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적의 3집 앨범이 리마스터링돼 5월께 LP로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제5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과 올해의 노래상을 포함한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한 우리 대중가요 명반 중의 명반이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온다니, 기쁨과 반가움이 차례로 교차했다.

LP로 듣는 이적의 목소리는 조금 더 짙어진 음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우선 앞섰고, 하나같이 명곡인 수록곡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곡, '다행이다'가 제일 먼저 떠올라 플레이 리스트를 뒤진 끝에 몇 번이고 재생을 했다. 그리고 봄의 정취에 그윽하게 번지며 스며드는 '사랑의 세레나데'에 오래도록 마음을 적셔보았다.

거의 모든 이들이 '다행이다'에 얽힌 사연을 익히 알 것이다. 지금은 이적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연인에게 던지는 절절한 고백이며, 남은 생을 오직 한 사람, 그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멋진 프러포즈가 담긴 곡이다. 이 곡은 발매된 이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이어지는 멜로디와 진정성 넘치는 가사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둔 이들의 프러포즈에, 혹은 결혼식장에서 불리는 축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래가 됐다.
 
 이적 <다행이다>가 수록된 앨범.

이적 <다행이다>가 수록된 앨범.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결혼생활 모멘텀이 된 노래

이 노래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나는, 경력단절을 끝내고 다시 방송국으로 복귀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래 살던 곳을 떠나 새롭게 이사를 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가던 시간이기도 했다. 육아를 위해 경력단절까지 겪었지만 아이는 그새 훌쩍 자라, 엄마의 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커 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이 10년을 넘어서자,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보다 '누구의 엄마, 아빠'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사이가 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돼, 결혼할 때 했었던 다짐들이 희미해져 가거나 갖가지 크고 작은 일들에 희석되어가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한편으로는 '그래, 결혼이 뭐 별건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장소에서 듣게 된 '다행이다'는 내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모멘텀으로 다가왔다. 그 장소는 참 우습게도 내가 늘 일을 하며 음악을 듣곤 하던 라디오 부스도 아닌, TV 음악 프로그램을 전문가적 관점으로 시청하곤 하던 집의 거실도 아닌, 지금은 상호도 기억에서 희미해진 시내의 어느 노래방이었다.

맡고 있던 라디오 방송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반가운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었다.

"일 마무리할 시간이지? 오늘 선·후배들 모여서 술 한잔 할까?"

늘 모임을 주도하곤 하던 두 해 위 학보사 선배였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부터는 한 때 술꾼으로 각인됐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일부러 술자리를 피하곤 했었는데, 이런 노력은 경력단절과 함께, 관계 단절로 이어져서 종종 허탈감이 들기는 했었다. 왠지 이 날은 이상하게도 제안을 거절할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질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던 차, 선배가 툭, 한마디 던지는 거였다.

"일에 치이고, 육아에 힘들고 너도 가끔은 쉬어가야지. 안 그래?"

이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적의 '다행이다'가 내게로 와, 결혼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와 남편에게 모임으로 좀 늦어질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한 후 향한 자리에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 겸 술을 마시고 자연스레 노래방으로 향한 것은 워낙 나의 노래를 좋아하던 선배의 제안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술 기운이 거나하게 오르면 흥에 취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래 한 자락을 구성지게 부르곤 하던 나를 선배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좋아했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아주 적은 숫자의 팬들을 거느린 그들만의 가수였을지도 모르겠다. 
 
  노래 가사에 개인의 감정이 이입된 순간,?가사에?내재돼?있던 무형의 힘은 폭발하게 된다.

노래 가사에 개인의 감정이 이입된 순간,?가사에?내재돼?있던 무형의 힘은 폭발하게 된다. ⓒ pixabay

 
아무튼 그날은 왠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노래를 마다하며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모임을 주도했던 선배가 마이크를 들고는 호기롭게 숫자를 누르더니 노래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어라, 선배가 노래를 다 부르시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의외의 멜로디가 귀에 닿아 피곤한 내 육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아, 이 노래가 이토록 슬픈 노래였던가. 썩 잘 부르지도 못하는 선배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절로 눈가에 눈물 몇 방울을 맺히게 했다.

그리고 이내 가사는 정점으로 치달으며 푸른 강물이 돼 우리가 있던 그곳을 흥건하게 만들어 버렸다.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에서 나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고, 노래를 부르던 선배는 급히 노래를 멈추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오래 나를 지켜보았다.

이처럼 노래 가사에 개인의 감정이 이입된 순간, 가사에 내재돼 있던 무형의 힘은 폭발하게 된다. 아마도 이날 선배가 불렀던 이적의 '다행이다'를 통해 느꼈던 내 감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했던 결혼의 다짐이 생활에 묻혀 어디에선가 자꾸 풍화되고 모래바람으로 날려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된 결혼은 우리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자꾸만 경로를 이탈한다. 그것은 내적으로 오기도 하고, 가끔은 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어쩌면 광활한 언덕이나 광야에 홀로 내팽개쳐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줄광대, 어름산이(줄 타는 사람 중에 우두머리) 같았을지도. 그래서 절절한 마음의 표현이 가사 한 자, 한 자에 그대로 배인 노래에 넋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 '다행이다'를 다시 들으며

봄 볕이 눈부시게 창으로 들어와 집안 곳곳이 밝은 기운으로 넘치는 오후 3시쯤 온몸의 세포들을 이완시킨 채, 이적의 '다행이다'를 다시 들어본다. 역시나 아름답고 소중한 노래이며, 우리 가요의 보물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15년 전쯤, 마음이 수만 갈래로 동요하고 어지럽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 곡이 지닌 원래의 메시지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노래의 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이렇게 고요하게 앉아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평상심을 가지게 돼 '다행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 본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프러포즈에 쓰였고, 앞으로도 시대의 정신을 녹여낸 새로운 노래들이 생겨나 사랑의 결실, 결혼을 이끌어갈 저마다의 도구로 쓰이겠지만 '다행이다'처럼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결을, 잘 쓰인 서정시처럼 잔잔하게 드러내는 곡이 있을까 싶다.

다시 발매될 LP음반에 수록된 노래, '다행이다'의 선한 매력에 빠진 이들이 차곡차곡 시간의 퇴적층으로 쌓이고, 더불어 이 노래의 힘이 세월을 따라 또 한 번 증폭되기를 넌지시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후에 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ggotdul 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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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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