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았던 인간관계가 상황이 바뀌면 갑자기 좋아지는 일이 있다. 이와 정반대 경우도 있다. 직장·학교·군대·종교 등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개인적 기질보다는 조직의 이념·체계 혹은 필요에 의해 보다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직을 벗어나거나 혹은 조직 내 서열이 바뀌면 그간의 인간관계가 변화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세종대왕) 역시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KBS <태종 이방원>의 최근 방영분에서도 그런 관계가 묘사됐다. 학업 내용을 테스트하는 아버지 이방원 앞에서 형인 양녕은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충녕은 술술 답변하는 장면, 충녕이 형의 약점을 대놓고 충고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양녕과 충녕을 직접 목격했던 당시의 사관들은 이런 장면을 오늘날의 문학작품 이상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들 역사 기록관들의 목격담을 <태종실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셋째 왕자인 충녕은 큰형이자 세자인 양녕에게 입바른 소리를 잘했다. 공부를 게을리하고 이성만 찾아다니는 큰형을 나무랄 때가 많았다. 틈만 나면 "그러지 마시라"고 큰형에게 충고를 했다.
 
음력으로 태종 16년 3월 20일자(양력 1416년 4월 17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충녕이 큰형의 '불륜 현장'을 덮친 일도 있었다. 태종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청와대 서북쪽 인덕궁에서 연회를 가진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 KBS1

 
연회가 파한 직후에 양녕은 '자신만의 연회'를 따로 갖고자 조용히 사라졌다. 매형 이백강의 기생첩인 칠점생과 단둘만의 시간을 가질 목적이었다. 이를 눈치 챈 만 19세의 충녕은 세 살 많은 큰형이 있는 데로 급히 뛰어갔다. 그런 뒤 칠점생과 큰형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 충녕이 던진 한마디가 있다. "어떻게 친척 간에 이럴 수 있습니까?"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매형의 첩과 사귈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다.
 
물론 이 시대 사람들도 축첩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일부 고위층 남성들의 축첩이 그들의 지위와 경제력으로 인해 사실상 용인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충녕은 일반인이 아닌 상류층 남성의 시각에서 매형의 행위가 아닌 큰형의 행위만 나무랐다.
 
양녕에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했던 듯하다. 충녕이 마치 형이나 되는 것처럼 양녕을 질책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양녕은 "어떻게 친척 간에 이럴 수 있습니까?"라는 비판에 대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려 했을 뿐이다.
 
충녕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큰형이 대꾸도 없이 그냥 지나가려 하자, 또다시 이 커플을 막아섰다. <태종실록>은 충녕이 똑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했다고 알려준다. 결국 양녕은 포기하고 말았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미 현장을 들킨 그는 칠점생과의 데이트를 포기했다.

이런 에피소드만 놓고 보면, 충녕이 큰형의 왕위계승을 돕고자 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큰형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썼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장면들도 많았다. 임명권자인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해 형의 체면을 떨어트리는 충녕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칠점생 사건으로부터 몇 해 전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 10대 중반인 충녕이 지적 능력을 다소 과도하게 표현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방원도 인정한 충녕의 능력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 KBS1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 한 장면. ⓒ KBS1

 
태종 13년 12월 30일자(1414년 1월 21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왕자들이 40대 중후반인 아버지 이방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연회를 주최했다. 이 연회에서는 노래와 시에 관한 토론이 오가갔다.
 
이때 충녕이 아버지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태종실록>은 그 질문이 매우 심오했다고 말한다. 질문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심오해서 임금께서 가상히 여겼다"라고 말한다.
 
태종은 가상히 여긴다는 것을 표정으로만 나타냈을 뿐 말로는 표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직후에 그는 즉각 양녕을 돌아봤다. "앞으로 너를 도와 큰일을 해낼 아이다"라고 양녕에게 말해줬다. 동생보다 능력이 낮은 양녕의 심기를 고려해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셋째아들의 심오한 질문을 듣자마자 첫째아들을 쳐다봤다는 것은 두 형제간의 긴장관계를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양녕은 자신보다 출중할 뿐 아니라 자신을 동생처럼 다루는 충녕에게 경쟁심을 가졌다. 이 점은 태종 16년 2월 9일자(1416년 3월 8일자) <태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 도중에 충녕이 언급되자 양녕의 입에서 "충녕은 용맹하지 못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동생에 대한 경쟁심이 그런 식으로 표출됐다고 말할 수 있다.
 
임금이 되지 못할 왕자가 너무 똑똑해 보이면 천수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왕자들은 그림이나 서예 같은 문화예술 활동에 치중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술과 이성에 빠져 세상의 조롱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인격 수양뿐 아니라 국가 경영도 함께 다루는 유교 경전을 너무 열심히 읽으면 공연히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충녕은 개의치 않았다. 지적 능력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여느 왕자들처럼 예술이나 문화 방면에서 활로를 모색하지 않고 하루 24시간의 상당부분을 경영학 서적 탐독에 투자했다. 왕실은 물론이고 조정 사람들도 양녕과 충녕의 역량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대놓고 형을 충고하기까지 했다.
 
양녕은 그런 동생을 대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쟁심을 표출했다. 그래서 양녕이 그대로 왕이 됐다면, 충녕의 신상이 위태로웠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정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자가 왕위를 빼앗기면 안전을 보장받기가 힘들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양녕과 충녕 형제의 관계는 비극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양녕이 그대로 왕이 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충녕이 왕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갈등으로 인해 그 관계는 파국으로 끝나기 쉬웠다.

뜻밖의 해피엔딩
 
그런데 뜻밖에도 그 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충녕이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임금이 된 1418년 이후는 물론이고, 두 형제의 불화를 막고자 애쓴 아버지 이방원이 눈을 감은 1422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418년에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 양녕은 풍류를 즐기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는 동생인 충녕보다 16년을 더 살았다. 쫓겨난 후계자가 더 오래 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생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양녕이 동생한테 자리를 빼앗긴 뒤에도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의 형제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충녕은 큰형을 적극 보호하고 큰형은 동생의 왕권에 도전하지 않은 것이 양녕의 말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관계가 좋아지게 된 전환점은 양녕이 쫓겨나고 충녕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사건에 있다. 왕실 족보에서는 임금의 장남보다 임금의 후계자가 앞자리에 놓였다. 후계자가 된 왕자가 장남인 왕자보다 윗사람이었다. 충녕이 윗사람이 되고 양녕이 아랫사람으로 내려가는 관계 역전이 일어난 뒤로 두 형제의 사이가 좋아졌던 것이다.
 
그런 관계 역전은, 동생은 형을 충고하고 형은 쩔쩔매는 어색한 상황을 해소시켰다. 충녕이 굳이 충고를 하지 않더라도 양녕이 따를 수밖에 없게 되는 관계 역전이 일어나면서 이들의 관계가 좋아진 것이다. 즉, 새로운 관계가 두 형제의 우애를 돈독케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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