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happy?(당신은 행복한가요?)"

당신의 답은 어떤가? 이 질문에 즉답을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마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티븐처럼 잠시 텀을 두고 답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짧은 텀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행복이 뭐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6년 만에 단독 시리즈로 돌아온 두 번째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이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명제를 던지며 시작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로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그의 곁을 공식적으로 떠나는 날, 그래도 스티븐(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연인 크리스틴(레이첼 맥아담스 분)의 질문에 행복하다 답한다. 이 정도면 행복하다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크리스틴 앞에서 스티븐은 예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걸까? 그도 아니면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기 두려운 걸까?

하지만 행복하다는 스티븐과 달리, 행복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그 사랑하는 이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던 한 사람, 완다(엘리자베스 올슨 분)이다. 그런데 그녀가 사랑하는 비전, 비브라늄과 마인드 스톤이 결합된 완벽한 인공체는 타노스의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완다는 그와의 사랑을 '판타지'를 통해 구현한다. 바로 ott 시리즈로 방영된 <완다비전>이다. 하지만, 완다가 꿈꾸던 가정은 '판타지'답게 허구였음을 드러내고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그 파멸 끝에 완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녀 '스칼렛 위치'로 확인한다.

한 시리즈 내내 몰입했던 자신이 만든 허구의 '해피홈'에 대한 열망을 완다, 스칼렛 위치는 이제 '멀티버스'를 통해 실현하려 한다. 다중우주의 그 어느 곳 여전히 '존재(?)하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온 '멀티버스 이동'이 가능한 아메리카 차베즈(소시 고메즈 분)를,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는 스칼렛 위치가 된 완다의 욕망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반대한다. 그런 닥터에게 완다는 반문한다. '당신은 규칙을 어기고 영웅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하고 적이 된다?'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서 스파이더맨의 청으로 멀티버스의 대혼돈이 문을 열어제친 건 이미 닥터 스트레인지였다. 닥터는 경우가 다르다고 말하지만 행복을 향한 완다의 흑화된 열망을 막을 수는 없다. 

'모성'을 앞세운 완다의 맹목적인 '행복론'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정의'가 마주선다. 그런데, 그 정의도 고민이 된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등장한 닥터 스트레인지 꿈 속에서 등장한 또 다른 멀티버스 속 '디펜더 스트레인지'는 정의의 이름으로 멀티버스의 여행자 아메리카 차베즈를 소멸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 838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정의의 이름으로 금단의 영역인 '다크 홀드'에 손을 대고, 그것으로 타노스를 막으려 했다. 그로 인해 서로 다른 두 우주가 충돌하는 '인커전'을 초래했다. 그래서 지구 838의 비밀결사 조직인 '일루미나티'는 닥터를 처형하고, 허울좋은 동상만을 남겼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멀티버스'의 균형을 파괴하는 스칼렛 위치, 그런 스칼렛 위치를 막기 위해 멀티버스의 여행자를 제거하려는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멀티버스의 대혼란을 일으킨 또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 그런 저마다 다른 행복과 정의라는 혼돈의 멀티버스는 달리는 기차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두고 정의의 방식을 모색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속 '멀티버스'의 대혼란은 여전히 정의의 방식과 실천에 있어,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그 실현 방식에 있어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은유로 다가온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는 사람만 알게 되는 멀티버스의 세계관 

<닥터 스트레인지: 대 혼돈의 멀티버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 영화라 보여진다. 이미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스칼렛 위치의 습격으로 카마르 타지가 처참하게 파괴되고 완다, 스칼렛 위치를 막기 위한 '비샨티의 서'를 구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와 난데없이 닥터의 세계에 등장한 멀티버스 여행자 아메리카 차베즈는 '멀티버스'의 여행을 떠난다.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에니메이션과 같은 다중 우주의 파장을 거쳐 도착한 지구-838, 이 숫자는 다중 우주가 최소한 838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원을 달리한 그곳 지구에는 또 다른 스트레인지들이 있다. 이미 그의 연기력만으로 캐릭터를 특화시키는 데 발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여러 차원의 스트레인지들. 그들은 스트레인지 특유의 일관된 자존감을 넘어 자만심에 가까운 캐릭터적 특징과 각 차원별 다채로운 프리즘의 색채를 곁들여 다중우주론을 설득한다. 

우리가 사는 단일한 시간, 단일한 공간을 우주로 확장시킨 '어벤져스'까지는 이미 <스타워즈> 이래 익숙한 환타지적 공간이기에 수월했다. 이미 전작의 시리즈로 익숙한 배우들의 스파이더맨이 알고보니 멀티버스 다른 차원 속 스파이더맨으로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까지도 그러려니 했는데, 지구 838 정도에 이르면 보는 이에 따라 '멀티버스'에 대한 피로감이 충분히 느껴질 만한 설정이다. 

무엇보다 <완다비전> <왓이프> <로키> 시리즈까지 마블의 다른 시리즈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수라고 하듯이, 이즈음 마블 시리즈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 전체 세계관과 각 시리즈에 대한 사전 인지가 필수가 되고 보니, 마블 세계관의 충실한 독자가 아니고서는 닥터 스트레인지 속 다채로운 설정들이 난해하거나 부담스럽기 까지 할 수 있을 듯 싶다.

일찌기 영국 미니시리즈 <닥터 후> 이래 멀티버스를 영접한 기자에게 애니메이션<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속 멀티버스는 '신선'한 설정이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즈음에 이르니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한 설정의 피로감이 느껴진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채로운 멀티버스의 설정과 그 세계를 오가며 혼란을 발생시키고, 그 혼란의 막으려고 애쓰는 완다와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결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론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모성'을 통해 들춰낸 '행복'에 대한 질문, 무한질주하는 행복론에 또 다른 맹목적인 '정의'가 제동을 건다. 하지만, 과연 세계 평화를 넘어 '멀티버스'의 평화를 위해 한 생명의 희생은 정당한가라고 다시 영화는 질문을 건넨다. 어쩌면 답은 쉬이 얻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계속되는 다중 우주의 충돌이 빚어내는 인커젼처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숙제일 듯하다. 아니 한바탕 멀티버스의 회오리가 휩쓸고 간 후 'are you happy?'의 우문에 지금 여기서 나의 할 일을 할 뿐이라는 웡의 현답이 '답정너'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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