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2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달러(이하 세계흥행 기준)의 수익을 올렸던 '미친 가성비'의 영화 <쏘우>를 만든 제임스 완 감독은 2013년 <컨저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렇게 '가성비 감독'으로 유명했던 제임스 완 감독은 2015년 <분노의 질주7>으로 15억 1600만 달러, 2018년 <아쿠아맨>으로 11억 4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스케일이 큰 영화도 잘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샘 레이미 감독은 대다수의 영화 팬들에게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했던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3부작을 만들었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3부작은 3편 합쳐 24억 94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샘 레이미 감독을 일약 흥행 감독으로 만들었다. 샘 레이미 감독은 오는 5월 4일 개봉 예정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연출하며 15년 만에 마블 세계관에 복귀했다.

하지만 샘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을 만나기 전까지 'B급 호러무비의 전설' <이블 데드>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레이미 감독은 데뷔 초기 비슷한 장르의 공포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1995년에는 다소 뜬금없이 총잡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서부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출연진을 살펴보면 다시 모이기 힘든 명배우들이 총출동했던 서부 액션영화 <퀵 앤 데드>였다.
 
 <퀵 앤 데드>에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가 3명이나 출연한다.

<퀵 앤 데드>에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가 3명이나 출연한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화려한 만큼 길지 못했던 샤론 스톤의 전성기

지금은 어느덧 60대 중반의 노장배우가 됐고 최신흥행작도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초·중반까지 샤론 스톤은 전 세계 남성팬들을 설레게 했던 최고의 섹시스타였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모델로 활동하던 시기엔 프랑스판 보그의 표지모델로 나설 정도로 명성을 떨친 샤론 스톤은 배우로는 10년 가까이 제법 긴 무명 생활을 보냈다. 그녀의 최고 히트작 <원초적 본능>이 개봉했을 때 샤론 스톤의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겼을 정도.

1990년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토털리콜>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샤론 스톤은 1992년 <토탈리콜>의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든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에 출연하며 하루 아침에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4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원초적 본능>은 3억 5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97만 관객을 동원하는 폭발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벼락스타가 된 국내외의 많은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샤론 스톤 역시 '다작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게다가 샤론 스톤은 다소 늦은 나이에 스타가 됐기 때문에 밀려 들어오는 섭외요청을 거절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 이후 2~4년 사이에 <슬리버> <스페셜리스트> <카지노> <디아볼릭> <스피어>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원초적 본능>의 절반에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작품조차 없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서부영화 <퀵 앤 데드> 역시 샤론 스톤이 한창 다작을 하던 1995년에 개봉한 영화다. <퀵 앤 데드>는 영화의 배경이나 규모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제작비(3200만 달러)가 투입됐지만 북미 1800만 달러라는 아쉬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샤론 스톤은 2006년 자신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캐서린 트라멜을 소환해 14년 만에 <원초적 본능2>에 출연했지만 돌아온 것은 흥행참패와 골든라즈베리시상식 최악의 여우주연상 뿐이었다.

지난 2001년 뇌졸중을 앓은 샤론 스톤은 언어능력과 시력이 감퇴하고 왼쪽 다리의 감각이 상실되는 증상을 겪으면서 신문 편집장이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지고 아들에 대한 양육권마저 잃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샤론 스톤은 수 년간의 노력으로 길고 지루한 재활과정을 견뎌냈고 지난 2018년에는 20세 연하의 남자친구와 약혼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샤론 스톤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영화에 얼굴을 비추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이기에 가능했던 초호화 캐스팅
 
 <퀵 앤 데드>는 섹시배우로 명성을 떨친 샤론 스톤의 유일한 서부액션영화였다.

<퀵 앤 데드>는 섹시배우로 명성을 떨친 샤론 스톤의 유일한 서부액션영화였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퀵 앤 데드>는 화려한 캐스팅의 영화로 유명하다. 199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샤론 스톤이 주인공 앨런 더 레이디를 연기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번(주연상과 조연상)이나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진 해크먼이 '악의 축' 존 해롯 역을 맡았다. 200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러셀 크로우는 성직자가 된 전설의 총잡이 코트를, 말이 필요 없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존 해롯의 아들이자 어린 총잡이 키드를 연기했다.

