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저녁 무렵, 무대 중앙에 겹으로 둘러쌓인 두 개의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들이 여기가 작은 연회장임을 암시한다. 바깥을 휘감은 66개의 의자는 객석으로, 가운데 자리 잡은 6개의 의자는 배우들의 무대장치로 활용된다. 의자를 제외한 다른 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3.7미터의 낮은 천장에 설치된 조명기와 스피커를 제외하고는.

이 연극의 특징은 배우가 관객과의 경계를 무너트린 형태로 극장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객들 사이로 아주 가까운 곳(실제로 후반부는 관객들 뒤통수에서 발화만으로 극이 흘러가 무대엔 관객들만 남게 된다) 진행된다. 네 명의 배우가 주도하는 특별한 이벤트에 초대된 관객들은 시나브로 연극의 터널로 빠져들게 된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된 SF연극 <순교>의 무대는 두 겹으로 둘러싸인 원형의자들 사이에서 연극이 펼쳐진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된 SF연극 <순교>의 무대는 두 겹으로 둘러싸인 원형의자들 사이에서 연극이 펼쳐진다. ⓒ 필립리

 
짧은 종소리와 함께 단상 위로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사람들 앞에서 남자가 소개하는 발명품은 '영적인 세계에 있는 죽은 자와 통신(극 중에선 통신이라 했지만 극단이 추구해온 키워드인 '연결'이라는 단어로 표시하고 싶다)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는 이것을 통해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발명품 속 음성을 통해 5년 전에 죽은 그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밖에 다양한 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승보다 저승에서 몇 배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의심의 논초리를 보내는 몇몇에게 증명이라도 하듯 남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시범(?)을 선보인다. 이후 기계 속에서 들려오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남자를 따라 죽음의 경계선으로 뛰어든다. 

경계를 넘나드는 두 개의 관점

"어떻습니까? (죽어보니까) 느낌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이렇게까지 상쾌할 줄을 몰랐어요."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끝자락에 위치한 장면은 SF연극 <순교>(극단 돌파구)의 전반부 줄거리다. 무대에 등장한 네 명은 앞으로 벌어질 죽음을 암시하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복장을 했다. 심지어 검은 스모키 화장으로 얼굴엔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음습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이들은 무대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맞닿는다. 연극을 보면서 필자는 '경계를 넘나드는 두 개의 관점'에 주목했다. 우선은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2015년에 창단한 이래 세대·공간·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극점의 '연결'에 관심을 가져왔던 '극단 돌파구'가 이번 작품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두 지점의 연결을 주요 키워드로 잡은 것처럼 보인다. 
 
 <순교> 연극의 공연 사진

<순교> 연극의 공연 사진 ⓒ 극단 돌파구 제공 (c)_이강물

 
그런데 인간의 삶과 죽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머릿속에 상상하듯 제아무리 SF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도 양자의 경계를 마음껏 선택하고 넘나들 수 있을까. 이런 허무한 상상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찰나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경찰과 의사의 등장이 믿음을 더해준다.

생사의 기로에서 번뇌하던 두 부류조차 이 발명품에 빠져들면서 허무한 상상은 묘하게 설득을 당하게 된다. 때마침 누군가의 증언에 따라 저승사자를 만나고 왔다는 고백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설마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차치할지라도 눈앞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한다면, 우리는 삶에서 죽음으로 갈아타는 섣부른 시도를 감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라고 말하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사후 세계를 보장받는다 하면 더욱 가능성은 높아질 뿐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 즉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까지 잃게 되는 일'

연극의 제목인 '순교'를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원인 중 하나로 전쟁이 꼽힌다. 그중에서 주로 정치와 경제적 탄압이 원인이었는데, '종교전쟁'도 있었던 만큼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신앙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종교에 심취한 경우를 수차례 봐왔으며, 서로 다른 종교를 바라보면서 진실 또는 거짓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끝없는 논쟁거리를 남기기도 한다. 이렇듯 진실과 거짓의 양날개 사이에서 자신이 맹목적으로 믿음의 경계에 서있는 이들의 모습은 이번 작품에서 두 번째 경계의 이면이다. 기계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믿음의 경계가 후반부를 장식한다. 

