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영국의 산업혁명같은 발전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남긴 말이다. 소위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변화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발전'시키지만 동시에 '상실'과 '희생'을 불러오기도 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지금 현대 사회에서도 이른바 혁명적 변화들이 가져오는 문제점들은, 200년 전 첫 산업혁명 때와 다를 게 없다.
 
5월 17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세상을 바꾼 산업혁명과 슬럼가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윤영휘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등장하여 산업혁명이 인류사회에 가져온 빛과 그림자를 조명했다.
 
인류사의 큰 변혁점으로 꼽히는 산업혁명은 기술의 혁신과 진보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류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현대적인 공업사회로 전환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현대적 기술문명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출발점이 됐다.
 
1차 산업혁명의 상징적 순간이 방적기와 증기기관의 발명이라면,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이 꼽힌다. 그리고 오늘날 시대적 화두로 부상한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설명되고 있다. 산업혁명들은 각 단계별로 인류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과 세계사의 판도까지 큰 영향을 미쳤지만 긍정적인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과중한 노동을 감당하며 슬럼가와 빈민촌으로 내몰린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도 했다. 또한 충분한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 경쟁은 제국주의의 확산과 세계대전까지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산업혁명의 그림자
 

18세기에 유럽의 여러 강대국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축업이 발전한 영국은 모직물 산업이 영국 경제의 핵심산업이었지만, 17세기 들어 동인도회사의 인도진출로 질 좋은 인도의 면직물 '캘리코'가 유럽에 수입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면직 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절감한 영국은 면 생산을 위한 기술 혁신이 본격화디기 시작했다. 1760~1970년대 들어 발전을 거듭하는 방적기술에 새로운 동력을 연결하여 면사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증기기관의 탄생은 1차 산업혁명의 시동을 걸며,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으로 꼽힌다. '산업혁명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는 18세기 초에 토머스 뉴커먼이 처음으로 제작한 증기기관 아이디어를 개량하며 열손실을 줄이는 데 성공한 증기기관을 완성했다. 사람이나 자연이 아닌 기계의 힘으로 물건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
 
같은 양의 원료로 물레 수공업시 5만 시간이 걸렸다면, 증기기관 방적기는 단 135시간으로 단축시킨 획기적인 변화였다. 가내수공업이 주된 생산형태였던 과거와 달리, 기계와 동력의 발전으로 공장이라는 시스템이 발달하게 된다.
 
또한 증기기관은 교통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증기기관차와 철도, 증기선의 같은 운송수단들의 등장이다.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반세기 사이에 영국 전역에 기차와 철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당시에 만든 철도 중 일부는 아직도 영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기차와 철도 덕분에 철광석 등 중요한 원료를 매장지에서부터 제조할 수 있는 공장으로, 그리고 완성된 제품을 다시 판매할 수 있는 시장으로 신속하고 원활하게 운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또한 증기선을 통하여 바다를 넘어 전세계로까지 운송할 수 있게 됐다. 공장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했다면, 증기 교통수단은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하고 소비의 순환구조를 정착시키는 초석이 됐다.
 
현대적인 시간 관리 개념이 등장한 것도 교통의 발달과 영향이 있다. 출발과 도착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운영되어야 하는 열차의 특성상, 열차노선 시간표의 영향으로 정확한 시간 약속 개념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에게 힐링푸드로 유행하기 시작한 피쉬 앤 칩스는 지금도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 계층구조의 변화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이미 1821년경부터 영국에서는 산업 분포도에서 공업의 비중이 32%로 26%의 농업을 추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자연히 이런 변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등장했다. 대량으로 도입된 기계 때문에 수공업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수공업자들은 이른바 '러다이트운동(1811~1816)'로 불리우는 기계파괴 운동을 벌이며 저항했으나 영국 정부에 강경 진압당하고 주동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대에서도 자동화, 스마트화 등 신기술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은 신 러다이트(Neo-Luddite)라고 불린다.
 
그럼에도 산업화라는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의 경제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1500년 가까이 변화가 없었던 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산업혁명 직후로 급격하게 폭증했고 1820년대에 이르면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을 추월하여 1위에 오른다.
 
산업의 발달도 사회 계층구조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산업자본가와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농업사회의 지주-농민 계층의 관계는 공업사회에서 자본가-노동자 계층의 관계로 변화했다. 헨리 아이작 버터필드 등 부를 축적한 산업자본가들은 과거의 귀족 못지 않은 사회의 신흥 상류계층으로 부상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축구는 본래 상류층의 문화였으나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중화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웨스트햄 등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 구단들은 본래 노동자들이 주도한 작은 클럽에서 출발했다.
 
산업혁명은 사회 곳곳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금융업의 발전으로 전국에 은행이 확산되며 본격적인 자본주의 정착의 토대가 됐다. 또한 1863년에는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됐다. 1800년에 약 100만 정도였던 런던의 인구는 100년 사이에 670만까지 폭증했다. 당시 런던은 어느덧 전세계 행정, 산업, 금융, 교통의 중심지로 인정받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거듭났다.
 
