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결전의 장으로 주역들이 모이기까지
 
#1
2009년 영화 <오펀>을 보았다. 유산으로 셋째를 갓 잃은 부부가 대신 또래보다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9살 소녀를 고아원에서 입양한다. 하지만 실은 그 소녀 '에스더'는 성장이 멈춘 희귀병으로 9살의 외모를 가진 채 33살이 된 사이코 살인마였다. 이 배역을 연기한 이사벨 퍼만은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97년생. 당시 12살 아역배우는 <오펀>의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마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배역에 과도하게 몰입해서였을까? 공포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강렬한 악역을, 그것도 아이의 몸에 갇힌 욕망 넘치는 성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를 소화한 후유증으로 이사벨 퍼만은 한동안 정신병원을 다녀야 했다. 다행히 시련을 극복한 그녀는 이후 <헝거 게임>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쳐 왔다. 하지만 데뷔작의 명성(과 그늘)은 항상 이사벨 퍼만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2
2014년, 데미언 샤젤이란 낯선 이름을 가진 감독의 영화 <위플래쉬>를 보았다. 뉴욕 명문 음악학교 최고의 밴드에 가입한 신입생 앤드류가 명성 드높지만 강압적 지도로 악명 높은 플레쳐 교수에 의해 한계에 내몰리며 스승과 충돌하면서도 최고가 되려는 집착으로 폭발하는 극한의 간접체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영화였다. 코치는 제자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극한 경쟁과 폭력적 교육방식을 밀어붙이고, 제자는 그와 대결하다 동화되어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긴장은 압도적 몰입을 뿜어내지만 실제 교육현장이라면 가능한 일인가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극한의 재능이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순간의 긴장과 경탄, 그리고 결말에 대한 탄성과 한숨을 남긴 채 영화는 연말 시상식들에서 음향과 편집 부문 상들을 휩쓸었다.
 
#3
로런 해더웨이는 15살 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을 보고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되고 만다. 이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감독의 꿈을 꿨다. 하지만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의 동기들을 보고 영화 연출의 꿈을 접고 만다. 그 대신 사운드 엔지니어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가 처음 매혹된 영화 <킬 빌>이 극강의 편집과 찰떡궁합의 음악이 어우러진 구성으로 호평을 받은 것에서 짐작하듯 로런 해더웨이의 사운드 관련 경력은 완벽주의 그 자체로 흐른다. <위플래쉬>에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등 40편이 넘는 영화작업을 담당해 찬사를 받고 업계의 고참으로 대접받게 된다. 그 경력 중 본인에게 더욱 특별한 건 그가 동경하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해이트풀 8>에 다이얼로그 슈퍼바이저로 참여한 작업일 테다. 그렇게 업계에서 인정받는 경력을 쌓았건만 그 성공은 포기했던 꿈을 되살리고 만다. 꿈은 꾸는 자가 있는 한 계속되는 법이다. 그렇게 늦깎이 신인감독이 탄생하게 된다.
 
#4
중고신인감독의 데뷔작품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고민의 밤이 깊었을 것임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로런 해더웨이 감독은 결국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 자기 경험담에서 출발한다. 실은 감독에겐 '특별'한 과거가 하나 있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모든 존류의 스포츠에 소질이 없는 아이였음에도 대학 신입생 시절 제 발로 들어가 4년 동안 조정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새벽5시부터 훈련했다고 한다. 그 시절의 강박과 욕망을 감독은 영화로 재현하자고 결심한다. 이제 자기 대신 그 시절을 재구성할 배우가 필요했다. 이사벨 퍼만과 감독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고, 둘은 의기투합해 가공할 싱크로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더 노비스>의 탄생과정이다.
 
2_생소한 스포츠 "조정"의 세계 속으로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조정은 여러 척이 경주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배가 우승하는 수상 스포츠란 점에서 요트와 일맥상통하지만 차이점이 많은 종목이다. 우선 순수하게 인력으로 노를 저어 속도를 낸다는 점에서 돛의 유려한 조작이 중요한 요트와는 달리 좀 더 육체적인 면이 강조된다. 그리고 고대-중세 갤리선,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이 노를 젓는 노예로 나오는 장면처럼 엄청난 육체적 혹사와 숙련이 필요한 종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노비스>에서의 조정은 갤리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다.
 
