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베이스 연주 위 까슬까슬한 기타 소리가 흐르고, 기계적인 드럼 연주로 구성한 소리의 황무지 위에 미성의 목소리가 흐른다. 청계천의 오래된 레코드 가게에서 구해온, 다 낡아 해진 종이 커버를 조심스레 잡고 먼지를 털어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바이닐 판에서 들릴 법한 음악이다. 고즈넉한 LP 바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이 노래 뭐지, 하고 음악 검색 애플리케이션을 켜게 만들 노래다. 

놀랍게도 이 음반은 2022년의 것이다. 주인공은 1970년대의 신중현도 산울림도 아니다.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의 1인 프로젝트 밴드 콩코드다. 자신이 운영하는 기타 학원에 1년 동안 칩거하며 제작한 첫 앨범 제목은 <초음속 여객기>다. 

4월 16일 홍대에서 오지호를 만나 콩코드와 <초음속 여객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 속 발견한 단어로 밴드 이름을 정했다는 그는 '과거로 가는 교통수단'의 의미를 강조했다. 

"기타를 오래 연주하다 보니 언젠가는 노래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콩코드라는 이름은 피천득의 <인연>을 읽던 도중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고자 펼친 페이지에 있던 단어였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 초음속 여객기가 나오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의 1인 프로젝트 밴드 콩코드는 1년 동안 칩거하며 제작한 첫 앨범 제목은 <초음속 여객기>로 음악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의 1인 프로젝트 밴드 콩코드는 1년 동안 칩거하며 제작한 첫 앨범 제목은 <초음속 여객기>로 음악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지호기타뮤직

 
어린 시절 가수를 꿈꾸던 오지호는 우연히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동엽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기타 연주를 보고 음악인의 길을 다짐했다. 고단한 노력 끝에 컨템퍼러리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집시 밴드, 블루스, 힙합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 세계를 펼쳐나갔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오지호를 음악의 세게로 이끈 록, 특히 그가 사랑하는 1970년대 신중현과 산울림의 선율이 꿈틀대고 있었다.

"기타 선생님께서 신중현과 엽전들, 그리고 산울림의 음악을 추천해주셨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외국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음악이잖아요. 한국의 정서와 로킹한 사운드를 결합한 이 음악, 날것의 에너지를 옮겨 저만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김정미, 부활, 들국화, 조동진, 김민기, 정태춘 등 한국 대중음악을 빛낸 이들의 음악을 자주 들었습니다."

오지호는 콩코드의 모든 작업을 홀로 진행했다.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싱 등 음악 작업뿐 아니라 한정판 카세트테이프 생산과, 홍보까지 자신의 힘으로 마쳤다. 앨범 커버 속 콩코드 모형도 디자이너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모형이다.

"재즈 트리오 활동 때는 항상 형들과 작업을 했어요. 내가 무슨 요청을 해도 잘 맞아떨어지니 편안했죠. 프로 뮤지션들, 학교 교수님들의 모임이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음악을 하다 보니 저의 힘으로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과거의 열악한 환경을 열정으로 돌파한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행보를 짚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노라 소개했다. <초음속 여객기>에 사용된 악기는 모두 저렴하다. 기타는 20만 원대, 마이크는 17만 원짜리다. 나름의 브랜드만 갖춘 악기로 연주했다. 믹싱, 마스터링 공부도 앨범 작업과 동시에 시작한지라 서툴렀다. 오히려 그 점이 음향 전문 엔지니어가 만진 소리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어요. 고음질 음원으로도 녹음해보고, 비싼 장비와 가상 악기를 구입해 연주하기도 했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현재의 시선으로 해석한 과거의 소리 같았거든요. 진짜 옛날 사운드를 만들어야 했고, 고민 끝에 녹음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음악가의 온전한 정신을 복각하고 싶었어요."
 
 1인 밴드 콩코드를 이끄는 기타리스트 오지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초음속 여객기>를 제작, 홍보, 발매했다.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는 동이 났고, 음악계 관계자들이 이 미지의 신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1인 밴드 콩코드를 이끄는 기타리스트 오지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초음속 여객기>를 제작, 홍보, 발매했다.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는 동이 났고, 음악계 관계자들이 이 미지의 신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 지호기타뮤직

 
<초음속 여객기>는 분명히 과거를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앨범을 여는 '무지개꽃 피어있네'의 나른한 기타 연주와 중성적인 목소리는 신중현의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가수들의 음악을 연상케 한다. '그대 또 그리고 그대'의 스트링 선율과 부활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닮은 '미워요', 사랑과 평화의 펑키(Funky)한 연주를 담은 '정말 모르겠네'가 시간을 거슬러 2022년 오늘 등장한 것은 기묘한 일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회상의 정서가 짙어요. 좋은 기억과 슬픈 기억 모두 돌아볼 수 있게끔 하는 소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보컬이었죠. 보컬 톤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현재의 노래가 될 수도, 어제의 노래가 될 수도 있어요. 가사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이건 노래가 아니라 한 편의 시다. 시를 낭송하는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곡 가사를 각각 천 회 이상 읽었더니 자연스레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발화의 높낮이, 어조, 리듬을 재료 삼아 선율을 그려 나갔습니다."

콩코드는 왜 과거로 비행할까. 컨템퍼러리 재즈 뮤지션으로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펼치던 오지호가 단순히 신중현과 산울림을 좋아해서 그 시대의 유산을 다시 가져왔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초음속 여객기>가 과거를 대하는 자세는 진지하여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동시에 마냥 좋았던 과거, 겪어보지 못한 옛날을 복각하는 작품도 아니다. 이 앨범은 1970년대의 음악 문법으로 써내려간 2022년 오지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은 에너지 가득한 날것의 느낌이 짙어요. 저는 약간의 세련을 첨가하고 싶었습니다. 아류, 커버 밴드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 거면 산울림을 듣지, 콩코드를 들을 필요가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다른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인터뷰의 마지막 순간, 순조로이 활주로를 미끄러져 하늘로 날아올라 시간을 거슬러 날아가는 이 초음속 여객기의 향후 항로가 궁금해졌다. 오지호에게 과거가 갖는 의미를 묻고 싶었다. 그는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좋아한다며 자신에게 과거가 갖는 의미를 풀어놓았다.  

"혹시 제주 강정마을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제 고향이 제주도예요. 당시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강정마을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내가 하는 음악, 음악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 음악에 대한 깊은 탐구는 내가 만든 게 아니구나. 많은 사람과 세상이 나를 만든 것이구나...'라고요. 과거의 많은 분이 고민하고 싸워온, 치열하게 고민하는 내용이 저를 만드는 거거든요. 그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거고요. 저는 과거에서 배우는 게 많아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음악 플랫폼 제너레이트(http://naver.me/xBpJnCg2)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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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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