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홍콩을 대표하던 배우 고 장국영과 주윤발은 중화권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스타였다. 그리고 두 배우는 모두 홍콩에서 1986년에 개봉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배우보다 가수로 더 유명했던 장국영은 <영웅본색>에서 꽃미남 형사 송자걸을 연기했고 1987년에 개봉한 속편에서는 그 유명한 공중전화 장면을 통해 많은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영웅본색> 오프닝 장면에서 위조지폐를 태워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으로 일약 '멋의 상징'으로 떠오른 주윤발은 <영웅본색>에서 사나이의 의리와 형제의 우애를 강조하다가 '주윤발다운'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1편에서 총알 40여 발이 몸에 박힌 채로 사망한 주윤발의 캐릭터 마크는 영화 공개 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고 속편에서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부활했다.

영화팬이라면 <영웅본색> 속에서 두 배우의 여러 명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영웅본색>의 엔딩 크레딧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올라오는 배우는 고 장국영도, 주윤발도 아니었다. <영웅본색> 개봉 당시 배우의 인지도와 영화 속 비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엔딩 크레딧에도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배우는 바로 송자호 역의 적룡이었다.
 
 <영웅본색>은 영화뿐 아니라 코트, 성냥개비 등 영화 속 소품들까지 유행시켰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작품이었다.

<영웅본색>은 영화뿐 아니라 코트, 성냥개비 등 영화 속 소품들까지 유행시켰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작품이었다. ⓒ 조이앤시네마

 
<영웅본색>의 진짜 주인공은 '적룡'이었다

사실 홍콩에는 성룡이 174cm, 이연걸이 170cm, 고 장국영이 174cm, 유덕화가 175cm, 양조위가 170cm일 정도로 전통적으로 체격이 큰 배우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적룡은 1946년에 태어나 1960년대 후반부터 활동했던 '옛날배우'임에도 183cm 86kg의 당당한 체격에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흔치 않은 스타일의 배우다(물론 <영웅본색>에 함께 출연했던 주윤발 역시 183cm의 큰 체격을 자랑하는 배우다).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홍콩으로 이주한 적룡은 만 11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영춘권을 수련하며 배우의 꿈을 꿨다. 그러던 1968년 쇼 브라더스라는 배우양성소에 들어간 적룡은 1969년 <돌아온 외팔이>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1970년대 여러 무협 영화에 출연하며 액션배우로 활약하던 적룡은 1973년 <자마>에서 뛰어난 악역연기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들어 무협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무협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적룡도 입지가 좁아지는 듯했지만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에 출연하면서 극적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적룡은 <영웅본색>에서의 열연을 통해 대만 금마장과 홍콩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87년에 공개된 <영웅본색> 속편에서도 고 장국영, 주윤발과 함께 주역으로 활약하며 영화의 인기를 주도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무협 전문배우로 활동하던 적룡은 <영웅본색>을 기점으로 누와르 전문배우로 변신했고 <은행풍운>과 <대호출격> <흑전사> <첩혈가두2> 등에 출연했다. 1994년에 개봉했던 <취권2>에서는 성룡의 아버지를 연기하기도 했다. 적룡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영화보다는 드라마 활동에 주력했는데 그중에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포청천>도 있었다(다만 국내 방영 버전은 대만판이었고 적룡은 홍콩판에 출연했다).

적룡은 한국과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2006년 <조폭마누라3>에서 서기의 아버지인 임회장 역으로 특별 출연한 적룡은 2010년 정지훈, 이나영 주연의 < 도망자 플랜B >에서는 제너럴 위라는 역할로 짧게 등장했다. 그리고 같은 해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이었던 <워리어스 웨이>에서는 자객단 두령 역을 맡았고 2012년에는 유오성이 출연했던 중국영화 <유오성의 7인의 암살단>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한 바 있다.

<매트릭스>에 영향 주고 국내에도 리메이크된 걸작
 
 마크(왼쪽)는 송자걸에게 끝내 '형제의 정의'를 알려주지 못한 채 40여 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마크(왼쪽)는 송자걸에게 끝내 '형제의 정의'를 알려주지 못한 채 40여 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 조이앤시네마

 
사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알고 있는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은 리메이크 버전이다. <영웅본색>의 원작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용강 감독이 연출한 흑백영화였다. 이를 서극 감독과 오우삼 감독이 의기투합해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 홍콩 누와르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자 적룡과 주윤발이라는 배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완성했다(장국영에게는 <천년유혼>과<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같은 또 다른 대표작도 있으니).