이처럼 지금 보면 이런 캐스팅이 다시 가능할까 싶지만 사실 당시만 해도 샤론 스톤과 진 해크먼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캐스팅은 아니었다. 러셀 크로우는 < LA컨피덴셜 >과 <글래디에이터>에 출연하기 전이라 아직 확실한 스타라고 할 수는 없었고 디카프리오 역시 <타이타닉>은커녕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출연하기 전이었다. 1990년대 중반이었기에 충분히 가능했던 캐스팅이었다는 뜻이다.

<퀵 앤 데드>는 원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 현지에서 쓰인 원제는 정관사 The가 붙은 < The Quick And Dead >다. 성경에서 따온 '산 자와 죽은 자'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 관용어구이다. 이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제목이 국내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정관사 The가 빠졌고 '빠르고 죽었다'라는 의미조차 알기 어려운 희한한 뜻을 가진 제목으로 돌변했다. 

<퀵 앤 데드>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총잡이들이 최고의 총잡이이자 악당인 존 해롯이 지배하는 리뎀센이라는 마을에 모여 목숨을 건 총쏘기 대회를 치르는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다. 특정시간이 되면 총을 꺼내 상대를 맞추면 경기가 끝나는 총쏘기 경기는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그만큼 룰이 간단하고 경기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긴장감이 크다. 1950~1970년대에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건 다 이유가 있다.

<퀵 앤 데드> 역시 여느 서부영화들처럼 주인공의 화끈한 승리로 악당이 몰락하며 권선징악으로 막을 내린다. 코트와의 준결승전에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마을 곳곳에 폭약을 설치한 앨런은 결승전 시작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폭약을 터트리며 존을 당황시킨다. 그리고 코트는 최고의 총잡이답게 화려한 솜씨로 존의 부하들을 무찌르고 앨런은 아버지의 원수인 존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하며 어린 시절의 한을 푼다.

최고 배우 디카프리오의 '뽀시래기' 시절 
 
 '슈퍼스타'  디카프리오의 리즈시절을 보는 것은 <퀵 앤 데드>가 가진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슈퍼스타' 디카프리오의 리즈시절을 보는 것은 <퀵 앤 데드>가 가진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지금이야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겸비한 최고의 배우로 불리지만 1995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타이타닉>에 출연하기 전 여전히 <길버트 그레이프>의 어니 이미지가 강한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따라서 <퀵 앤 데드>에서 거만한 말투와 날렵한 솜씨를 과시하며 본인이 최고의 총잡이라고 외치고 다닐 때도 어딘가 불안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존의 총에 맞아 다소 허무하게 사망한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퀵 앤 데드> 이후 인지도가 더욱 상승해 <토탈 이클립스>와 <바스켓볼 다이어리>를 거치며 할리우드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를 연기하며 청춘스타로 입지를 단단히 굳힌 디카프리오는 1997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서 잭 도슨을 연기하며 전 세계 관객들 앞에서 당당하게 "I'm King of The World"를 외칠 수 있게 됐다. 

어린 딸과 함께 여관을 운영하며 총쏘기 대회의 사회자 역할을 맡고 있는 호레이슨은 앨런이 여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매춘부 취급하다가 호되게 당했다. 호레이슨을 연기한 배우 팻 힝글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4편에 걸쳐 제작된 <배트맨> 시리즈에서 제임스 고든 서장을 연기했다(물론 당시의 고든 서장은 게리 올드만이 연기했던 크로스토퍼 놀란 버전의 <다크나이트> 3부작에 비해 비중이 썩 크지 않았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보물 사냥꾼 '도그'는 앨런에게 당해 마차 바퀴에 손이 묶인다. 힘으로 바퀴를 뽑아내고 마을로 와 앨런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천재 총잡이' 코트가 알려준 노하우를 이용한 앨런이 쉽게 승리한다. <퀵 앤 데드>에서 시작부터 큰 굴욕을 당하는 도그 역의 배우 토빈 벨은 2000년대 들어 이미지를 변신해 <쏘우> 시리즈에서 직쏘를 연기하며 전 세계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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