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정규 6집 리패키지 'END THEORY : Final Edition'

윤하의 정규 6집 리패키지 'END THEORY : Final Edition' ⓒ 씨나인이엔티

 
지난해 11월, 가수 윤하가 발표한 정규 6집 < END THEORY >(2021)는 가수에게나, 팬에게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오랜 부침을 거듭했던 윤하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궤도로 올라왔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었으며, 이른바 '록윤하'를 그리워했던 팬들의 마음 역시 만족시켰다. 2007년 한국 데뷔 이후, 15년 동안 윤하를 응원해왔던 나에게도, 이 앨범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스무살의 '피아노 락커'에게 푹 빠졌던 과거, 그리고 완숙한 싱어송라이터의 오늘이 모두 공존했기 때문이다.

< END THEORY >를 유심히 들어본 사람이라면, 윤하의 관심사가 결코 범상치 않다는 것을 포착했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우주'였다. 윤하는 지난해 한 방송에서 이 앨범이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상징되는 폐쇄와 축소의 시대, 윤하는 오히려 커리어의 어느 순간보다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간의 존재를 긍정하는 대곡 '별의 조각', 추억의 명곡 '혜성'과 연결되는 '오르트 구름', 기후 위기의 시계를 비춘 '6년 230일' 등, 다른 대중 가수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격의 시어들이 가득했다. 윤하는 새 앨범을 홍보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안될과학' 등의 과학 유튜브 채널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중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중 ⓒ 씨나인이엔티

 
윤하는 지난 3월, < END THEORY >의 확장판인 < END THEORY : Final Edition >를 내놓았다. 정규 앨범의 흐름을 하루의 흐름과 병치시켰던 그는, 리패키지 앨범의 트랙 순서를 바꾸었다. '살별', 'Black Hole' 등 세 곡의 신곡도 추가되었다. 이 중에서 팬들에게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곡은 '사건의 지평선' 아닐까. 데뷔 초를 연상시키는 모던 록 풍의 편곡, 스타카토의 피아노 연주는 팬들의 오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제목 역시 흥미로웠다.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이라고도 불리는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면을 일컫는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경계면을 기점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1997년에는 폴 W.S 앤더슨 감독이 이에 착안해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호러 영화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윤하는 이 단절을 우리네 이별과 연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노래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열아홉 살의 윤하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기다리다'(2006)에서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 번 웃는 게 좋아',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 게 좋아'라고 노래했다. 맹목적이라 할 만큼 순수한 사랑이 있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야기는 나이테에 비례해 성장했다. 이제는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을 과거의 것으로 인정하고, 묻어 두고자 하는 어른이 있다. 밝은 멜로디 뒤에는 영화 <봄날은 간다>처럼 추레한 눈물의 시간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하의 시간 속에서, 더 이상 과거의 아픔은 오늘을 움직이는 독립 변수가 아니다. 물론 필사적인 부정의 대상 또한 아니다. 그저 아련한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억은 '아스라이 하얀 빛'이 되었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오늘의 햇살이 더욱 귀하다는 것을 안다. '사건의 지평선'에는 이 이야기가 담담하게, 또 동화처럼 담겨 있다. 그렇게 흔한 이별은 우주의 섭리와 연결된다.

나의 첫 번째 아이돌이었던 윤하는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대의 동반자, 또 멋진 작사가로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은 그 근거다. 단연 윤하가 쓴 최고의 사랑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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