영화 속 조정은 명문여자대학교에서 협동심과 리더십을 키우는 서클 활동 형태로 장려된다. 실제로 조정의 역사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캐임브리지 같은 유럽의 명문대학교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팀 스포츠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국내에서 조정부가 처음 도입된 대학들도 1960년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속칭 'SKY' 명문대였고, 현재도 일반대학에서는 조정 동아리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속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조정은 특이하게도 '후진'으로 경주를 치르는 종목이기도 하다. 돛 없이 노 젓기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카누 종목과 통하는 구석이 많지만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셈이다. 속도를 다투는 스포츠 속성상 무척 예외적인 경우다. 기술과 팀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특성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섬세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선 마치 백조의 물장구 마냥 겉보기엔 우아한 발레처럼 느껴지는 동작과 180도 다르게 격렬한 체력훈련이 필수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그 체력조건이 얼마나 가혹한지가 시작부터 격렬하게 묘사된다. 조정에 대해 잘 몰랐던 이들이라면 그 이면의 격한 훈련과정에 충격을 받을 정도다. 무용처럼 아기자기한 일련의 동작은 수영선수가 칼로리 소비하듯 에너지를 활활 소비하는 과정을 필수로 수반한다. 권투나 종합격투기처럼 땀을 줄줄 흘리고 피도 종종 보곤 하는 아크로배틱 스포츠의 질감이 제대로 묻어나는 연출을 <더 노비스>는 선보이고 있다.
 
한편 그 태생적 기원으로 짐작할 수 있듯 조정은 엘리트들의 협동심을 키우는 사교적 목적의 스포츠로 각광받아왔다.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과 그의 라이벌을 제외한 대다수 부원들은 극중 표현대로라면 '은수저'들이다. 적당히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실력을 인정받고 싶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학업은 물론 방학 때 휴가를 망칠 생각은 없는 딱 그런 선을 지킨다. 하지만 그런 적당한 선을 지킬 생각이 없는 둘이 영화에서 동전의 양면이자 거울을 마주보는 상대처럼 끝까지 간다. 하지만 둘의 출발점과 동기는 꽤나 달랐다. 어쩌면 전설의 청춘스포츠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와 서태웅의 캐릭터와 경쟁구도를 극도로 어둡게 비틀어놓은 버전이 <더 노비스>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영화 속 라이벌 간 경쟁구도는 승부욕과 집착이라는 드물지 않은 소재를 다룬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돌출하는 뭔가가 느껴진다.
 
3_전대미문 캐릭터, '알렉스 돌'의 압도적 존재감
 
"더 노비스"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더 노비스"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이사벨 퍼만이 맡은 '알렉스 돌'의 캐릭터는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위플래쉬>와 <블랙 스완>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할 테다. 예시로 거론한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영화 전체를 압도함은 물론 실제 배우들의 커리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걸 봐도 이사벨 퍼만이 주인공 돌 캐릭터에 얼마나 녹아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알렉스 돌은 그저 어마어마한 선례들을 온전히 복제하는 캐릭터로 그칠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인다.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면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돌의 캐릭터는 평범한 이들로선 도저히 상상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이코' 그 자체다. 하지만 평범한 연기력이라면 그렇게 평면적인 히스테릭한 캐릭터로 그치기 딱 좋을 역할을, 더군다나 배우 자신이 그토록 극복하고 싶은 데뷔작의 사이코패스 역할과 겹쳐질 위험을 배우 자신도 모를 리 없다. 이사벨 퍼만은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잡고 말겠다는,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캐릭터를 각인시켜 주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촬영 전부터 영화 속 훈련에 버금가는 수련을 통해 완벽히 주인공에 빙의된 것처럼 자신을 개조해 촬영장에 등장했다고 알려진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물론 화면에서 확인 가능하지만 <오펀> 속 '에스더'와도, <위플래쉬> 속 '앤드류'와도, <블랙 스완> 속 '니나'와도 다른 개성을 가진 '돌'이라는 잊기 힘든 존재와 배우 자신을 완벽히 동기화시켜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오펀>의 사악한 사이코패스이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지던 에스더와 달리 (비록 영화를 본 관객의 의견은 구구히 나뉘겠지만) '돌'은 끝내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변화해가며 성장하는 스토리를 선보이고야 만다.
 
