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나의 루틴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주로 서재에 앉아 글을 쓰거나,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이어진다. 그러다 지칠 때쯤이면 '주말이니까 커피를 무한정으로 마셔도 괜찮겠지? 내일은 늦잠을 자도 좋으니까'라는 자위를 하며 커피를 내리는 정도.

내가 무시무시하고 엄격하게 시간을 지키며 스스로를 재단하는 계획형 인간도 아니기에 가끔은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불금'의 화려한 향연을 좀 즐겨줄 법도 한데, 변화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나의 오만한 루틴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밤공기가 너무 좋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 다다.

아마도 3주 전 금요일이었을 거다. 누군가 틀어놓은 TV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을 타고 내 귀에 도착했다. 익숙한 음률, 그리고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듯 흔들리는 내 마음, 장필순의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였다. 별안간 들이닥친 노래에 몸을 일으켜 검색을 함과 동시에 리모컨으로 노래가 흘러나오는 방송을 틀었다. 한 방송사의 금·토 드라마 <내일>이었다.

거기의 에필로그 영상과 함께 OST로 흘러나오는 노래, 분명 장필순의 노래로 기억하고 있는데, 목소리는 장필순이 아니었고 편곡이 된 곡조는 익숙하지만 한편 생경했다. 가수 수란이 재해석해서 보다 더 부드럽게, 읇조리듯 담담히 부르는 노래는 잠시 일상의 허리를 꺾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래 잊고 있었던 외로움이라는 질료를 극적으로 소환해 온다.

외로움의 시공간에 갇히다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 담긴 앨범.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 담긴 앨범. ⓒ (주)오감엔터테인먼트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도, 이렇게 서재에 홀로 앉아 저녁노을이 지는 정경을 바라볼 때면 잠깐이지만 외로움이라는 시공간에 갇히곤 한다. 흔히들 느끼는 그 외로움과 조금 결이 다를 수는 있어도 어쨌든 문득 혼자라는 느낌과 함께 아무것도 주위에 없다는 각성이 들 때, 외로운 사람으로 변하곤 한다.

어느 하루, 이런 외로움이 사방을 에워싸고 어떤 거름장치도 없이 곧바로 몸에 체득되던 시간이 있었다. 아마 그때도 주말쯤이었고, 역시나 서재에 앉아 책을 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잠시 책을 덮고 무의식적으로 서재에 쌓인 책들과 물건들을 휘~휘 둘러보던 중이었을 것이다. 몇 겹으로 쌓여 책장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책 무더기 속에서 언뜻 오래전 선물 받았던 '한지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 한지필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잠시 인연이 있었던 참 맑은 목소리를 지닌 후배가, 캘리그래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겉면에 직접 써서 만들어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필통이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가 흘림체로 한 자 한 자 박혀있는 그 필통을 보는데,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 시구를 보는데, 갑자기 '삶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외로움의 시공간이 영화, 큐브의 그것처럼 좁혀져 오는 것이 아닌가.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며 위로하고 있는데, 그 순간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실존적 외로움'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몸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아 몹시 놀라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노래다.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킬 때, 그 어떤 판관보다 더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므로.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이 노래를 찾아들었다. 궁극적 외로움에 특화돼 있는 장필순의 목소리는 극에서 극으로 즉시 나를 이끌어 갔다. 그리고 꾸역꾸역 막아뒀던 외로움에 드디어 봇물이 터지는 걸 조용히 목도하라 이른다.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사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1997년 발매된 장필순 5집에 수록된 곡이다. 제목부터 너무나 시적인 이 노래는 거의 모든 곡들이 명곡으로 칭송받는, 우리 가요 100대 명반인 해당 앨범 중에서도 대표곡으로 손꼽힌다. 1990년대를 이끌던 모던 포크록의 대표주자, 장필순의 서정적이고도 맑은 음색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가사와 곡이 어쩌면 이렇게도 어울릴까 싶고, 그이가 누구든 간에 듣는 내내 고요하게 목소리를 들으며 심취할 수밖에 없는 곡이기도 하다. 덧붙여 한 마디로 이 노래를 정의하자면 화려하지 않으나 단단하고도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 같은 노래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노래만큼 훌륭한 소품이 있을까, 3주전 잠시 접했던 드라마 <내일>의 내용 중, 아흔을 넘긴 참전용사의 쓸쓸하지만 장엄한 마지막을 설명하는데 바로 이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나왔다. 심지어 장면 하나하나가 프레임으로 엮이는 드라마에서, 노래는 보이는 것들에 더해져 훨씬 더 빛을 발한다. 의미를 배가 시키고, 긴 여운을 불러오는 시너지를 낸다. 천 마디의 대사보다 3분여의 노래 가사가 주제를 더 쉽게, 더 빨리 이해시키고 다가오는 질문들을 시청자에게 구체적으로 던지기 때문이다. 노래의 소중한 순기능이다.

내일을 다시 꿈꾸다
 
 가수 장필순.

가수 장필순. ⓒ 연합뉴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고독에 평온함이라는 이름을 붙이라 제안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장필순의 목소리로 대면하게 되는 외로움의 얼굴은 평온함 그 자체이기에 이제는 철학자의 심오함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내내 장필순 그는, 청자들에게 외로움의 무게를 피력하고 설득하고 있는데 정작 듣는 이는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장필순의 노래에 등장하는 '나의 외로움'이 아린 시그널을 보낼 때 화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5월 산마다 지천인 아카시아 꽃향이어도 좋겠고, 늦은 저녁 살짝 열어놓은 창으로 몸을 들이는 봄바람이어도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모르는 누군가가 틀어놓은 TV 프로그램의 소음이거나 따라 부르진 못해도 흥얼거릴 정도의 OST면 또 어떤가. 살아있는 것들의 웅성거림, 그것들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외로움은 한시성을 띤다. 그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끝날 것임을 우리 모두는 믿었으면 좋겠다. 먹먹한 검은색에서 시작해 무념무상의 하얀색으로 향해가는 인생 색채 표 그러데이션의 중간쯤, 바로 그곳에 회색의 외로움이 있어 우리를 잠시 주저하게 할 수도 있겠으나 외로움에 온몸으로 화답하는 무엇들의 어진 힘으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되새긴다. 내일을 꿈꾸고, 가끔은 춤추고 노래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ggotdul 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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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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