저승에서 들려오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흔쾌히(?) 내놓는다. 심지어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처절한 현실에 묻혀 고통의 순간을 감내해야 하는 이승은 '디스토피아'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죽음의 세계는 끝없는 행복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유토피아'로 묘사된다. 죽음의 경계선 사이에서 완벽한 갈림길에 서지 못하고 고민하는 자의 여운도 남긴 것은 현실세계에서 주저하는 평범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다. 이런 다양한 인간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하는 인간까지 드러내면서 연극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살아남은 게 열등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그걸 누가 알겠어요? 저기에 살아남은 동지들이 있어요. 종교도, 과학도, 인간도, 자신도, 죽음도 믿지 못하는 동지들입니다. 이제 저들과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어요. 어떤 곳이 될까? 그걸 누가 알겠어요."

연극을 풀어가는 색다른 방식에 관해
 
 SF연극 <순교> 공연 한 장면

SF연극 <순교> 공연 한 장면 ⓒ 극단 돌파구 제공 (c)_이강물

 
"<나는 살인자입니다>(2019,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호시 신이치의 세계가 배우의 신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됐다면, <순교>에서는 호시 신이치의 텍스트를 배우의 발화로 관객이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인철 연출가는 연출노트에서 이 작품을 무대화한 비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출가가 이번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을 알기에 앞서 이 연극의 원작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SF소설가로, 단편 소설보다는 '쇼트-쇼트(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소설 형식)'의 개척자로 불리는 호시 신이치(1926~1997)의 동명의 소설 '순교'를 무대화했다. 전 연출가가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나는 살인자입니다>에 이어 이번에도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연이어 들고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은 짧은 형식이 독자들은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지만,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보기만큼 얕지 않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여성혐오, 폭력, 성별 구분 등과 같은 세상에 남아있는 '통속성'을 배제하고, 지명이나 인명 등 고유명사를 쓰지 않는 특징도 보여왔다. 이것은 전 연출가가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무대로 올리는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순교>의 무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여러 개의 의자들. 그밖에 무대장치나 설치물은 어느 것도 볼 수 없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 놓은 의자들과 배우의 음성만 존재할 뿐이다. 연극은 출연자의 동선만으로 소극장을 입체적으로 채워나갔다. 심지어 극중 중요한 장치로 부각되는 '발명품'조차 관객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 다만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조명에 의존해 자신의 상상만으로 그릴 뿐이다.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을 관객에게 맡긴 효과를 통해 66좌석을 채운 관객들은 비로소 무대의 완성에 방점을 찍게 된다. 오직 보고, 듣는 것만으로 무대를 완성해나가는 이 연극은 거추장스러운 부대장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SF소설이라해서 최첨단 장비를 경험할 것이란 상상을 보기좋게 뒤집었다. 오직 원작자의 구절이 배우의 말소리로 옮겨오는 '낭독극'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연극을 보는 것인가? 책을 읽는 것인가? 관람 기법을 두고 혼란에 빠질 무렵, 과할 것 없이 잔잔하게 내리쬐는 조명은 거추장스러운 무대장치 이상의 효과를 체감할 것이다. 

재공연에 새롭게 투입된 김석주, 권정훈, 이진경, 문수아 등 네 명의 나즈막한 발화만으로 작품의 대사를 전달한다. 객석을 바라보는 관객은 원형극장에 앉은 듯하다. 마치 마당극에 둘러싸인 관객의 몰입감 처럼 무대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배우는 관객과 같은 동선과 함께 호흡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이 허무는 장소에서 연기는 진행된다. 즉, 관객은 객석에 앉은 채 남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발화와 강력한 연결을 통해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SF연극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초연 이후 재공연하는 이 연극은 지난 19일부터 오는 4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계속된다. 'SF연극'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SF소설을 무대화한 것도 있지만, 작품의 제작과정에서도 이런 특징은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극단 기획전 '돌파구 우주극장-SF낭독공연'에서 낭독극으로 선보인 이후 정식으로 초연됐다. 특히, 젠더와 소수자를 주제로 리서치하면서 공연에 맞는 배리어프리를 시도하고 있는데, 전회차 한글자막이 제공되며, 극이 시작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대와 배역, 의상 등 시각정보를 설명하는 음성해설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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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가볼만한 소식을 전하는 '주간추천 전시공연'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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