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노영심 '4월이 울고 있네' 앨범 스틸

노영심 '4월이 울고 있네' 앨범 스틸 ⓒ 지구레코드

 
4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고 팠는가 보다. 참아왔던 울음을 한 번에 드러내는 것처럼 빗줄기가 내리치는가 싶더니 남아 있던 4월의 꽃잎들이 땅에 떨어져 수북이 쌓이고, 아직 찬 기운이 드리워진 봄바람에 제 몸을 이리저리 날리고 있는 걸 보았다. 이렇듯 4월은 대개 희망과 아름다움으로 시작해 쓸쓸함으로 끝을 맺는다. 일 년 열두 달 중 어쩌면 가장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4월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양가감정이 벅차오르는 4월의 마지막 앞에 서면 항상 생각나는 노래 하나가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이맘때 들으면 왜 4월이 우리에게 이런 느낌을 가지게끔 하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곡이다. 바로 노영심이 만들고 부른 '4월이 울고 있네'다.

우리에겐 변진섭이 불러 크게 히트시킨 '희망사항'의 창작자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담담히 곡의 서정성을 따라 부르는 가수로서의 그의 목소리도 꽤나 매력이 있다. 이 곡 '4월이 울고 있네'는 1992년 그가 발표한 1집에 수록된 곡으로 그 이후로 해마다 4월이 끝날 무렵이면 어느 누군가가 자신만의 사연과 함께 이 곡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하곤 해서, 잊을만하면 다시 우리 기억의 어느 끝에서 소환되곤 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마치 4월이 해마다 다시 돌아오듯.

가사를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한 줄 한 줄이 서러움을 머금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서러움을 먹고 자란 계절이 4월인 것처럼, 4월은 원래 그렇게 신에 의해 설계된 달인 것처럼 말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피아노 반주를 기반으로 세상 담담하고 무해한 노영심의 목소리로 부르는 4월의 '앤솔로지'는 서럽다 못해 노래가 끝날 무렵이면 '서글프다'는 감정에 휩싸이게끔 만든다.

그렇게 해마다 누군가의 사연을 통해 그 계절에만 들을 수 있는 좋은 노래 한 곡으로 기억되던 이 노래가 내게도 굉장히 특별하게 가슴으로 걸어 들어왔던 해가 있었다. 그 해의 4월은 '잔인하다'라는 아주 상투적이면서도 무서운 표현이 딱 들어맞아서 계절은 봄의 한가운데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에 몸과 마음을 떨며 한 없이 경직됐던 해였던 거 같기도 하다.

2014년 그 해 봄 4월, 아이는 재수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하며 전교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아이에게 당해 입시 실패와, 그로 인해 선택하게 된 재수는 어쩌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거다. 목표를 항해, 종착지를 항해 잘 달려가던 차에 급 브레이크가 걸리고 아이는 한동안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의 어두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때때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혼자 낯선 곳에서 다시 무한경쟁의 정글로 떨어지게 된 아이는 서울로 올라간 이후 몇 달을 힘들어하며 방황 아닌 방황을 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잘하지 않던 '힘들다'는 소릴 통화 중에 언뜻언뜻 내비치고는 했었으니까.

아마 막 4월에 들어선 하루였을 거다.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잠시 전화를 걸어온 아이는 분명 울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들썩이는 어깨와 참고 있는 울음의 소리가 전해졌다. 흐려지는 말끝에 딸려 들어오는 간헐적인 울음소리에 엄마인 나는 덩달아 녹아내리는 감정을 붙잡으려 전화기를 쥔 손에 자꾸만 힘을 주고 있었고.

"우리 딸, 많이 힘들지? 어쩌지, 엄마가 여기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엄마,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아이가 서울로 올라간 지 세 달이 지난 시점, 생각보다 오르지 않는 시험 점수와 공부에 관한 한 난다, 긴다 하는 친구들 틈에서 아이는 자꾸만 자신감을 잃어가던 차였던 것이다. 힘들다는 아이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며 무화과 열매 하나가 굴러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싸더니 이내 어지러워져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식에게 작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부모에게는 이미 장대비가 오고 천둥이 무섭게 내리친다는 것을 그때 내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

쓰러지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겨우겨우 진정을 시키고 이번 달 모의고사에서도 점수가 오르지 않고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보자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자꾸만 하얘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었고 그때 기적처럼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4월의 어느 하루, 그 누군가도 이 노래로 위로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가 내려오는데
꽃잎이 흩날리는데
나의 눈에는 사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봄비가 내리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나의 귀에는 사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
창문 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보아도
너를 잊을 수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네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 노영심, '4월이 울고 있네' 가사


'아.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그리고 이 찬란하고도 잔인한 4월도 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는 한 없이 찬란하고 희망에 찬 4월일 수도 있겠지만, 밖에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그늘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사월의 흩날리는 꽃잎도, 초록을 더 짙어지게 할 봄비도 서러움과 슬픔의 농축 같겠구나 싶었다.

그런 4월의 다른 얼굴을 읽어내고 고요한 멜로디에 얹어 노래로 만들어낸 노영심의 뛰어난 공감능력이 내 마음으로 그대로 투영돼 오래도록 가슴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4월 16일 '세월호' 소식이 세상의 모든 상식과 희망과 다가올 시간들의 꿈결을 뒤집었고, 아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잔혹성 앞에서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치지 못할 것 같던 울음을 멈추었다. 엄마이기에 남은 자들의 슬픔을 자신만의 결연한 의지로 승화시킨 아이가 고마웠다. 그렇게 2014년 4월은 색으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잿빛을 띠며 우리에게 슬프고도 암울한 기억 하나를 남기고 빗물처럼 꽃잎처럼 사라져 갔다.

일하던 라디오 부스를 떠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라디오의 힘을 믿는다. 아니, 라디오에서 선곡돼 나오는 노래들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영상이 배제된, 오로지 가수의 목소리로만 들려오는 노래에 우리는 울고 웃는다.

가사에 공감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시키기도 한다. 봄비가 내리고 떨어진 꽃잎이 슬프게도 흩날리는 4월 끝의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사연에 실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4월이 울고 있네'를 듣는 당신은 잊고 있던 지난 사랑의 기억을 꺼내 볼 것인가, 아니면 잠시 노래에 젖어 4월의 울고 있는 소리에 귀를 내어 줄 것인가. 

계절은 가고 오는 것, 4월의 등 뒤에는 활짝 웃고 있는 5월이 있을 터이니 그대 지금 다소 아프더라도 너무 염려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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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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