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 (주)시네마달

 

철거가 진행 중인 낡은 아파트 단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단지 구석구석에서 조심히 표본 채취하듯 몇 개의 식물을 캐내는 중이다. 단순한 채집은 아닌 듯싶다. 리더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해박한 지식으로 동료들에게 식물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다. 소중하게 구근을 챙기고 꽃나무의 뿌리가 다치지 않게, 하지만 운반에 용이토록 죽은 가지는 떼어내면서 꽤 많은 식물을 구조(?)하는 중이다.
 
장면이 전환된다. 낮은 층수의 아파트 단지 건물 높이보다 훨씬 커 보이는 아름드리나무 주변에서 굉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귀를 쫑긋 세우지만 소음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대가는 보기 좋게 서 있던 나무가 무참히 쓰러지는 참상의 목격이다. 굉음의 정체는 나무의 밑동을 전기톱으로 베어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단지의 역사와 함께 했을 울창한 나무가 그 생명을 강제로 빼앗기는 순간은 부당함과 처연함의 복합체로 다가온다.
 
이 도입부만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봉명주공>은 작품이 앞으로 선보일 주제를 간명하게 풀어낸다. 바로 상실과 기억이다. 전자가 아파트 단지와 그곳에 존재했던 생물+무생물의 소멸과 이산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공간에 대한 추억들이 미약하나마 계승되려는 노력의 전시로 드러난다. 근래 몇 년간 공간이 주인공화 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증가 일로인 가운데 본 작품은 독특한 변주를 선보이려 한다.
 
 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 (주)시네마달

 

1_지방 도시를 무대로 한 아파트 재개발 풍경
 
충청북도 청주시 봉명동 주공아파트 1단지는 1983년 연말에 완공된 지역의 1세대 아파트 단지로 총 574세대가 거주해 왔다. 이 단지는 2007년 건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후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경기침체와 조합 내 교통정리 등으로 난항을 겪으며 10여년간 표류해 왔었다. 2020년 6월이 되어 드디어 재건축을 위한 철거에 돌입하게 되었다. (1985년 완공된 주공아파트 2단지는 재개발 추진 중이나 아직 구체적 진전이 없는 상태) 철거가 완공되면 1단지 자리에는 'SK뷰 자이' 1745세대가 2024년에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2020년 2월, 일군의 사람들이 이달 말이면 철거가 시작될 단지 내부를 촬영하고 꽃과 나무가 무성한 중에 지극히 일부를 구조 작업 중이다. 이들은 지나치다 만나는 주민들과 인사하고 사연을 나눈다. 단지 내 곳곳에는 재개발 사업과 조합을 반대하는 현수막 등,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사진촬영과 식물채취에 여념이 없던 일행은 숲 해설가 못지않게 단지 내 식생을 설명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해서.
 
시간대가 바뀌어 3개월 전으로 거슬러간다. 2019년 11월 겨울 초입에 단지 재개발이 확정되던 순간이다. 주민들은 이사 준비에 한창 여념이 없다. '감나무 아저씨'는 대부분 베어 없어질 초목을 안쓰러워한다. 이미 이사를 갔으면서도 볼일 보러 가던 길에 자꾸만 들르게 된다고 한다. 김경희씨 가족은 단지에서 함께했던 추억과 삶의 흔적들을 촬영 팀에게 찬찬히 들려준다. 송이네 가족은 딸 송이가 탄생할 때부터 이제 성인이 되어 이사를 돕는 풍경까지 가족의 시간을 카메라에 기꺼이 공유해준다.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가락을 구성지게 부르던 '흥부자' 강은순 할머니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며칠이고 들려줄 기세다.
 
다시 시간은 물리적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남았던 이들이 이사를 떠나기 시작하고 건물들은 봄과 함께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단지 구석구석을 채우고 꽃길을 만들어줬던 초목들도 건물이 철거되는 것과 함께 하나둘 사라져간다. 일부는 용케 옮겨질 기회를 얻지만 단지의 역사를 지켜보고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과 함께 성장해왔던 거목들 대부분은 단지와 운명을 함께할 상황이다. 철거업무를 맡은 이들이 직무에 충실한 자세로 무덤덤하게 나무를 베어낸다. 그렇게 한 세대를 보낸 아파트 단지와 그곳의 풍경이 사라져간다.
 
