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걸춘향>과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최고의 사랑> <호텔 델루나> 등을 집필한 홍정은-홍미란 작가와 <베토벤 바이러스>로 유명한 홍진아-홍자람 작가는 친자매로 활동한 드라마 작가로 유명하다(홍진아 작가는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 혼자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들 중에서는 류승완 감독과 류승범, 엄태화 감독과 엄태구, 김미조 감독과 김가빈 등 감독과 배우 형제는 종종 있지만 연출을 함께 하는 형제, 자매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반면에 할리우드에서는 형제 감독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을 휩쓸었고 칸영화제에서 무려 3번이나 감독상을 수상했던 코엔 형제는 세계적인 형제 감독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형제로 태어나 남매를 거쳐 지금은 자매가 된 '더 워쇼스키스'도 1999년 <매트릭스>를 통해 세계 영화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대표적인 형제 감독이다.

이 밖에도 리들리 스콧 감독과 고 토니 스콧 감독은 공동연출은 하지 않지만 각자 독창적인 스타일의 연출로 영화계에서 인정 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11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며 코미디 전문 감독으로 사랑 받은 피터 패럴리와 바비 패럴리도 할리우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형제 감독이다. 패럴리 형제는 지난 1994년 떠오르는 코미디 배우 짐 캐리와 연기파 배우 제프 다니엘스를 캐스팅해 장편 데뷔작 <덤 앤 더머>를 만들었다.
 
 두 배우가 대놓고 바보연기를 선보인 <덤 앤 더머>는 제작비의 1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두 배우가 대놓고 바보연기를 선보인 <덤 앤 더머>는 제작비의 1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에미상 주·조연상 휩쓴 연기파 배우의 바보연기

미시간 대학에서 영어와 연극을 전공한 다니엘스는 1981년 밀로스 포만 감독의 <래그타임>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다. 그리고 1983년 <사관과 신사>로 유명한 데브라 윙거와 <애정의 조건>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니엘스는 1986년 우디 알렌 감독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로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1990년 <아라크네의 비밀>로 새턴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파 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진 다니엘스는 1994년 서울에서만 87만 관객을 동원한 액션영화 <스피드>에서 SWAT대원 해리 템플을 연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리고 국내 관객들은 1994년 연말 제프 다니엘스라는 배우를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된 작품을 만났다. 다니엘스가 혼신의 바보연기를 선보였던 레전드 코미디 영화 <덤 앤 더머>였다.

그동안 주로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다니엘스는 <덤 앤 더머>에서 해리 던을 연기하며 짐 캐리와 함께 바보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1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덤 앤 더머>는 세계적으로 2억 4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제작비의 14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물론 원톱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다니엘스는 1994년 한 해 동안 <스피드>와 <덤 앤 더머>를 통해 5억 9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다니엘스는 < 101달마시안 >에서 수컷 달마시안 풍고의 주인 로저를 연기했고 <아름다운 비행>에서는 후덕한 아빠 연기를 위해 살을 찌우고 수염을 기르기도 했다. 비록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다니엘스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로 꾸준히 활동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 세 시즌에 걸쳐 방송된 드라마 <뉴스룸>을 통해 2013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달렸다.

2015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에서 NASA 국장 테디 샌더스를 연기한 다니엘스는 고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에서는 애플사의 3대 경영자 존 스컬리 역을 맡았다. 2018년 넷플릭스 드라마 <그 땅에는 신이 없다-갓레스>에서 악독한 무법자 프랭크 그리핀으로 또 한 번 연기변신을 시도한 다니엘스는 2018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에미상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가 됐다.

배울 점도 있는 바보들의 무한긍정주의
 
 로이드(왼쪽)와 해리는 영화 속에서 좀처럼 진지해지거나 우울해지지 않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다.

로이드(왼쪽)와 해리는 영화 속에서 좀처럼 진지해지거나 우울해지지 않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코미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고 개그 프로그램이나 공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실컷 웃을 준비를 하고 열린 마음으로 영화나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과 얼마나 웃기는지 냉정하게 분석하려는 관객이 느끼는 만족도의 차이는 크게 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코미디는 작품의 완성도 만큼이나 작품을 대하는 관객들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덤 앤 더머>는 관객들과 작품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면서 전설적인 코미디 영화가 됐다.

