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서 시즌을 준비할 때 가장 필요한 요소는 바로 '투자'다. 비 시즌 동안 과감한 투자로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팀은 다음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고 반대로 인색한 투자로 주력 선수들을 놓치는 구단은 다음 시즌 성적하락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구단이 동등한 조건에서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구단마다 비 시즌 동안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처럼 대도시를 연고로 두고 있는 구단들은 사실상 투자의 상한선이 없다. 아무리 과감한 투자를 한다 해도 관중수익이나 중계권 수입 등으로 충분히 투자비용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속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지난 겨울 과감한 투자로 선발투수 보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토론토가 캐나다 야구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캐나다 연고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구단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몰마켓 구단이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21세기 들어 무려 11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도 성적을 내지 못하는 빅마켓 구단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11년에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은 파죽의 20연승으로 시즌 103승을 따냈던 2002년 오클랜드가 만든 '스몰마켓의 기적'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머니볼>은 스포츠 영화라는 한계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머니볼>은 스포츠 영화라는 한계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 소니픽처스 릴리징 브에나비스타 영화(주)

 
3번째 장편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뉴욕 대학교 영화학교에 입학한 베넷 밀러 감독은 <양들의 침묵>을 연출한 조나단 드미 감독과 제작자 에드워드 색슨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영화를 공부했다. 여느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뮤직비디오 등을 만들며 경험을 쌓던 밀러 감독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회의를 느끼던 90년대 후반, 뉴욕시내 관광가이드 일을 하는 티모시 스피드 레비치의 인물 다큐멘터리 <뉴욕 크루즈>를 연출하며 각종 다큐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극적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되찾은 밀러 감독은 2005년 극영화 데뷔작 <카포티>를 연출해 세상에 선보였다. 단 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카포티>는 세계적으로 제작비의 7배가 넘는 4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이 작품에서 트루만 카포티 역으로 열연을 펼친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아카데미를 비롯해 무려 8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카포티>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 감독상, 뉴욕 비평가 협회상 신인 작품상을 수상한 밀러 감독은 단숨에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신예감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밀러 감독은 작은 성공에 취해 스스로 슬럼프에 빠져 버리는 일부 감독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카포티> 이후 6년의 준비기간을 가진 밀러 감독은 2011년 차기작으로 자신의 전공분야인 실존인물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 <머니볼>을 선택했다.

<머니볼>은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오클랜드의 단장을 지내며 메이저리그의 스몰마켓 구단 오클랜드를 일약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강호로 이끌었던 빌리 빈 단장(현 오클랜드 부사장)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5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머니볼>은 세계적으로 1억1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빌리 빈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카포티>와 <머니볼>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밀러 감독은 2014년 채닝 테이텀과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시에나 밀러 등이 출연한 아마추어 레슬러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폭스캐처>를 연출했다. 밀러 감독은 <폭스캐처>를 통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주요배우들도 아카데미 등 주요영화제 연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밀러 감독은 <폭스캐처> 이후 8년째 차기작 소식을 들려주지 않고 있다.

주전 3명 떠난 팀이 20연승 달성
 
 브래드 피트는 <머니볼>에서 실존인물 빌리 빈 단장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극찬을 받았다.

브래드 피트는 <머니볼>에서 실존인물 빌리 빈 단장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극찬을 받았다. ⓒ 소니픽처스 릴리징 브에나비스타 영화(주)

 
오클랜드는 2001 시즌이 끝나고 4번 1루수와 1번 중견수, 그리고 마무리 투수가 다른 팀으로 떠났지만 팀의 구단주는 주력 선수들이 떠나면서 세이브된 자금을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데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 분)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트레이드 협상 과정에서 알게 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야구 이론가 피터 브랜드(조나 힐 분)를 스카우트해 독특한 팀 구성을 하게 된다.

<머니볼>이 국내에서는 <메이저리그>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약체 팀이 거둔 기적의 스토리'로 홍보됐지만 사실 2002년의 오클랜드는 2001년(102승)보다 단 1승을 더 올렸을 뿐이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지만 당시 오클랜드에는 에릭 차베스와 미겔 테하다, 팀 허드슨, 마크 멀더, 배리 지토 등 올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실제로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오클랜드를 상대로 통산 1승8패 평균자책점7.00으로 매우 약한 면모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영화 <머니볼>에서는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타선수들의 활약을 최소화했다. 대신 채드 브래드포드와 스캇 해티버그(크리스 프렛 분), 데이비드 저스티스(스티븐 비숍 분)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선수나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 특히 양키스로부터 연봉보조를 받게 된 '왕년의 스타' 저스티스가 팀의 리더가 돼 달라는 빈 단장의 부탁에 해티버그를 찾아가 조언을 해주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무리 <머니볼>의 장르를 휴먼감동실화라고 주장하려 해도 <머니볼>은 엄연한 야구영화다. 따라서 야구팬, 특히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야구팬이 보면 훨씬 재미 있게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머니볼>은 빌리 빈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모두가 정석만을 따르려는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들고나와 세상과 맞서 싸우는 리더의 이야기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에게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

<머니볼>이 더욱 재미 있는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배우 브래드 피트의 열연 덕분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실존인물인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에 완벽하게 빙의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여러 구단과 다각 트레이드 협상을 벌이는 장면에서 입에 가득 넣었던 팝콘을 뱉고 전화를 받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출루율 높은 야구선수가 된 스타로드
 
 '스타로드' 크리스 프랫이 연기한 스캇 해티버그는 실제로도 20연승 달성 경기에서 9회말 대타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다.

'스타로드' 크리스 프랫이 연기한 스캇 해티버그는 실제로도 20연승 달성 경기에서 9회말 대타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다. ⓒ 소니픽처스 릴리징 브에나비스타 영화(주)

 
감독의 반대에도 빌리 빈 단장이 끝까지 주전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고집했던 1루수 스캇 해티버그는 통산 타율 .273 106홈런527타점의 기록이 말해주듯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하지만 빌리 빈 단장과 피터 브랜드 부단장의 말처럼 출루율이 높아 오클랜드의 방향성에 딱 들어 맞는 선수였다. <머니볼>에서 해티버그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어벤져스>의 '스타로드'로 유명한 크리스 프랫이었다.

크리스 프랫은 2011년 <머니볼>을 시작으로 2012년 <제로 다크 서티>, 2013년 <그녀>에서 각각 주조연급 캐릭터로 출연했는데 공교롭게도 프랫이 출연한 세 작품이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몰라도 조연 시절부터 놀라운 작품 선구안을 자랑했던 프랫은 2014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에 이어 2015년 <쥬라기 월드>의 오웬 그레디를 연기하며 일약 슈퍼스타로 도약했다.

<머니볼>에서는 빌리 빈 단장보다 나이가 많은 아트 하우 감독이 은근히 다년계약을 요구하며 선수기용과 관련해 빈 단장과 트러블을 일으킨다. 주인공인 빌리 빈 단장의 결정에 반대하며 대척점에 있었으니 악역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감독이 단장에게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우 감독은 2003년 뉴욕 메츠로 팀을 옮긴 후 서재응(KIA타이거즈 투수코치)을 발굴하며 한국야구팬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머니볼>에서 하우 감독을 연기한 배우는 밀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카포티>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던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다. <미션 임파서블3>의 악역으로도 유명했던 호프만은 2011년 <카포티>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달렸지만 2014년 약물과다복용으로 4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헝거게임> 시리즈가 호프만의 유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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