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야기꾼'이 돌아왔다. 9년 만에 장편소설로 돌아온 김영하 작가가 18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 154화에 출연했다. '꾼' 특집으로 꾸며진 방송에서 김영하는 소리꾼 마포 로르, 재주꾼 김수지 아나운서, 나눔꾼 조근식 약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유재석은 김영하를 반갑게 맞이한 후 '보고 말하고 읽는 모든 것이 서점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재치있게 소개했다. 

오랜만에 작품을 발표한 터라 당당하게 '소설 쓰는 김영하'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수려한 입담으로 유재석과 조세호을 집중시켰다. 김영하의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그 안에 담긴 기발한 상상력은 흥미로웠다. 또, 일반적인 관점을 뒤집는 창의적인 접근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가 하면 인간관계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따뜻한 조언은 듣는 이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가 다를 때 재밌는 것들이 많이 생겨요." (김영하)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기 앞서, 조세호는 김영하에게 'MBTI'가 무엇인지 물었다. 상대방의 유형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대화를 수월하게 이끌어나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던질 법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김영하는 "비밀이에요"라며 답을 피했다. 그는 MBTI가 재미있는 툴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하는 결국 MBTI는 나 스스로 (나에 대해) 검사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이기 때문에 잘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한 번 체크하도록 제안하고, 서로의 검사지를 대조해 볼 것을 추천했다. 이를 통해 좀더 입체적인 나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재미있는 불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김영하의 '쓰지 않을 이야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어서 '소설가의 발상법'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김영하는 자신의 경우 '절대 쓰지 않을 이야기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째서 '반드시 써야 할 이야기들의 목록'이 아닌 걸까. 김영하는 '이거 꼭 해야지'라고 마음 먹으면 쓸 때부터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가령, 가족들이 모여 '꼭 가고 싶은 여름 휴가지'를 작성한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가족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될 테고, 여러 이유를 들어 선택지를 좁혀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절대 가지 않을 휴가지를 적으면 어떨까. 어차피 가지 않을 곳이기에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김영하는 그러다 문득, '거길 왜 우리가 못 가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절대 못 갈 거라 여겼던 곳으로 떠나는 게 의외로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안 쓴다고 생각하고 부담없이 막 써보고, 나중에 쓸 게 없으면 그 노트를 펼쳐보는 것이다. 김영하는 당시에는 못 쓸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시대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유재석과 조세호에게도 '절대 안 할 프로그램 목록'을 적어보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많은 삶 중의 하나고, 나밖에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견딜 만해요." (김영하)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대답이 있겠으나, 김영하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는 나와 내 삶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것의 순기능에 대해 언급했다. "나의 비슷할 수 있었던 누군가의 다른 삶을 굉장히 상세하게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걸 아주 세밀하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살고 있는 삶이 특별해 보"인다는 것이다. 

김영하는 지금 나의 삶은 나밖에 만들어갈 수 없는 이야기, 나만이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그 중간 매체가 '소설'이다. 소설은 나와 비슷할 수 있었던 누군가의 다른 삶을, 혹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의 감정을 매우 상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간접체험을 통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자책하지 마세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어요. 그런 사람들은 거의 뭘 잘못하지 않아요. 인간관계를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힘이 약해서 당하는 일이에요." (김영하) 

한편, 김영하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워하는 젊은 취준생이나 불안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건넸다. 그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인간관계를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나?'라는 생각에 자꾸만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바꾸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김영하의 생각은 달랐다. 

20대의 김영하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혔는데, 특히 원고료를 떼 먹는 사람과 많이 싸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사장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깨달은 건, "뭘 잘못해서 당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힘이 약하고 만만해서 당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김영하는 지금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인생 모토를 얘기했다. 그의 인생 모토는 능력의 100%를 다하지 않고 쓸 수 있는 60~70%만 쓴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절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정도일까. 좀 의외일 수 있는 말인데, 김영하는 항상 최선을 다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인생은 길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모든 힘을 다 쓰면 회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영하는 '나'를 최대치로 쏟아부을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남겨둔 여분의 에너지가 모여 갑작스러운 위기에 맞서는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꿈꿨던 지점에 100%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게 된 어떤 곳에서 보람을 찾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깊은 위로를, 누군가는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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