국내에서는 1987년 5월 지금은 폐관된 서울 서대문의 화양극장에서 개봉해 서울에서만 9만 4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멀티플렉스가 흔해진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매우 적은 관객수지만 1980년대 후반이 '단관 개봉 시대'였음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관객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웅본색>은 극장 개봉 당시보다 비디오 출시 후 청소년들을 비롯한 젊은 남자 관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사실 <영웅본색>은 조직에 배신 당한 2명의 주인공이 최후의 순간 복수를 결심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단순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오우삼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주윤발을 비롯한 배우들의 멋이 조화를 이루며 누와르 영화의 걸작으로 인정 받았다. 실제로 <영웅본색>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일리쉬 액션물로 꼽히는 <매트릭스>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멋진 액션을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영웅본색>에서는 송자호(적룡 분)가 아성(이자웅 분) 조직과의 결투를 앞두고 마크(주윤발 분)에게 "신이 있다고 생각해?"라고 묻는다. 이때 마크는 "물론. 내가 바로 신이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신이야"라는 <영웅본색>의 주제가 담긴 대사를 한다. 이는 <영웅본색> 이후 오우삼 감독의 '시그니처 대사'가 됐고 오우삼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첩혈쌍웅>과 <페이스오프>에서도 이 대사가 그대로 쓰인다.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누와르 영화의 걸작 <영웅본색>은 지난 2010년 <무적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됐다. <파이란>과 <역도산>을 만들었던 송해성 감독이 연출하고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던 <무적자>는 개봉을 앞두고 오우삼 감독을 시사회에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100억 원의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무적자>는 전국 150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치며 빠르게 잊히고 말았다.

흔들리는 송자호 잡아준 택시회사 사장님
 
 송자걸의 아내 재키를 연기한 주보의는 짧은 활동 기간이 아쉬웠던 배우다.

송자걸의 아내 재키를 연기한 주보의는 짧은 활동 기간이 아쉬웠던 배우다. ⓒ 조이앤시네마

 
조직의 배신으로 대만경찰에게 붙잡힌 송자호는 3년 복역 후 출소해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올 것을 다짐하고 소개 받은 택시회사로 찾아가 견숙(증강 분)을 만난다. 까칠한 견숙은 송자호의 전과사실을 들먹이며 놀리다가도 자신은 전과자를 보살피는 걸 좋아한다며 송자호를 택시회사에 취직시켜 준다. 영화 후반부 아성의 패거리들이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 때도 "놈들을 때리면 다시 그 길로 돌아가게 된다"며 송자호의 싸움을 말렸다.

<영웅본색>에서 견숙을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배우 증강은 <영웅본색1, 2>뿐 아니라 <첩혈쌍웅>과 <종횡사해>까지 출연하며 오우삼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증강은 1990년대 후반 주윤발과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해 <리플레이스먼트킬러> <애나 앤드 킹> <러시아워2> < 007어나더데이 > <게이샤의 추억> 등에 출연했다. 하지만 증강은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귀국한 후 격리 중인 호텔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영웅본색>에서는 고 장국영이 연기한 송자걸의 여자친구에서 아내로 발전하는 귀여운 여성 캐릭터 재키가 등장한다. 첼리스트인 재키는 연주 도중 첼로의 받침대가 미끄러지면서 연주를 망치는 등 덜렁대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사이가 틀어진 송자호와 송자걸 형제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속편에서는 예쁜 아이를 낳자마자 송자걸이 공중전화에서 사망하면서 남편을 잃는다.

비록 남성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영웅본색>에서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조연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재키 역은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미국에서 태어난 대만 국적 배우 주보의가 맡았다. 성룡과 함께 출연한 <욕적심>과 <영웅본색1, 2> 정도를 제외하면 주로 코미디나 로맨스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던 주보의는 1990년대 중반 3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비교적 일찍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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