1851년 영국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는 산업혁명으로 발전한 영국의 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만국박람회가 열린 수정궁(1936년 화재로 전소)을 보고 영국의 기술력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가 경쟁의식을 느껴서 이에 대항할 만한 건축물로 그 유명한 에펠탑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아동 노동 착취와 관에서 자는 노동자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이처럼 산업혁명은 영국에 큰 부와 영광을 가져다줬지만 정작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계층이 바로 가난한 하층 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밀려나 도시로 몰리면서 특정 지역에 밀집한 빈곤한 노동자들은 뒷골목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당시 이들이 몰린 이스트엔드는 영국에서 최악의 거주 지역으로 통했다.
 
산업자본가나 숙련된 기술노동자들과 달리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노동자는 6일간 80시간 이상, 하루 14~16시간 이상을 쉴틈없이 일해야했다. 그럼에도 공장주들은 얼마 안 되는 노동자들의 휴식시간마저 줄이거나 급여를 깎으며 착취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끝없는 반복 작업을 지속하다가 기계에 신체가 끼어 다치거나 폐질환에 시달리는 일도 빈번했다. 일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언제든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감수해야했다.
 
아동 노동의 착취도 영국의 또다른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하층 계급의 아이들은 생계를 위하여 4~6세부터 탄광, 굴뚝청소, 성냥공장 등에서 일을 해야 했다.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큰 병에 걸리는 참혹한 경우들이 빈번했다. 당시 영국에서 미성년자 고용비율은 대단히 높은 편이었지만, 임금은 성인의 10~20%에 불과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안데르센의 잔혹동화 <성냥팔이 소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굴뚝 청소부> 등은 모두 아동의 노동 착취에 대한  현실을 중요한 소재로 다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추위에 떨다가 안타깝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성냥팔이 소녀가 하필 성냥을 팔고 있었던 것은, 당시 많은 아이들이 성냥 공장에서 일했던 현실에 대한 풍자다. 당시 소녀들은 인체에 해로운 유독성 물질로 만들어진 성냥 공장에서 일하다가 많은 질병과 후유증에 노출되어야 했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았다.
 
하층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이른바 슬럼가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시골에서 올라온 하층 노동자들은 주거환경과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각종 질병이나 전염병에 노출되기 쉬웠고 겨울에는 집에서 얼어죽기도 했다. 
 
당시 런던에서는 이런 슬럼가마저도 갈곳이 없는 노동자들은 관을 침대처럼 대량으로 늘어놓은 도스 하우스나, 밧줄 여인숙 등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상류층 사이에서는 '슬럼가 투어'가 관광코스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같은 영국 사회에서도 양극화된 계층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슬럼가의 특성상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위험한 환경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중반 런던의 매춘부 숫자는 8만 명이었고 이스트엔드 빈민가는 12세 이하 소녀들까지 매춘을 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들은 포주에 의하여 수탈 당하거나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1888년 영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잭 더 리퍼 사건'은 이스트엔트 지역의 윤락가인 화이트채틀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이었다. 당시 최전성기를 누리던 대영제국의 중심이라는 화려한 거대 도시 런던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 사건으로 회자된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인한 석탄 사용의 증가는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초래했다. 수많은 공장으로 인한 매연의 증가로 공기오염이 심각해져서 앞을 볼 수가 없어서 횃불에 의지해야 할 정도였고, 대도시일수록 상황은 심각했다. 1873년 노란색 안개가 일주일간 런던을 덮으며 당시 기관지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만 26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2의 페스트라고 불리우는 결핵이 창궐한 것도 산업혁명 시기다. 1851년에서 1910년까지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결핵으로 사망한 사람들만 40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템즈강이 각종 폐기물로 오염되면서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대유행하기도 했다. 특히 급증했던 빈민가의 사망률로 시체를 묻을 땅조차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818년 맨체스터 면직물 공장 화재사건은 늦게나자 영국 사회의 노동착취-주거환경에 대한 문제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미성년자들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가 우연히 발생한 화재사고로 무려 17명의 소녀들이 목숨을 잃었다. 충격을 받은 영국사회는 1819년 미성년자의 노동환경을 법으로 통제하는 공장법이 통과되고 1833년 개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노동자들도 점차 각성하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개인이나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비판의 목소리는 1840~1850년대를 거치며 점차 조직적인 대규모 파업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같은 현안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노동조합'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했고 1900년에는 노동당이 창설됐다. 물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실제로 반영되고 환경이 개선되는 데는 이후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고 경제적 풍요로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빈곤과 착취, 열악한 거주환경과 환경오염 등이 많은 문제들로 초래했다. 현대에 와서 많이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산업혁명이 4차 시대에 이르렀지만 그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논의는 1차 시대부터 2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현대적인 쟁점으로 계속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세상을 좀더 밝아지게 만들었듯이, 지금의 우리도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계속 주시하고 개선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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