2_상실을 기억하려는 세 그룹의 앙상블
 
봉명주공아파트의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이들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개 약진으로 기억 작업을 시작했지만 서로 마주치면서 하나의 물줄기로 합류하게 된다.
 
지은숙 & 지명환 두 시민 사진작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봉명주공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지 건물들,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주민들, 그리고 인간 주민 외에 그곳에 함께 공존했던 새와 고양이, 개, 그리고 식물들을 꾸준히 기록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이어간다. 2019년 봄부터 2020년 가을까지 마지막 2년 가까운 시간이 그들의 카메라에 가득 기록된 셈이다. 이들은 약 5만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그 방대한 아카이브에는 봉명주공의 생명과 파괴가 모두 포함된다. (이들의 작업은 영화와 별도로 2020년 연말에 전시회를 가진 후 <봉명 주공 아파트 사진집>으로 발간되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식물네트워크'는 그 어느 국내 아파트 단지보다 단지 내 식물 구성원 비중이 높았던 봉명주공에서 주민들이 떠난 후 남겨진, 혹은 버려진 식물들 중 가능한 만큼이라도 구조하려는 이들의 모임이다. 30여 년간 사계절 변화를 알려주고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던 식물들 중 극히 일부라도 구하려는 자발적 선의의 집단인 셈이다. 이들은 정성스럽게 함께 하는 이들에게 식물에 대해 지식을 공유하며 작업을 이어나간다. 물론 그들이 구조할 수 있는 식물의 총량은 모양새가 빼어나거나 인기 있는 수종이라 다행히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질 양에 비해선 턱없이 적을 테다. 하지만 봉명주공의 꽃나무들을 소중히 아끼던 주민들의 마음을 계승한 이들은 단연코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카메라의 시선이 따른다. 영화를 만든 김기성 감독과 촬영 팀이다. 앞서 봉명주공의 마지막을 함께 추념하고 기록하기 위해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이들보다 한발 늦게 온 덕분에, 오히려 3자가 동시에 분업하듯 각자 역할을 소화하면서 어우러지는 통합력을 발휘한 셈이다. 감독은 원래 청주가 고향이었다고 한다. 학부에서 환경조각을, 유학시절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감독이 귀국해 자신의 고향에서 이야기를 찾다 발견한 봉명주공의 상황은 공공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를 사로잡았고, 자신의 첫 장편영화 작업을 정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청주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동물, 원>을 작업했던 왕민철 감독과 제작진이 함께 가세했다.(제작, 촬영과 편집, 음악작업이 <동물, 원> 스태프와 공유된다) 청주라는 지역에 소재한 공간을 무대로 '생명'에 대한 묵직한 고민이 이어진 셈이다.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3_한국 현대건축에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소멸되다
 

영화는 봉명주공의 역사를 소개하고 많은 이들의 증언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별도의 인터뷰 해설을 많이 붙이진 않는다. 대부분의 분량은 인간 주민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증언, 그리고 말할 수 없기에 대신 최대한 상세히 조명되는 공간과 비非인간 주민들에 대한 관찰로 채워진다. 비교적 상세한 해설이 붙는 대목은 봉명주공 단지의 특수성에 대한 강조다.
 
봉명주공은 흔히 생각하는 주공아파트의 단조로움과는 꽤 상이한 요소들이 많은 흥미로운 공간이다. 197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도시계획과 연계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하철 2호선 주요 거점 축선에 세워지고, 이후 1980년대 중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전후해 대규모 재개발이 벌어지던 수도권 상황과 청주 봉명주공의 시간대는 다소 상이한 감이 느껴진다.
 
