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명상을 하기 위해 항상 강의와 식사가 끝나면 곧장 제 방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존과 조지, 폴은 둘러앉아 잼 연주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어요." (프루던스 패로)

리시케시에 명상을 배우러 온 서양인 중 비틀스 외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가장 공을 들인 유명 인사는 배우 미아 패로였다. 우리에겐 순이 프레빈이라는 한국인 딸을 입양해 키운 것으로 잘 알려진 미아 패로는 21세였던 1966년 7월, 라스베이거스에서 30세 연상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결혼했다. 미아 패로는 첫 번째 결혼이었으며, 프랭크 시나트라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1967년 11월, 이 세기의 결혼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4개월 만에 파경으로 끝났다.  

미아 패로가 이러한 파경에 따른 좌절과 절망감을 맛봐야 했던 그 무렵, 초월명상에 푹 빠져있던 여동생 프루던스가 언니에게 명상을 소개했다. 미아 패로는 동생의 초대로 보스턴에 가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처음 만났고 그의 강연을 들었다.

그때부터 미아 패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1968년 1월 24일에는 마하리시, 동생 프루던스를 따라 뉴욕과 런던, 뭄바이, 델리를 거쳐 리시케시에 갔다. 그 중간에 뭄바이에서 그녀는 초월명상 입문식을 치르고는 마하리시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는 패로 자매의 여행경비를 모두 부담하고 아슈람에서 미아 패로를 자기 방으로 불러 개인 교습을 하거나 늘 가까이에 두는 등 이 할리우드 배우를 극진히 대했다. 이에 일부 제자들이 스승에게 그러한 편애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러자 마하리시가 대답했다. 

"미아 패로 같은 세계적인 스타는 좋은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특별하게 대해야 합니다."
 
 1966년 8월 23일 뉴욕 프레스 콘퍼런스에 참석한 비틀스 멤버들.

1966년 8월 23일 뉴욕 프레스 콘퍼런스에 참석한 비틀스 멤버들. ⓒ AP

 
마하리시의 특별대접

어찌 보면 맞는 말 같았지만, 그러한 특별대접은 결국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식되어 훗날 비틀스가 리시케시와 마하리시를 떠나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미아 패로는 이제 막 초월명상을 시작한 단계여서 오랜 시간 명상하지는 않았다. 주로 갠지스강변을 거닐거나 시내에 나가서 쇼핑하거나 도노반 같은 다른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 프루던스 패로는 달랐다. 프루던스 패로는 본인의 자서전 서문 첫 문장을 "저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지만, 제가 아는 제 삶은 1968년에 인도의 리시케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쓸 정도로 누구보다 명상에 열심이었다.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국제 명상 아카데미에서 코스를 밟는 것이 꿈이었다는 프루던스 패로는 말 그대로 밥 먹는 시간과 강의 듣는 시간을 빼고는 자기 방 안에서 명상에 매진했다. 그러다가 3월 초부터는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5일간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방 안에서 명상만 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은 마하리시는 물론, 비틀스 멤버들에까지 걱정을 끼쳤다. 주변의 권유로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방 앞에 가서 그녀를 나오게 하려고 했지만, 프루던스 패로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프루던스 패로를 위해 방 앞에서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오블라디 오블라다' 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존 레논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디어 프루던스(Dear Prudence)'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는 방안에 틀어박힌 프루던스 패로를 향해 이렇게 노래한다. 

프루던스, 나와서 놀지 않을래?
프루던스, 새로운 날을 맞이해봐
해는 떠 있고 하늘은 푸르러
아름다워, 너도 마찬가지야

프루던스, 나와서 놀지 않을래?
프루던스, 눈 좀 떠봐
프루던스, 맑은 하늘을 봐
바람이 약해 새들이 노래할 거야
네가 모든 것의 일부라는 것을
프루던스, 눈 좀 떠보지 않을래?

주위를 둘러봐

프루던스, 한 번 웃어줘
프루던스, 작은 아이처럼 말이지
구름은 데이지 화환이 될 거야
그러니 다시 한번 웃어줄래?


2018년 화이트 앨범 50주년 기념 슈퍼 디럭스 에디션에 수록된, '디어 프루던스' 에셔 데모 버전의 후반부에서는 존 레논의 짧은 내레이션으로 이 노래의 창작 배경을 들을 수 있다. 

"인도 리시케시에서 명상 코스를 진행하던 중이었어요. 그녀가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조만간 완전히 미쳐버리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미쳐가고 있어서 주변에서 모두들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이처럼 지구상 최고 음악가들이 자신을 위해 노래했지만, 정작 프루던스 패로는 다정하고 감사한 일이긴 해도 그들이 자기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하고 바랐으며, 심지어는 마하리시에게 요청해 비틀스와 멀리 떨어진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남는 방이 없어서 그녀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그 뒤로도 자주 공황발작을 일으키고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상태가 심각했던 프루던스 패로는 마하리시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집중 치료 덕분에 3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리시케시를 떠나기 직전 조지 해리슨에게 메시지를 받고 나서 그제서야 존 레논이 그녀를 위해 노래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연이 있는 화이트 앨범의 명곡 '디어 프루던스'에서 존 레논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핑거스타일 기타 주법은 당시 함께 아슈람에 머물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포크 가수 도노반에게 배운 것이었다. 비틀스와 도노반, 마이크 러브 등은 모두 같은 음악가였기 때문에 종종 모여서 잼 연주를 하면서 동료애를 다졌다.

