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부터 방영 중인 KBS2 사극 <붉은 단심>은 강력한 신하들로부터 왕권도 지켜내고 사랑도 지켜내려 애쓰는 조선 임금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제12대 주상 이태(이준 분)는 쿠데타로 옹립된 아버지 선종(안내상 분)을 이어 왕이 된 뒤에 그 두 가지를 사수하고자 분투한다.
 
폭군 방벌인 반정(反正)에 힘입어 아버지 선종도 왕이 되고 그 자신도 왕이 된 이태는 세자 시절부터 간직했던 유정(강한나 분)과의 사랑을 소중히 생각한다. 세자빈으로 간택됐던 유정은 반정 주역인 좌의정 박계원(장혁 분)을 따르는 집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문지화를 당해 신분을 감추고 살아간다. 이태는 그런 유정을 보름달 뜨는 밤마다 남몰래 만나며 사랑을 지켜간다.
 
<붉은 단심>은 픽션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의 설정들은 1506년 중종반정 이후를 연상케 한다. 무도한 군주를 내쫓는 반정이 있었고 그 반정으로 제11대 임금이 옹립됐다는 설정은 제10대 연산군이 쫓겨나고 제11대 중종이 추대된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정 주역이 좌의정 박계원이라는 설정도 박원종이 성희안·유순정과 함께 중종반정을 성사시킨 실제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선종의 조강지처가 인영왕후 신씨(우미화 분)라는 설정 역시 중종의 조강지처가 신씨였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실제 역사와 연관되는 또 다른 설정은 반정 이후에 윤씨 가문이 왕실과 사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윤씨(함은정 분)가 이태의 부인이 됐다. 이 설정은 제11대 중종이 신씨를 버리고 장경왕후 윤씨 및 문정왕후 윤씨를 차례로 맞아들인 일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드라마 속의 윤씨 가문은 제12대 임금의 처가가 되고 실제의 윤씨 가문은 제11대 임금의 처가가 됐다는 점만 다르다.

위와 같은 설정들은 이 드라마가 1506년 이후의 제11대 중종 및 제12대 인종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역사와 다른 드라마 속 설정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그런데 실제 역사와 다르게 해놓은 드라마 속 설정 중 하나가 시선을 끈다. 드라마 제작진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비틀어 놓았지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할 설정이 하나 있다.
 
허수아비 임금으로 옹립된 드라마 속의 선종은 조강지처 신씨를 내치라는 반정 공신들의 요구를 받았다. 반정 공신들은 신씨의 친정이 폐주의 신하 가문이라는 이유로 그런 요구를 했다.
 
그런데도 선종은 끝끝내 신씨를 지켜냈다. 그래서 선종에 대한 신씨의 존경과 사랑이 깊어졌다. 그런 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이 드라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지만, 드라마 속의 신씨는 반정 이후로 상당 기간 중전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끊임없는 압력에 신씨는 결국 지치게 된다. 스스로 음독해 목숨을 끊게 된다. 중전 자리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위치에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남편이 의리를 지킨 사실을 만족해하며 그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하지만 실제의 중종은 그렇게 의리 있는 남편이 아니었다. 조강지처 신씨가 연산군의 처조카인 동시에 연산군 정권 실세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반정 주역들이 이혼을 요구하자 비교적 순순히 호응했다.
 
중종이 왕이 되고 7일 뒤의 상황을 기록한 음력으로 중종 1년 9월 9일자(양력 1506년 9월 25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20명 가까운 반정 주역들이 영의정 유순을 앞세워 "신수근의 딸이 중전이 되면 민심이 불안해지니, 사사로운 정을 끊고 밖으로 내치소서"라고 요구했다.
 
중종은 처음에는 "말씀하시는 바는 맞습니다만, 그래도 조강지처인데 어쩌겠습니까?"라며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신하들이 "신들도 이해는 합니다만, 나라를 위한 큰 틀에서 보면 어쩔 수 없습니다"라며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하소서"라고 압박을 가했다. 중종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로 그날 신씨는 궁을 나갔다. 이듬해인 1507년, 중종은 장경왕후 윤씨를 자신의 첫 번째 왕비로 맞이했다.
 