사실 <덤 앤 더머>에 등장하는 웃음코드들은 마냥 건강하고 순수하다고 보긴 힘들다. 실제로 <덤 앤 더머>에는 소위 '화장실 개그'로 불리는 지저분한 개그코드들이 제법 많이 등장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로이드(짐 캐리 분)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에게 죽은 새를 팔아 넘긴 행동은 어른으로서 지탄 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는 초창기 패럴리 형제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로이드와 해리(제프 다니엘스 분)가 가진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현대인들이 충분히 배울 가치가 있다. 영화 중반부 길을 착각한 로이드는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았고 이에 실망한 해리는 로이드와 크게 싸운 후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로이드는 마을 꼬마에게 차를 주고 연비가 좋은 작은 오토바이를 얻어와 해리에게 화해를 시도한다. 이때 해리는 "이럴 때마다 널 다시 보게 된단 말이야"라고 좋아하며 로이드를 용서했다.

로이드와 해리는 먼 곳까지 떠나 목숨을 걸고 대형 사건을 해결하지만 알고 보니 로이드가 반한 여성인 메리(로렌 홀리 분)는 남편이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실망한 두 사람 앞에 수영복 콘테스트에 출전하는 젊은 여성들이 잔뜩 나타났고 그들은 오일을 발라줄 젊은 남자 2명을 찾는다며 로이드와 해리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끝까지 '덤 앤 더머'였던 로이드와 해리는 마을의 위치를 안내해 주며 '행운의 주인공이 될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2014년에 개봉한 <덤 앤 더머 투>까지 공동 연출을 이어가던 패럴리 형제는 차기작부터 따로 작업을 했다. 특히 형 피터 패럴리 감독은 2018년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으로 유명한 비고 모텐슨을 주인공으로 한 <그린 북>을 연출했다. 개봉 후 엄청난 호평을 받은 <그린 북>은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휩쓸었고 피터 페럴리 감독은 '코미디 전문 감독'이라는 오랜 수식어를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짐 캐리의 실제 아내가 됐던 <덤 앤 더머>의 히로인
 
 <덤 앤 더머>의 히로인이었던 로렌 홀리는 1996년 짐 캐리와 실제 부부가 됐지만 1년 만에 이혼했다.

<덤 앤 더머>의 히로인이었던 로렌 홀리는 1996년 짐 캐리와 실제 부부가 됐지만 1년 만에 이혼했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는 종종 실제 연인이나 부부사이인 배우들이 한 작품에 출연하기도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와 니콜레티 브라스키 부부처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범죄도시>의 마동석과 예정화처럼 코믹하게 보일 때도 있다(물론 <범죄도시>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치는 장면이 없다). <덤 앤 더머>에서도 짐 캐리의 두 번째 아내인 로렌 홀리가 여주인공 메리 스완슨으로 등장했다(물론 <덤 앤 더머> 출연 당시엔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니었다).

조금 덜렁대지만 친절하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인 메리는 바보 같지만 유쾌한 리무진 기사 로이드에게 반하게 한다. 그리고 의외로 수줍은 성격의 로이드 대신 자신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 해리와 친해지면서 <덤 앤 더머>는 잠시나마 막장 치정극이 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메리는 사건이 끝난 후 찾아온 남편을 로이드와 해리에게 소개한다. 메리와의 로맨스를 꿈꾸던 로이드와 해리가 또 한 번 '덤 앤 더머'가 되는 순간이었다.

살인 청부업자 조는 영화의 최종보스인 니콜라스(찰스 라킷 분)에게 고용돼 로이드와 해리를 죽이고 가방을 찾아 오라는 청부를 받는다. 처음엔 로이드와 해리가 자신과 같은 킬러라고 착각하지만 로이드와 해리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본 후 이들을 독살하려 한다. 하지만 로이드와 해리는 조를 골탕 먹이기 위해 조의 버거에 매운 고추를 잔뜩 넣었고 해리가 쓰러진 조에게 자신들에게 먹이려던 쥐약을 먹게 하면서 조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다.

청부업자 조를 연기한 배우 마이크 스타는 197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베테랑 연기자로 <내츄럴> <킹콩2> < 7월 4일생 >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등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좋은 친구들> <보디가드> 등에 출연했던 마이크 스타는 192cm의 큰 신장과 강인한 인상으로 선 굵은 연기를 주로 맡았었기 때문에 <덤 앤 더머>는 그에게도 흔치 않은 코믹연기 도전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덤 앤 더머 패럴리 형제 제프 다니엘스 짐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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