해 진력을 다했던 어머니의 '집'이라는 젖줄이 사라진 세상에 던져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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