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십여 년 전, 장애인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다고 했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다. 내게 일침을 놓은 지인의 요지는 이랬다. 당신이 장애를 아는가, 장애가 뭔지도 모르면서 장애인 친구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장애를 낭만화하고 타자화하는 비장애인의 비틀린 호기심일 뿐이다.
 
헐... 장애인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대역죄도 아닌 터에, 지인의 과하게 쌔한 반응에 황당했고 억울했지만, 화를 내고 있는 지인의 남편이 알고 보니 후천적 지체 장애인이고, 이로 인해 지인 가족이 갖은 고난을 겪었다기에, 섣불리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지인의 질문을 가장한 힐난처럼, 장애를 아느냐고 재우친다면, 당연히 모른다.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주변에 장애인(지체 장애인은 간혹 볼 수 있지만)이 없는데, 어떻게 장애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장애가 곧장 감옥이 되는 차별적인 환경에서 집을 나서기도 어려운 장애인을 어디서 부딪치고 만나며 관계를 맺겠는가 말이다.
 
지금이라면 그 지인에게, 장애를 모르니 장애인 친구를 사귀어봐야 알지 않겠냐고 소신껏 대답했을 텐데, 그때는 뭐라 반박하는 것이 약자를 가해하는 갑의 위치가 되는 것만 같아 얼굴만 벌개지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정체를 규명할 수 없는 죄책감에 놓이게 한 지인의 일방적인 주장도, 이해할 만한 삶의 맥락은 있겠지만, 옳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장애에 관한 책이나 영상을 볼 때면, 그 지인과의 일화가 종종 끼어들곤 했는데,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다가도 그때 생각이 났다. 정준(김우빈)이 연인 사이가 된 영옥(한지민)의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과 놀랐던 자신을 수습하는 장면에서였다. 정준이 좀 심하게 놀라긴 했다.
 
집, 학교...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영희(정은혜)를 보고 놀란 정준은 후회했지만, 영옥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었다. '그럼 그렇지 너라고 뭐가 다르겠니.' 12살에 돌연 고아가 되어 지금껏 영희를 부양해 온 영옥으로서야, 정준의 놀란 반응이 서운할 수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친척은 물론 무례한 타인으로부터 동물원의 동물을 보듯 영희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넌더리가 나있을 테니 말이다. 영희를 보는 폭력적인 시선이 처음엔 서러웠을 것이고 이해받고 싶어 애도 썼겠지만, 반복되는 눈총은 영옥을 점점 무력하게 했을 테고, 영희를 떼어내고 어디로든 숨고도 싶었을 게다. 언니를 돌보아야 하는 처지가 된 영옥도 고작해야 12살 어린아이이지 않았는가.
 
부모 대신 영희의 보호자가 된 어린 영옥은 회피하고도 싶고 멀리 숨어버리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혈육인데 하며 야단할 사람도 있겠지만 쉽게 단언할 일이 아니다. 부모도 버거운 장애를 12살 동생이 진다는 것이 어떤 삶의 무게일지 가늠할 수 있을까.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이 되었어도 그 짐이 너무 무거워 매일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못한 사람의 게으름은 도망친 사람의 비겁보다 월등히 무겁다. 영옥 또한 그랬을 것이다.
 
연인과 관계가 깊어지고 가족사를 고백하면, 고백과 동시에 연인 관계는 채무관계처럼 변하고 영옥은 부담스런 빚쟁이의 지위로 강등되곤 했다. 쌍둥이 언니가 장애인이고 평생 언니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무겁지 않달 수는 없겠지만, 영옥의 연인들은 하나같이 그 짐을 나누어져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달아났다. 번번이 상처받은 영옥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택한 마지막 방법이 연애만 하는 가벼운 관계인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영희를 보고 좀 과하다 싶게 놀란 정준은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한다. 실제로 다운증후군을 본 경험이 처음이고, 집이고 학교고 어디서고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니 놀라거나 당황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한 번쯤 봐줄 수 있지 않느냐는 변과 함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영옥에게 전한다.

영희의 장애를 바라본 자신의 시선이 무지했고 무례했음을 깨우친 정준의 인정은 솔직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격차를 성찰하게 한다. 정준이 처음 본 장애에 과하게 놀란 것을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고쳐 나가겠다는 다짐과 실천은 장애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하고 승인하는 구성원으로의 덕목을 용기있게 보여준다.
 