일단 수도권보다 10년 쯤 뒤늦게 세워진 봉명주공 단지는 여러 사정에 의해 상대적으로 단층으로 건설된다. 단지는 엘리베이터 없이 생활 가능한 최대치에 가까운 5층 아파트와 2층 빌라, 그리고 공동주택에 가까운 단층으로 구성되었다. 당대에 고층화로 치닫던 수도권의 주공단지와 달리 오히려 1970년대 초 서울의 초창기 실험성에 가까운, 국내에선 보기 드문 유럽풍 단지였던 셈이다. 공유면적이 넓은데다 요즘처럼 주차장에 집중되거나 고급 공동시설을 설치한 게 아니라 널찍한 길과 마당, 울창한 수목들이 공간을 점유했다. 공동김장이나 꽃길의 마지막 풍경을 통해 과거 전성기 때 단지의 풍광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고 개발 이익이 크지 않다 보니 보다 오래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봉명주공 1단지는 그렇게 한 세대가 순환되는 동안 독특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주공단지의 형편상 현대의 성처럼 울타리를 세우고 편의시설을 으리으리하게 채워 넣진 못했지만 이웃과 경계가 없고 자연의 흐름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 인간과 비非인간 주민들이 공존하는 드문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곡절 끝에 현실에서 구현되었던 봉명주공은 수도권에서 눈을 돌려 투자처를 찾던 부동산 작전세력의 한타 대상으로 끝내 선택되고 만다. 영화에서 두 번째로 전체의 관찰 풍 흐름과 다소 유리되긴 하지만 (감독의 고민 끝에) 직설적 해설이 포함되는 대목이다. 재건축을 썩 탐탁찮게 생각하는 지역 주민의 입을 빌어 감독은 굳이 재개발이 필요한 것인지, 보기 드물게 존재했던 공동성이 오히려 파괴되고 이 곳에서 일생을 보낸 주민 공동체가 무너지는 묵시록을 관객에게 전한다. (봉명주공 재개발 과정에 참여한 지역 주민들은 그래서 본 작품에 대해 썩 우호적이지 않다고 한다)
 
분명 봉명주공 1단지의 형성과정은 내놓으라 하는 당대 건축가들이 참여한 서울의 아파트 건축과정과는 급이 다른, 소 뒤 걸음 치다 쥐 잡는 격이긴 했으되, 그 결과 면에선 건축가들이 꿈꿨던 이상적 도시-마을 공동체 모델과 유사한 결과로 향했다. 하지만 한 세대가 흘러 그 성과는 간직되지 못하고 결국 천편일률적 재개발 광풍으로 휩쓸려 버린 것이라 영화는 증언하고 있다.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4_건축과 재개발을 다룬 작업 중 독자적 봉우리로 솟아오르다
 
예전에는 도시 재개발을 소재로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면 '독립다큐멘터리', 그것도 <상계동 올림픽> 같은 사실상 저항 형태의 작품들을 쉽게 떠올리곤 했다. 과거의 그런 부류 작품들은 주로 대도시에 잔존했던 판자촌이나 달동네 강제개발에 맞서 도시빈민들의 투쟁을 지지/지원하는 기능을 자임했었다. 여전히 해당 유형의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위한 도심 재개발 과정과 그 피해자들이 작품 속 주역이 된다. 용산 참사나 노량진 수산시장, 을지로 공구상가 주민과 소상공인들이 과거 도시빈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상황은 바뀌었어도 기본 구도와 전개 방식은 동일한 작업인 셈이다.
 
최근 10여 년 간 '건축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대항언론 차원 작업과 상이한 결을 가진 일군의 작품들이 속속 등장한다. 대표 격으론 정재은 감독의 건축 아카이브 연대기 시리즈가 있고,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등을 선보인 정다운 & 김종신 감독의 공동작업도 이 유형에 해당될 것이다. 이 작품군은 사회비판적 측면이 대부분 존재하지만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에 착목해 그 구조적 문제로부터 여러 지점들을 풀어내고 있다.
 