알렉스 돌은 집착을 넘어 광기가 엿보일 정도로 "노비스"(초심자, 풋내기라는 뜻이다)의 한계를 초월해 최고가 되고자 한다. 처음엔 뜻을 같이 하는 동지로, 나중엔 서로 경쟁하지만 그 동기는 정반대인 적으로 조우하게 되는 '제이미 브릴'은 대체 돌이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이코' 소리 들어가며 조정 일인자에 매달리는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브릴에겐 상상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보게 된 관객들 다수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돌이 룸메이트나 여자친구 대니에게 가끔 털어놓는 과거,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는 그녀 자신의 외적 조건만 놓고 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 외적 조건 때문에 한때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선의의 라이벌이라 판단하던 브릴은 돌의 적대자로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돌은 그런 브릴이 야속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본다고 원통해 한다. 하지만 결코 이해를 구하거나 우정을 갈구하진 않는다. 철저히 돌에게 자신의 인생 진로는 혼자만의,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한계를 돌파하는 스릴, 오히려 중독에 가까운 쾌감을 만끽하는 그 찰나를 위해 그녀는 존재해 왔고 이후로도 그래야만 하는 존재다. 그 압도적 선언 앞에 타인은 그녀를 놔두거나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거나 각자의 입장을 정해야 할 뿐이다.
 
돌의 캐릭터는 언뜻 그저 집착으로 쌓아올린 자신만의 왕국의 군주, 혹은 성공이나 정상에 마약처럼 중독된 소아병 환자로 비춰질 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렉스 돌이란 캐릭터는 세속의 성공이나 부귀영화 대신 자신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는 걸 유일한 보람으로 극한 수련을 감내하는 무협지의 고수와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정부에서 대표 팀 일원이 되어야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열심히 노력하는 브릴도, 은수저를 물고 방학과 함께 해외로 휴가 계획을 짜느라 바쁜 다른 조정부원들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영역에 돌은 홀로 외롭게 서 있다. 오직 그렇게 살아왔고 이후에도 그 과정의 연속이 유일하게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이 타인들의 환호와 인정에 얽매이지 않을 가능성을 영화는 말미에 슬며시 열린 결말로 내놓는다.
 
4_정교하게 쌓아올린 '젠가'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요소(들)
 
로런 해더웨이 감독의 대학시절 조정부 활동을 재해석한 이사벨 퍼만의 시선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연기는 <더 노비스>의 주 무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감독은 배우의 열연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게 영화 곳곳에서 감춰도 삐죽 튀어나온 송곳처럼 드러난다.
 
주인공의 맞수이자 성장을 촉진시키고 동시에 강박을 끌어올리는 동급생 제이미 브릴 역에는 <코다>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제이미 포사이스가 열연한다. 실제로 알렉스 돌 역을 맡은 이사벨 퍼만과 신장 차이가 15cm 가깝게 나는 데다 체구에서 오는 이미지 차이가 확연해 서로의 개성과 캐릭터를 비교하게 만든다. 브릴은 명문여대로 설정된 영화 속 학교에선 이질적인 존재다. 주변엔 다 은수저이지만 '체육계'에 속하고 서민가정 출신인 브릴은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돌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력을 다하는 존재다.

둘의 관계는 처음엔 브릴의 판단으론 노력을 경주하는 선의의 라이벌, 하지만 돌의 비밀을 알게 된 후에는 증오 혹은 혐오의 감정을 지니게 된다. 둘의 관계 또한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 영화 처음부터 브릴은 돌에게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처럼 솟구쳐 있는 존재, 넘어서야 할 승부욕을 불태울 최대 최강의 훌륭한 적이다.
 
주인공의 유별난 캐릭터를 거울에 비추듯 조명하고 부각시키는 '특별한 여자 친구' 대니 역은 슈퍼모델 출신 딜런이 맹활약한다. 대니는 돌이 폭주하는데 브레이크를 걸어주거나 적절히 완충 역할을 하면서 돌이란 존재가 그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과거를 갖고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이겨내려는 마음가짐을 관객을 대신해 들어주고 난처해하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한다. 대니와 돌이 함께 하는 찰나의 시간은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주인공과 관객 모두 한숨 쉴 틈이기도 하다.

여자대학교 조정부가 배경이기에 비교적 생소한 지점일, 여성들의 스포츠 활동 내 갈등과 긴장이 꽤 짙게 묘사되는 것 또한 이채롭다. 사실상 신입부원 담당 코치 외에 거의 모든 주요 인물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배우들의 연기 조합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집중된 감독의 사운드 조성과 편집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검증된 내공 그 자체다. 영화 내용에 대한 호불호는 나올 수 있겠지만 <더 노비스>의 편집과 음악이 절묘하다는 데에 이견을 달만한 이는 거의 없어 보인다. 베테랑이 최선을 다하면 이렇게 초 단위로 쪼개질 만큼 정교하게 새겨 넣는 게 가능하다는 경탄이 함께할 따름이다.
 
