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내면을 깨닫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그것이 우리가 이 행성에 있는 유일한 이유라고 믿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각 영혼은 잠재적으로 신성하며, 목표는 그 신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입니다." (조지 해리슨)

인도 리시케시에서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경쟁하듯 창작에 열을 올릴 때, 조지 해리슨은 좀 더 진지하게 내면을 깨닫는 시간을 추구했다. 그는 동료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후속 앨범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이렇게 말을 막았다. 

"앨범 이야기하러 여기 온 거 아니잖아. 우린 명상하러 온 거라고!"

폴 매카트니의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아닌가 싶지만, 당시 조지 해리슨은 그만큼 명상이 우선이었다. 그는 명상이 신과 연결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를 초월명상과 인도 리시케시로 이끈 사람이었다. 하지만 명상과 영성을 향한 그의 관심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65년 이후로 인도 음악과 힌두 철학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장편영화 <헬프!>(1965)를 제작할 무렵이었다. 인도 식당에서 촬영하면서 조지 해리슨은 인도 전통 현악기인 시타르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는 그 신비로운 소리에 반해 시타르를 비틀스 음악에 도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런던의 인디아크래프트라는 인도 기념품 가게에서 시타르를 사서 스스로 연습한 다음, 존 레논이 작곡한 '노르웨지안 우드(디스 버드 해스 플로운)'에 사용했다. 1966년에는 시타르 거장 라비 샹카르와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시타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인도 음악에 영감을 받아 시타르, 타블라, 탐부라 같은 인도 악기가 쓰인 비틀스의 <리볼버> 앨범 수록곡 '러브 유 투(Love You To)'를 작곡해냈다. 

인도라는 새로운 세계를 흡수한 조지 해리슨
 
 조지 해리슨의 인도음악탐구 완결판 <디 이너 라이트> 뮤직비디오 캡처.

조지 해리슨의 인도음악탐구 완결판 <디 이너 라이트> 뮤직비디오 캡처. ⓒ Universal Music Group

 
그리고 1966년 9월 조지 해리슨은 스승 라비 샹카르를 따라 처음으로 인도여행을 하면서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도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가 인도라는 새로운 세계와 연결된 시점이 바로 이때다.

이어 비틀스의 1967년도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앨범 수록곡인 '위드인 유 위드아웃 유(Within You Without You)'에서는 인도음계와 박자(16비트 띤딸), 인도풍 보컬을 들려줬다. 1968년 1월에는 아예 인도로 날아가 EMI 뭄바이 스튜디오에서 인도 음악가들과 작업하며 비틀스 싱글 <디 이너 라이트(The Inner Light)>와 영화 <원더월>의 사운드트랙 앨범 <원더월 뮤직>을 녹음했다.

이 두 개의 인도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조지 해리슨은 사로드, 파카바즈, 셰나이, 반수리, 하모늄 등 다채로운 인도 악기 연주를 선보였으며, '노르웨지안 우드'서부터 시작한 비틀스 시절 3년간의 인도음악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음악적인 측면 외에, 정신적으로 조지 해리슨은 1966년 9월, 라비 샹카르를 따라 인도 여행을 했을 때부터 인도의 요가 수행자, 즉 요기에 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히말라야 설산이 에워싸고 있는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 머물 때 시타르 연습을 하면서도 틈틈이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쓴 <어느 요기의 자서전>,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쓴 <라자 요가> 같은 인도 철학책을 탐독했다.

이어 1967년 여름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앨범 발매 이후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 크리슈나 의식 국제협회, 이른바 '하레 크리슈나 운동'을 창설한 인도의 영적 스승 A. C. 박띠베단따 스와미 쁘라부빠다의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 구송 레코드를 구해 그 마하 만트라를 따라 구송했고 존 레논, 도노반 등 동료에게도 만트라를 소개했다.

이후에는 지난 몇 화에 걸쳐 살펴본 바와 같이, 런던 힐튼 호텔에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와 처음 만나 그의 강연을 듣고, 북웨일스 뱅거에 가서 명상 수련회에 참가해 초월명상에 입문하고, 초월명상의 홍보대사가 되어 명상을 널리 알리고, 비틀스 동료와 그 배우자를 모두 데리고 인도에 도착해 몇 주 동안 명상수업을 받으며 리시케시에 은신했다. 조지 해리슨은 리시케시 체류 초반 아슈람에서 만난 캐나다 청년 폴 솔츠먼과 대화 도중, 자신에게 명상이란 어떤 것인지 묻는 말을 듣고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대답했다. 

"명상과 마하리시는 내면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명상의 진동은 놀랍습니다. 나는 약물을 했을 때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 진동은 우주의 영역에 있으며, 이것이 제가 신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우리는 비틀스잖아요? 안 그런가요? 우리는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모든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없습니다. 건강도 없고요. 내면의 평화도 없습니다."