<봉명주공>은 특히 정재은 감독의 건축 아카이브 세 번째 작업인 <아파트 생태계>과 연결해서 볼 만한 대목들이 여럿 등장한다. 도시 주거공간으로서 공공기관 주도하의 대규모 주거단지 건설과 그 과정에서의 실험적 시도, 한 세대를 경유하며 '아파트 부족'으로 태어나고 자란 주민들의 드라마, 그리고 시간이 흘러 초창기의 (불완전한) 공공성마저 탈각되고 부동산 계급사회 롤러코스터에 올라타는 광풍에 이르기까지 두 작품은 시차와 지역배경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연계해서 고찰할 거리가 풍성한 편이다.
 
물론 <봉명주공>만의 독자적 색깔은 결코 작지 않다. 건축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대부분 다른 다큐멘터리 작업에 비해 인간 중심적 면모보다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화 되는 경우를 선보이지만 이 작품은 특히 그런 색채가 진하다. 영화 속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여럿 나오지만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그저 몇 사람의 후일담을 지나가듯 간략히 소개할 뿐이다. (가장 많이 자주 등장한, 식생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여성은 끝내 누군지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독의 입장이라 할 카메라 프레임 안에는 음성 증언 대신 자신들의 최후를 전해달라는 쓸쓸한 유언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다가 무참히 소멸해가는 존재들이 가득하다. 소수의 뜻 있는 이들이 벌이는 미약한 기록과 보존 작업에는 항상 파괴의 현장과 잔해의 흔적이 앞뒤로 배치된다. 그저 반복되는 이 패턴만으로도 관객은 슬픔과 공포를 교차하며 겪게 된다. 소리 높이지 않아 더 스산해지는 구성이다.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영화 <봉명주공>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5_꾹꾹 참다 터뜨리는 사라진 공간에 대한 애도
 
하지만 감독도 사람인지라 끝까지 그런 관조적 시선을 고수하지는 않는다.(못한다) 봉명주공 1단지 재개발 사업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사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영화 초반부터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끊임없이 재개발조합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화면 구석에 박힌 채 은근슬쩍 점유하며 무언의 웅변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감독의 입장이 엿보이는 대목은 영화 종료 10분 전쯤 되어서야 출연 인물들의 입을 빌어 대대적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재개발 방식은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하면 유효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감소되거나 정체상태,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 고가의 신축아파트 구매력이 취약한 지방 주민들에겐 별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투기수단으로 일회적 악용만 되는 시류가 통렬히 비판된다. 수도권 재개발에서도 공통되는 문제, 결국 원래 주민은 사라지고 투기자본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유령도시만 남는다는 입장은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란 질문을 자연스럽게 호출한다.
 
그 직후부터 그동안 관찰자의 시선에 머물던 카메라는 응축시켰던 감정을 표출한다. 영화 내내 주민들에게 예찬되던 겹 벚꽃과 버드나무가 '무참'하다는 표현이 절로 떠오르게 만들며 베어져 쓰러진다. 지금껏 주민들의 삶 터전이자 기억의 저장고였던 공간의 목격자인 나무들이 그저 폐목으로 일순간에 죽임당하는 학살의 현장이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법한 풍경화 배경처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뻗어 성장해온 존재들이 한순간에 전기톱 드르륵 소리와 함께 베어 넘겨진다. 수십 년간 그 고목을 보금자리로 삼았던 새들은 이재민이 되어 공허하게 허공을 응시한다. 그때서야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던 음악이 애잔하게 배경으로 깔린다.
 
그렇게 참고 참던 깊은 슬픔이 소리 없는 비통함으로 전이되는 순간, 영화 <봉명주공>은 건축의 미니어처 조형처럼 완성된다. 현실의 봉명주공이 파괴되는 순간 영화 봉명주공은 완성을 맞이하는 아이러니의 순간이다.
 
<작품정보>
 
봉명주공 Land and Housing
2020|한국|다큐멘터리
2022.05.19. 개봉|83분|전체관람가
감독 김기성
주연 홍덕은(본인 역), 지은숙(본인 역), 지명환(본인 역)
제작 왕민철
촬영 왕민철, 김기성
음악 류승현
편집 안지환
제작 리을필름, 케플러49
배급 (주)시네마달
 
2021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한국경쟁 관객심사단상
 
2020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2021 제4회 스페인 인디&다큐 한국영화제
2021 제18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1 제1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2021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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