여기에 촬영으로 현역 최정상급의 뮤직비디오와 광고 CF 감독인 토드 마틴이 결합한다. JAY-Z, 라디오헤드 등 이름만 들어도 탄성을 지를 슈퍼스타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와 애플, 구글,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 광고를 담당해 온 그의 역량은 대단한 시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감독의 장기인 심장박동을 제대로 증폭시켜내는 정중동의 정교하게 세팅된 음향과 함께 촬영 감독은 놀라운 시도로 승부수를 던진다.

긴박감 넘치는 스포츠 물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들, 올드 팝이나 클래식 재즈가 뜬금없이 결정적 승부 장면에 등장한다. 그에 보조를 맞추듯 카메라는 지독히 저속으로 슬로모션 담듯 흐른다. 거기에 종종 전지적 시점에서 주인공의 필사적인 집착을 원근감 있게 그려내거나 아예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객관적 상황을 관객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제시하기도 한다.
 
이 기묘한 조합이 맞아떨어져 눈과 귀에 착착 감겨온다. 그리고 관객이 돌려보고 반복하며 상징과 암시를 위해 배치해놓은 이미지들을 찾게 만드는 마력이 탄생한다.

영화 내내 까마귀와 게가 클로즈업되어 출현한다. 까마귀는 돌과 브릴, 그리고 은수저 동기와 선배들이 가득한 조정 팀의 심벌이다. 돌과 브릴에겐 top이 되기 위해 사투를 무릅써야 할 전장인 셈이다.

게는 조정 은어다. 게가 삶긴다는 표현은 자기 제어를 잃고 노를 놓치는 경우를 이른다. 격렬하게 노를 젓던 와중에 놓친다는 건 그저 속도가 떨어지는 차원이 아니다. 일순간에 승패가 결정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힘의 작용과 반작용 중간에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지면서 자칫 노에 맞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상황이다. 즉 자신이 조정에 삼켜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상징효과를 공감각적 요소를 통해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영화는 조정 시합은 물론 일상훈련인 로잉 머신 조작만으로도 치열한 전투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을 구조화하는데 성공했다.
 
5_원초적 욕망과 극한의 수행 사이 경계에 선 주인공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 노비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알렉스 돌은 결코 스포츠 학원물의 이상적인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그 반대에 가까운 존재다. 그녀는 끝까지 단체경기인 조정의 근본취지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을뿐더러, 친구 한명 과연 둘 수 있을까 의문부호가 붙을 정도로 파행적인 대인관계를 고칠 일도 안 생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과연 남는 건 무엇일까?
 
종국엔 고독과 허무만이 남을지 모르는 자신만의 경지를 주인공은 끝까지 달려보기로 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과거가 왜 그런 강박과 욕망에 휩싸여 살아가는지를 해설하지만 그걸 듣더라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알렉스 돌의 행보는 관객 일반에 공감 받는 것은 애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우리 통념을 뭉개버리고 오직 자신만의 목표,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만을 생명의 확인처럼 몰두하는 주인공의 막판 풍경은 어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물론 롤 모델로 홍보하거나 주변 지인으로 가까이 두기는 꺼려질 테지만 말이다.
 
<더 노비스>는 뛰어난 테크니션이 강렬한 자전적 체험을 제대로 가공하고, 골라 뽑은 배우를 통해 영화 속 세계를 구현하는 정석적인 미덕이 극한의 표현과 상징을 통해 펼쳐지는 작품이다. 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는 당연히 일반적일 수 없겠지만, 이 영화가 주인공의 완벽주의를 그대로 닮은 얼굴을 한 작품이자 고도로 발달한 기예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주 기이한 영화적 체험의 순간을 제공하는 결실이다.
 
<작품정보>
 
더 노비스 The Novice
2021|미국|스릴러
2022.05.25. 개봉|97분|15세 관람가
감독 로런 해더웨이
주연 이사벨 퍼만(알렉스 돌 역), 제이미 포사이스(제이미 브릴 역), 딜런(대니 역)
출연 케이트 드러먼드(에드워즈 코치 역), 조나단 체리(피트 코치 역),
제니 로스(위노나 역), 니키 듀발(트라이-하드 역)
촬영 토드 마틴
수입 영화사 진진
배급 영화사 진진
 
2021 트라이베카영화제 미국장편경쟁-작품상/여우주연상/촬영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