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참 조용한 드라마다. 경기도 산포시에서 나고 자란 기정(이엘),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은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서울에 있는 일터로 오가는데 매일 3시간 이상을 쓰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주말엔 가족의 밭일을 돕는 삼남매의 일상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삼남매는 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지겹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여름에서 가을 사이 삼남매는 이 지겨운 일상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방법마저 조용하다. 직장을 바꾸거나, 독립을 선언한 것도 아닌데 이들은 점차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지겨운 일상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선택한 심리적 해방법을 살펴본다.
 
미정- 추앙을 요구하다
 
 
 미정은 구 씨와 조건없이 서로를 존중해주는 '추앙'을 주고받으면서 생기를 되찾는다.

미정은 구 씨와 조건없이 서로를 존중해주는 '추앙'을 주고받으면서 생기를 되찾는다. ⓒ JTBC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2회, 미정)

삼남매의 막내이자 가장 성실하고 말이 없는 미정이 선택한 방법은 '추앙'이었다. 추앙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네이버 국어 사전)이다. 이는 사랑하고 다르다. 사랑이 온갖 기대와 바람을 품고 있다면 추앙은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4회, 미정)다. 즉, 상대방을 아무런 조건없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다. 이는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심리적 성장을 돕는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로 제시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과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미정이 추앙, 그러니까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택한 것은 지난 관계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됐다. 미정은 6회 "누구랑 있으면 좀 나아 보일까. 그렇게 골라 놓고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응원하진 않아. 나보단 잘 나야 되는데 아주 잘나진 말아야 돼.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 해"라고 말한다.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재는 듯 맺어왔던 관계들이 실망과 지루함만을 더해왔음을 간파해 낸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정은 추앙의 상대로 이름도 모르는 구씨(손석구)를 선택한다. 그리고 과거도 묻지 않고, 술을 끊으라 잔소리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를 응원한다. 동시에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 '추앙'을 주고받기 시작했을 미정은 마침내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6회)
 
미정과 구씨는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면서 조금씩 일상의 생기를 찾아간다. 동시에 미정은 '행복한 척도, 불행한 척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섣불리 조언하거나 위로하지 않는' 해방클럽 활동을 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수용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결국 미정은 12회 구씨가 떠났을 때조차 이렇게 다짐하며 추앙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를 떠난 모든 남자들이 불행하길 바랐어. 내가 하찮은 인간이란 걸 확인한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다 사라져 버려야 되는 것처럼 죽어 없어지길 바랐어. 당신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기를 바랄 거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기를 바랄 거야."

이는 미정이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자신이 '하찮지 않음'을 깨달았음을, 그만큼 단단하게 성장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창희- 투사를 거둬들이고 욕망을 인정한다
 
애인과 이별하면서 등장한 둘째 창희는 자신의 촌스러움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별의 이유를 애인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 이를 나무라는 기정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내가 영화를 혼자 봐서 헤어진 걸로 만들고 걔가 새벽에 딴 놈이랑 톡 해서 헤어진 걸로 만들어야 돼. 내가 별 볼일 없어서 그게 들통나서 헤어진 게 아니라."(3회)
 

이런 그를 더욱 답답하게 하는 건 회사 옆자리에 있는 정 선배다. 정 선배는 부자이면서도 자기 것을 얄미울 만큼 챙기고,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다른 동료들도 대체로 정 선배를 싫어하지만, 창희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도 정 선배 욕만 해대는 창희에게 한 동료는 이렇게 충고한다.

"정아름이 부자가 아니었으면 니가 그렇게 미워했을까?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여자였다면 니가 그렇게 미워했을까. 좀 솔직해지라고. 너도 정아름처럼 욕심이 있는데 없는 척하는 걸 수도 있다고. (…) 니 욕심 부정하지 말고 한 번 펼쳐보라고." (9회)
 

이는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찾아내고 그 타인을 미워하는 '투사'의 심리적 기제를 잘 설명한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촌스러움뿐만 아니라, 마음 속 욕망까지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 날 창희는 밤늦게 구씨의 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갑작스레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았는데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니까 이제 좀 뚫린 것 같아요."

이 순간이 바로 창희가 자신의 촌스러움과 욕망을 시원하게 인정한 순간이었다. 동료의 말을 마음에 담았을 창희는 구씨의 화장실에서 고급 외제차 키를 발견하고는 이를 몰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리고는 이를 솔직히 구씨에게 말하고 마침내 차를 손에 넣는다.
  
 창희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답답한 일상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창희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답답한 일상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 JTBC

 
그 후 창희는 정 선배에게도 부드러워지고, 일상에서 활기를 찾는다. 게다가 그는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는 차를 몰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차가 아니라 아는 형 차임을 강조하고, 차에서 타고 내릴 때 느껴지는 부끄러운 마음도 인정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욕망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만일 그가 자신을 좋게 보이려 포장하려 했다면, 그는 외제차를 타는 자신을 과시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욕망에는 대가도 따르는 법이다. 12회 창희는 자동차 접촉 사고로 다시 머리가 아파진다. 고민 끝에 그는 이를 구씨에게 솔직히 말하고 죽어라 달려 어딘가로 향한다. 아마도 창희는 욕망에 따르는 번민까지 받아들임으로써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정- 과거를 직면할 용기를 내다
 
장녀 기정은 누군가와 사랑을 함으로써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태훈(이기우)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녀는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며 상처를 받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런 마음에 머물면서 기정은 과거 자신에게 고백했던 사람들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자신이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정은 이런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태훈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이는 그녀가 과거를 직면한 데서 비롯된 용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정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는데 그녀는 한바탕 슬퍼한 후 이렇게 말한다.

"편해. 진작 까일 걸."(8회)

이는 기정이 스스로 말하듯 "어떤 산을 넘었음"을 "회피하지 말고 하나하나 마주할 용기"(10회)가 생겨난 데서 비롯된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기정은 까인 후 오히려 생기와 여유를 찾는다. 그리고 '애태우는 사랑'이 아니라 '충만하게 채우는 사랑'을 하겠다고 선언한다(11회). 그 후 기정은 태훈과의 만남에서 보다 솔직한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번엔 태훈이 다가오고 둘은 마침내 사랑을 시작한다.
  
 기정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직면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기정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직면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 JTBC

 
이렇게 <나의 해방일지>의 삼남매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실천하고(미정), 인정하기 싫었던 자신의 욕망을 수용하며(창희),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용기(기정)로 해방에 성공했다.

결국 이들의 해방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데서 비롯됐다 할 수 있다. 해방을 쟁취한 후에도 문득 일상은 지겨워지고, 싫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순간은 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해방일지>의 인물들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런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삶이 답답하고 지겹다면, '해방클럽'의 강령을 기억해 보자.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내가 사랑스러워요"(9회)라는 미정의 고백을 우리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럴 때 '아무 일도 없는' 일상에 생기가 더해질 것이다.

'행복한 척 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 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12회, 해방클럽 강령)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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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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