신씨는 7일간 궁에 있었다. 그 7일간, 신씨는 왕후가 아니었다. 그를 왕후로 책봉하는 의식은 없었다. 그가 단경왕후로 추증된 것은 영조 임금 때인 1739년이다. 궁에서 쫓겨난 지 233년 뒤에 왕비로 인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붉은 단심> 속 신씨는 왕후 지위를 유지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에 반해, 실제의 신씨는 왕후가 된 적이 없었다. 7일간 대궐에 체류했을 뿐이었다.
 
중종반정 직후의 중종이 왕권도 얻고 사랑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연산군 정권과 인연이 깊은 신씨를 국모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 반정공신들의 확고한 의지였다. 그래서 중종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그가 택한 것은 왕권이다. 중종이 신씨를 버린 것은 중종과 반정 주역들의 동맹을 상징하는 언약 같은 것이었다. 그런 기초 위에서 중종은 38년간 왕위를 이어갔다.
 
반정의 핵심 주역인 박원종·유순정·성희안은 각각 1510년·1512년·151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던 시절에 핫이슈로 등장한 것이 신씨 복귀 문제였다. 사림파(유림파)로 불리는 개혁적 선비들이 중종과 신씨의 재결합을 촉구하며 여론전을 펼쳐나갔다.
 
사림파 선비들이 재결합을 촉구한 것은 신씨에 대한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훈구파로 불리는 구세력이 주축이 된 반정공신들을 약화시키자면 중종과 그들 간의 언약을 깰 필요가 있었다. 중종과 훈구파를 갈라놓을 목적으로 신씨 문제를 이슈화시켰던 것이다. 장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1515년에는 그런 여론이 한층 비등해졌다.
 
그래서 1515년 이후에 중종은 조강지처에 대한 의리를 뒤늦게나마 지킬 기회가 있었다. 훈구파의 반발이 예상되기는 했지만, 사림파의 지지 여론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신씨와 재결합 하지 않은 중종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하지만, 중종은 신씨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재결합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린 박상·김정을 유배보냈다. 자신의 왕권을 지탱하는 기초가 신씨와의 이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붉은 단심> 속 신씨 왕비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 채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실제의 신씨는 자신을 내친 남편을 향해 공개적인 1인 시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대궐에서 잘 보이는 경복궁 서편 인왕산 바위에 자신이 입던 치마를 널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조선시대 내내 전해졌다. 대궐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치마를 널어놓고 자신의 존재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전국의 설화 및 전설을 조사해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따르면 이 전설은 신수근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서 전해졌다.
 
중종이 이혼 상태를 계속 유지한 사실은 그 시대 정치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중종은 사림파 지도자인 조광조에게 정권을 맡기고 개혁정치를 승인하면서도 '레드라인'만큼은 끝끝내 유지했다. 조광조를 앞세워 훈구파를 약화시키면서도 훈구파가 완전히 약해지도록 놔두지는 않았다.
 
조광조가 중종반정 주역들의 지위·재산·명예를 대거 박탈하는 정국공신 개정 작업을 마무리한 지 나흘 뒤였다. 중종 14년 11월 5일(1519년 12월 6일)인 이날 새벽, 중종은 수사대를 급파해 조광조를 전격 체포하고 1개월 뒤 사형시켰다. 이로써 조광조의 개혁은 상당부분 물거품이 됐다. 중종이 개혁세력을 앞세워 구세력을 약화시키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구세력을 보호했던 것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인 신씨를 내쫓은 중종의 결정은 그 같은 정치적 기반의 핵심 요소다. 그래서 훈구파가 약해진 뒤에도 신씨와 끝내 재결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붉은 단심>은 중종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를 제대로 다루려면, 중종과 신씨의 이혼만큼은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붉은 단심>이 조강지처에 대한 선종의 의리를 묘사한 것은 그 아들 이태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중종시대 정치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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