이때 도노반은 존 레논에게 핑거피킹 주법을 가르쳐 주었고, 존 레논은 이 주법을 연습해서 '디어 프루던스'와 '줄리아(Julia)' 두 곡을 만들 때 사용했다. 폴 매카트니는 도노반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다가 혼자 익힌 뒤 '마더 네이처스 선(Mother Nature's Son)'을 작곡할 때 그와 비슷한 핑거스타일 기타 주법을 연주했다.

한편, 도노반은 리시케시에 오기 직전이었던 2월 5일 영국에서 <제니퍼 주니퍼>라는 싱글을 발매했다. 이 싱글은 조지 해리슨의 처제였던 제니 보이드에게 헌정하는 러브송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그룹 플리트우드 맥의 드러머인 믹 플리트우드와 사귀고 있었으나 잠시 결별한 상황이었다. 당시 도노반은 그런 제니 보이드를 짝사랑했기 때문에 <제니퍼 주니퍼>는 사실상 그가 구애 목적으로 쓴 곡이다. 부드러운 말투와 수줍게 웃는 모습이 특징이었던 도노반은 실제로 리시케시 체류 때 제니 보이드에게 그 노래를 직접 들려주었다. 훗날 <제니퍼 주니퍼>라는 같은 제목으로 자서전을 냈던 제니 보이드는 출간 인터뷰에서 당시의 순간을 회상했다. 

"아름다웠어요. 제 평생 함께했던 순간입니다. 노래의 달콤함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도 그랬습니다. 순수한 시간이었어요.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그때 제니 보이드는 도노반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으며, 그 뒤로도 도노반이 불러주는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가까운 친구로 남았다. 그녀는 나중에 믹 플리트우드와 재회한 뒤 그와 결혼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할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비슷했어요. 때로는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냥 친구로 원할 때 좋은 것입니다." (제니 보이드)

대마초 논란 불러온 육포    
 
 비틀스 앨범들.

비틀스 앨범들. ⓒ 연합뉴스

 
아슈람 내의 또 다른 유명 인사였던 비치 보이스의 리드 싱어 마이크 러브는 1967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니세프 자선쇼에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처음 만났다. 그 직후 마하리시에게 명상을 배우면서 초월명상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말 초월명상 지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던 재즈 플루트 연주자 폴 혼과 함께 리시케시 명상 코스에 합류했다.

아슈람에서 그는 폴 매카트니 바로 옆방에 묵으면서 매카트니와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폴 매카트니가 자기 방 앞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다가 야외식탁에서 식사를 즐기던 마이크 러브를 보고 말했다. 

"마이크, 내가 연주할테니 한번 들어봐."

매카트니는 "마이애미 비치"로 시작하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곡은 바로 척 베리의 '백 인 더 유에스에이(Back In The USA)'를 패러디한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알(Back In The U.S.S.R.)'이었다. 마이크 러브는 "와, 멋져"라고 감탄했고, 폴 매카트니는 "맞아, 일종의 비치 보이스 스타일이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때 마이크 러브가 폴 매카트니에게 도움을 줬다. 

"뭘 해야 하는지 알잖아. 브릿지 부분에 러시아 여자애들에 관해 써보는 건 어때? 모스크바 여자애들, 우크라이나 여자애들, 그런 모든 여자애들."

폴 매카트니는 마이크 러브의 말을 받아들여 노랫말을 완성했다.

우크라이나 여자애들이 정말 나를 기절시켰어
그들은 서양을 버리고 떠나가지
그리고 모스크바 여자애들은 내가 노래하고 소리치게 만들어
조지아는 항상 내 마음에 있다는걸!


-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알' 중에서 

마이크 러브와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바로 육포와 관련이 있다. 어려서부터 로스트비프, 양고기, 치킨 등 주로 육식을 하면서 자란 그는 리시케시에서 음식 적응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아슈람 내에서는 모두가 채식으로만 식사했기 때문이다.

리시케시라는 도시 자체가 힌두교 성지라서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고, 아슈람에서는 육식뿐 아니라 흡연과 마약, 술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하지만 비틀스 멤버는 아슈람 내에서 종종 담배를 피웠다). 육식주의자에게 이러한 엄격한 규제는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큰 장애물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을 대비해 육포를 밀반입했다. 항간에는 그가 대마를 몰래 들여 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은 육포였다. 당시에는 아슈람의 규율을 어기고 더 나아가 신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한 셈이었지만, 훗날 마이크 러브는 힌두교 전통 의식에도 참여하는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조지 해리슨: 리버풀에서 갠지스까지>(오픈하우스, 2011), <살림지식총서 255 비틀스>(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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