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아내>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 FDC

 
러시아 출신이었기에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 자리였다. 그만큼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대면했을 때 뭐라 인사를 건네는 게 좋을지 적확한 말을 찾기 어려웠다. 19일(현지 시각) 칸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모처에서 만난 그에게 "지금 현재 상태가 괜찮은지 여기까지 오는 데 고생하셨다"고 하자 그에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살짝 스쳐 지나갔다.
 
러시아 전설적인 록커 빅토르 최를 다룬 <레토>로 2018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당시 러시아 정부로부터 가택 연금조치를 받아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주연 배우 유태오가 감독의 석방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직후 감독은 고국을 탈출했고, 현재는 독일에 거주 중이다. 그 와중에 4년 만에 신작을 들고 칸을 찾은 것. 총 세 번 칸영화제 초청을 받았던 그는 이번에야 처음으로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었다.

"전쟁은 너무나 끔찍"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최라는 의미도 있지만 칸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강하게 지지하며 연대를 선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개막식 때 영상을 통해 영화계의 연대를 촉구했고, 그 메시지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영화 이야기 전에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에게 그 질문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푸틴 대통령 체제에 비판적 입장을 꾸준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택 연금 또한 반체제 인사라는 낙인의 결과물이었다.
 
"내게 연극, 영화, 음악 등의 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중요하다. 빌어먹을 정치보다 훨씬 말이다"라고 운을 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강경한 태도였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메시지에 그는 "나 역시 같은 입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음식도 없어 몇 주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말을 이어갔다.
 
"특별히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공정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내 영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모든 예술이 정치적이기도 하지. 세상의 모든 끔찍한 일은 정치에 의해 시작되지만 정치가 그걸 멈출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걸 예술이 깨우칠 수 있다.
 
사실 러시아의 문학, 영화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파괴한다. 지금의 러시아를 보면 법도 사회적 시스템도 사람을 구속하고 제한하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럴수록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난 영화를 하면서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극장을 좋아하고 그곳이 바로 내가 일하는 이유기도 하다. 조국에 미래가 없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나처럼 유럽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의 한 장면.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의 한 장면. ⓒ FDC

 
"역사적 음악가 통해 사람들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고 싶어"
 
이번에 발표한 영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영화는 그중에서도 그의 짧은 결혼생활을 아내 안토니오 밀리우코바 (Antonina Milioukova)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를 너무 사모한 나머지 사제지간이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결혼까지 했지만 단 몇 주간의 결혼생활은 그녀에게도 차이코프스키에게도 불행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감독은 2013년 무렵부터 준비해왔다고 한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그녀의 삶과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며 설명을 이어 갔다.
 
"왜 그녀가 차이코프스키와 사랑에 빠졌을까. 러시아계 유럽인인 그녀를 통해 난 러시아인과 그 외 사람들에게 차이코프스키가 무엇이었는지 말하려 했다. 오늘날 러시아인에게 차이코프스키는 마치 박물관 속 기념물과도 같다. 여러분들에게 차이코프스키는 어떤 존재인가? 러시아는 자랑스러워하지만 그의 결혼생활과 관련해 일어난 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나아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에게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무엇인지 질문할 것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해당 작품을 여러 다큐멘터리와 책에 기록된 실화에 근거해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성애자로 알려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그는 의문을 제기하며 "게이라는 말은 그를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동시에 그는 "차이코프스키는 정말 복잡한 사람이었다"며 "그가 일반적인 성적 취향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건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 온전하게 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에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라 덧붙였다.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의 한 장면.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의 한 장면. ⓒ FDC

 
"분명한 건 차이코프스키는 예술가였다는 사실이다. 나르시스트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그의 삶의 중요한 목표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었고, 그 외 (결혼생활 등) 것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 열정과 그의 삶에서 성적 지향성 문제는 어쩌면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20일까지 일곱 차례 상영된 이 작품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화제 소식지로 참여하고 있는 <스크린>에는 평균 평점이 4점 만점에 2.1점으로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다. 평론가들 또한 감독의 탐미주의와 스토리 구성에 극찬을 보내거나 완결성이 떨어진다며 비판하는 식으로 크게 나뉘는 분위기다.
 
키릴 세렌브렌니코프 감독은 인터뷰 말미 "이 영화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며 "러시아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게 된 게 너무 절망적이다. 그럴수록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공식 수입사가 정해진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약 20분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러시아에 계시는) 90세인 아버지와 하루에 두 번씩 안부를 묻고 지내고 있다"며 "지긋지긋한 전쟁이 너무도 싫다. 이 상황을 만든 푸틴은 엿이나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래된 피로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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