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쨌든 죽음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말은, 그것은 육체적인 차원에서 죽음이지만, 삶은 어디에서나 계속되고, 정말로 계속 이어져요. 브라이언이 괜찮다는 사실이 위안이 됩니다."(조지 해리슨)

비틀스가 초월명상 세미나에 참석하러 북웨일스 뱅거에 온 지 사흘째 날인 1967년 8월 27일 일요일이었다. 오전에는 강의를 듣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다들 여유롭게 캠퍼스를 산책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요일 오후의 평화를 깬 것은 기숙사 내에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였다.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조수 피터 브라운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폴 매카트니의 여자친구 제인 애셔가 전화를 받자 피터 브라운은 폴 매카트니를 바꿔달라고 했다. 피터 브라운과 통화를 마친 폴 매카트니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멤버들에게 말했다. 

"브라이언이 죽었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
 
 1966년 8월 23일 뉴욕 프레스 콘퍼런스에 참석한 비틀스 멤버들.

1966년 8월 23일 뉴욕 프레스 콘퍼런스에 참석한 비틀스 멤버들. ⓒ AP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이었다. 다음날 명상 세미나에 합류하기로 했던 그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었다. 엡스타인은 전날 밤 수면제 몇 알을 복용하고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약을 복용해왔다. 1966년 8월 이후 비틀스가 순회공연을 중단하고 스튜디오에서 사운드 실험에 집중하면서부터 엡스타인의 역할이 대폭 줄어든 데다가, 매니저 재계약을 앞둔 상태에서 비틀스가 자기를 해고할까봐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정을 멤버들에게는 내색하지 못하고 수면제에 의존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전화를 걸었던 피터 브라운은 벌써 언론이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으니 모두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폴 매카트니에게 조언했다. 결국 뱅거 세미나에서 열흘 간 명상 수업을 듣기로 했던 비틀스의 계획은 단 이틀 만에 중단되었다. 폴 매카트니가 가장 먼저 상황 수습을 위해 런던으로 향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바로 짐을 챙겨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스에게 단순한 매니저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비틀스 그룹을 발굴하고 가르치고 돌봐주면서 전 세계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부와 명예를 선사한 은인이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멤버들에게 존경하는 아버지나 형과 같았고 오랫동안 함께 한 멘토이자 그들의 일부였다. 그러한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비틀스는 여전히 20대 중반으로 어린 나이였고, 엡스타인이 없는 그룹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바칠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것은 그런 흐뭇했던 기억들이라는 것밖에는."(존 레논)
"이건 너무 큰 충격입니다. 정말 놀랍고 당황스러워요."(폴 매카트니)


혼란에 빠진 비틀스 멤버들은 마치 길 잃은 아이 같았다. 그룹은 뱅거를 떠나기에 앞서 자신들의 영적 스승인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찾아갔다. 이제 그들이 의지할 존재는 마하리시였다. 그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얻고 싶었다. 비틀스 네 사람은 스승을 찾아 매니저가 죽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죽었을 뿐입니다. 그의 영혼은 지금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지금처럼 그렇게 슬퍼하면서 계속 그에게 매달리면 영혼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를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놔주십시오."(마하리시 마헤시 요기)

이어 마하리시는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며 죽음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제자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꽃 한 송이씩 손바닥에 쥐여주고는 그것을 부스러지게 하여 그 아름다움이란 사실 몇몇 세포와 물로 조합된 일시적인 환영에 불과하다고 알려줬다. 또 웃음이 나쁜 업보를 없애고 엡스타인의 영혼이 먼 길을 떠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함께 인도에 가서 명상 수업을 계속 이어가자고 멤버들을 다독였다.

런던으로 떠나기 직전, 마하리시가 어떤 위로의 말을 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존 레논이 대답했다.

"그는 우리에게 브라이언을 향한 슬픔과 생각에 압도되지 말고 그 생각을 행복하게 유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브라이언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어디에 있든 그에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날 늦은 저녁 런던에 도착한 뒤, 엡스타인의 죽음에 관해 코멘트를 기다리던 기자들을 향해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말했다. 

"글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우리 중 하나였습니다."(존 레논)
"말로는 경의를 표할 수 없습니다."(조지 해리슨)
"명상은 이런 일들을 견딜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비록 이제 막 조금 배웠지만 말이죠."(존 레논)


겨우 이틀뿐이었지만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명상 훈련은 비틀스 멤버들의 정신력 향상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였다. 명상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이겨낼 힘을 주었다. 그래서였는지 가장 진지하게 명상 수업을 따라갔던 조지 해리슨은 물론이고, 의심 많고 냉소적이었던 존 레논도 이때만큼은 마하리시를 전적으로 믿고 명상에 더 몰입했다. 

이틀 뒤인 8월 29일 화요일 리버풀에서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장례식이 유대교식으로 치러졌다. 고인을 조용히 떠나보내고 싶었던 유족의 뜻에 따라 비틀스 전원은 장례식에 불참했다. 대신 조지 해리슨이 유일하게 장례식에 꽃을 보냈다. 유대교식 장례식이라서 관 위에 그 꽃을 올릴 수는 없었고, 땅속으로 입관할 때 흙과 함께 꽃이 뿌려졌다. 이후 10월 17일 런던 애비 로드의 유대교 회당에서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추도식이 열렸을 때는 비틀스 멤버와 그들의 아내가 모두 참석했다. 특히 이날 추도식에는 조지 해리슨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참석해 아들을 록 스타로 만들어준 은인의 죽음을 기렸다. 

명상 수업 VS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프로젝트
 
 1964년 2월 7일 뉴욕에 도착한 비틀스 멤버들.

1964년 2월 7일 뉴욕에 도착한 비틀스 멤버들. ⓒ AP

 
매니저의 장례식 사흘 뒤였던 9월 1일, 비틀스는 폴 매카트니의 자택에 모여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 이날의 안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는 10월 말에 인도 리시케시에 있는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명상원에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영화 제작에 관한 것이었다.

얼마 전 뱅거 명상 세미나에서 마하리시는 비틀스가 떠나기 전 그들을 리시케시에 있는 자신의 아슈람에 초청했으며, 멤버들도 그들의 영적 스승과 함께 명상을 공부하기 위해 인도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명상을 최우선 순위로 뒀던 조지 해리슨은 가급적 빨리 리시케시에 가서 명상 수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이후 그룹 전면에 나선 폴 매카트니가 반대했다. 매카트니는 매니저가 부재인 상황에서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들 경력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고 팀 동료를 설득했다.

그 결과 비틀스는 인도 여행을 다음해 2월로 미뤘고, 한 시간짜리 TV 스페셜 영화 제작부터 마치기로 했다. 이 결정에 따라 그룹은 9월 5일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의 사운드트랙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어 9월 11일부터는 영화 촬영을 개시해 25일에는 편집을 모두 마쳤다. 영화 제작을 다 끝내자 비틀스는 다시 명상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며, 초월명상의 홍보대사가 되어 방송에 출연해 명상을 널리 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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