폴 매카트니에게 앨범 얘기 좀 하지 말자고 말했지만, 조지 해리슨도 리시케시에서 '데라둔(Dehra Dun)', '사우어 밀크 씨(Sour Milk Sea)', '낫 길티(Not Guilty)', '롱 롱 롱(Long Long Long)' 같은 신곡을 썼다. 그 가운데 '데라둔'은 리시케시의 옆마을이자 북인도 성지순례의 중심지인 데라둔을 찬미하는 곡으로, 비틀스 정규 음반이나 솔로 앨범에는 수록되지 못하고 데모 버전만 남았다. 또 '사우어 밀크 씨'는 불만과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초월명상의 과정을 그린 노래이며, 애플 레코드사와 첫 번째로 계약한 동료 가수 재키 로맥스에게 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때 만든 노래 중 비틀스 화이트 앨범에 수록되는 '롱 롱 롱'은 신을 사랑하는 힌두 박띠 신앙에 기초해 신을 다시 만난 기쁨을 노래한 곡이다. 그리고 '화이트 앨범'을 대표하는 명곡이자 기타 대서사시인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멜로디만 인도에서 작곡하고 노랫말은 나중에 영국 부모님 댁에서 작사해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좌절과 불만이 쌓였던 조지 해리슨
 
 1966년 비틀스 맴버 존 레논(가운데), 조지 해리슨(맨 왼쪽), 링고스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1966년 비틀스 맴버 존 레논(가운데), 조지 해리슨(맨 왼쪽), 링고스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한편 그 중 '낫 길티'는 레논과 매카트니를 겨냥한 곡으로, 어쩌면 비틀스 시절 전반의 심경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낸 트랙이다. 그룹에서 제일 나이 어린 멤버로서 조지 해리슨은 아주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했다. 그가 가진 믿음은 조롱받았고 그가 쓴 노래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전면에서 레논/매카트니 콤비가 화기애애하게 '케미'를 자랑할 때, 해리슨은 쓸쓸하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자기 노래를 비틀스 앨범에 한 곡이라도 더 수록하기 위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투쟁해야 했다. 좌절과 불만은 쌓여만 갔다.

그런데 '화이트 앨범' 녹음 세션 이후로 해리슨의 곡에 대한 레논과 매카트니의 무관심이 절정에 달했다. 조지 해리슨은 이러한 상황에 깊은 슬픔을 느꼈고, 급기야 1969년 1월 <겟 백> 세션 때에는 일시적으로 그룹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그는 1987년 <뮤지션>지에 당시를 회고했다. 

"<화이트 앨범>을 만드는 동안 느꼈던 슬픔 때문에 레논과 매카트니에게 화가 났습니다. 나는 그들의 경력을 방해한 죄가 없다고 말했어요. 우리가 리시케시로 마하리시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그들을 잘못 인도한 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 자신을 변호한 것입니다."

조지 해리슨은 리시케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1968년 5월 에셔 데모 세션 때 '낫 길티'를 처음 녹음했다. 이어 몇 달 뒤인 8월 7일 '화이트 앨범' 세션에서 비틀스 멤버 전원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 엔지니어 켄 스코트 등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정식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8월 12일, 최종 완성본인 '테이크 102'가 탄생했다. 무려 102번째 녹음 만에 완성한 것으로, 이는 비틀스 세션에서 가장 많은 녹음 시도로 기록됐다. 이 말은 곧 레논과 매카트니가 해리슨이 만든 곡을 무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자기들이 얕봤던 그 해리슨의 곡을 배우고 연주하려고 그만큼 더 애를 써야 했다는 뜻이다. 
 
 <낫 길티>가 수록된 1979년도 조지 해리슨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낫 길티>가 수록된 1979년도 조지 해리슨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 Dark Horse

 
그러나 멤버들 모두가 그렇게 오랜 시간 녹음에 공들인 '낫 길티'는 결국 화이트 앨범에 실리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조지 해리슨에게 할당된 비틀스 앨범당 두 곡('화이트 앨범'은 더블 앨범이니 네 곡)이 다 찼고, '와일드 허니 파이', '레볼루션 나인' 같은 레논/매카트니 곡에 밀려 최종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후 조지 해리슨은 오랫동안 이 곡을 잊고 있다가 1978년 5월 다시 찾아내 새로 녹음 작업을 개시했다. 그리고 솔로 앨범 <조지 해리슨>에 두 번째 트랙으로 수록하여 이듬해인 1979년 2월 팬들에게 공개했다. 

'낫 길티'의 솔로 버전은 어찌 보면 과거의 좌절을 떠올리게 하는 무척 쓰라린 곡이지만, 원곡처럼 비틀스 시절의 긴장을 폭로하는 노래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주 감미로운 재즈 팝 넘버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재즈 팝 편곡을 통해 날카로운 기타리프와 하프시코드 연주가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던 원곡과 달리 분위기가 훨씬 더 편안해졌다.

우선 세월이 많이 흘렀고, 또 그 무렵 올리비아 아리아스와 재혼하여 아들 다니까지 낳은 뒤 느낀 개인적 만족감이 편곡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조지 해리슨: 리버풀에서 갠지스까지>(오픈하우스, 2011), <살림지식총서 255 비틀스>(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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