정준은 자신이 영옥이 만나고 헤어졌던 "그런 자식들"과 다른 사람임을 호소한다. 정준의 순애보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작정하고 훈훈하게'를 기조로 정한 드라마의 지향으로 보아 어려움을 뚫고 행복해질 것이다. 내 관심사는 이들의 해피엔딩에 영희의 삶이 어떻게 편입될 것인가, 그리고 영희를 큰 이질감 없이 수용하는 청각장애인 별과 푸릉의 삼촌들은 영희의 삶에 어떻게 개입되고 관계 맺어질까에 있다.
 
장애인 유튜브 채널이 내게 준 영향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푸릉 마을에는 발달장애 영희가 등장하기 앞서, 이미 청각장애인 별(이소별)이 살고 있다. 별은 시장통에서 커피를 파는 주업과 생선을 손질하는 등의 부업으로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있다. 별에겐 장애를 부담스러워하는 영옥과 달리, 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언니 달(조혜정)이 있다.

장애인 동생을 가진 영옥과 달의 극명한 차이는 장애인 가족의 각기 다른 현실을 반영하면서, 장애인 가족 모두 장애로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드러낸다. 우애가 좋지만 종종 토닥거리기도 하는 별과 달의 자매애는 비장애인 자매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며, 비장애인 자매라고 해서 더 다정한 것도, 장애인 자매라고 더 각박한 것도 아니라는, 별다를 것 없는 가족 관계로 이들을 조명한다.
 
갑자기 등장한 영희를 무람없이 대하는 청각장애인 별과 비장애인 푸릉 삼촌들은 영희에게 어떤 공동체가 필요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살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삶의 속도를 협상하고 조율해 내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도 성숙한다. 이런 곳에서 장애는 '낯선' 것에서 비로소 '이해 가능한' 범주로 들어오게 된다. 장애가 자신과 상관없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몸의 조건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타협할 삶의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모르는 타자인 비가시화된 존재는 협상의 테이블에조차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장애인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이 있다. 뇌병변 장애인 유튜버 김지우의 '굴러라 구르님', 청각 장애인 유튜버 하개월의 '하개월 hamonthly' 그리고 시각 장애인 유튜버 허우령의 '우령의 유디오'다. 모두 젊은 여성들이다. 처음에는 장애를 이해하고 싶어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재미있어서 본다.

비장애인인 나는 이들 장애인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내 생각을 상당 폭 수정하게 되었다. 장애인은 무작정 무력하거나 우울한 사람이 아니며,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희로애락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장애가 분명 삶의 불편한 조건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드는 불가항력의 무엇이 절대 아니며, 이들은 자신의 불편한 삶의 조건인 장애와 매일 협상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굴러라 구르님'의 김지우가 휠체어를 굴리며 연극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가 무대에 설 날을 고대하게 된다. 드라마에 등장한 리얼 발달 장애인 영희의 모습이 신선하고 진정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휠체어를 굴리는 연극배우 김지우의 매력도 배우로서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하개월이 유머스럽게 알려주는 청각장애인의 소소한 에피소드는 청각 장애인이 부딪치는 불편함을 알게 되는 동시에, 수어를 통해 소통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뛰어난 언어체계를 이해하게 해준다.

허우령은 시각장애의 불가능성보다 다른 감각의 가능성 즉 다른 감각을 발달시켜 시각의 불완전함을 대체하고 보완함으로써 확장되는 감각의 지평을 제시한다. 시각 장애인인 그가 시각 외의 감각을 이용해 멋지게 화장하고 음식을 감별하고 생리컵을 경험하는 현장은 그가 매일매일 장애라는 삶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장애인의 삶은 물론, 드라마나 유튜브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것이며, 유튜브 너머의 생활엔 적지 않은 난관과 한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알리고 있는 장애란, 매일 극단의 노력으로 극복해나갈 무엇이 아니며, 또한 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좌절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애인 또한 매일의 삶에서 조금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협상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재기하듯이, 그들 또한 그렇다. 영희의 장애 또한 비장애인에 미달한 무엇이 아니며, 영옥 또한 장애인 언니를 돌보느라 인생을 저당 잡힌 불행한 가족인 것만은 아니다. 주지하듯 문제는 그들의 장애에 있지 않다. 문제는 장애를 극복할 대상으로 보거나,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을 알량하게 동정하고 차별했던 비장애인들의 부끄러운 행태였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게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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