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누구보다 살고 싶은 자들의 발버둥입니다. (구련)
자살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이자 결코 해서는 안되는 범죄입니다. (박중길)
 
MBC 드라마 <내일>은 저승사자들이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살린다는 기발한 발상을 담고 있다. 매회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구팀장 구련(김희선)이 이끄는 위기관리팀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자살을 막기 위해 애쓴다. 반면, 자살을 범죄라 여기는 인도팀 박중길(이수혁) 팀장은 자살시도자들을 구하는 것에 반대하며 위기관리팀의 해체를 주장한다.
 
이 둘의 대립은 자살에 대한 두 가지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었다. 존경하던 정치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나는 애도하기보다는 실망하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상담심리사로서 경력이 쌓여가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드라마 속 위기관리팀 견해에 적극 동의하게 됐다.
 
드라마 <내일>도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위기관리팀의 견해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중이다. <내일> 속 자살시도자들의 마음을 살펴보면서 삶을 포기하려는 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살시도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함께 하면서 이들을 돕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내일>

자살시도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함께 하면서 이들을 돕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내일> ⓒ MBC

 
왜 자살을 생각할까
 
현대 자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저서 <자살하려는 마음>에서 자살의 원인으로 '정신통'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정신통은 상처, 고뇌, 마음을 장악한 아픔으로 공포, 염려, 외로움, 불안, 늙어가거나 초라하게 죽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 등을 너무나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통'을 겪는다. 하지만,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한 정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 통증으로 인해 지각이 위축되는 특징을 보인다. 슈나이드먼은 위축을 집중하는 관심 영역이 좁아지거나 외골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심한 정신적 고통과 부정적 정서들은 사고와 지각의 폭을 좁힌다. 그리고 좁아진 지각은 현재의 고통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 좋은 기억들, 지지해 주는 친밀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오직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내일> 속의 인물들 역시 그랬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방송작가 은비(1,2회), 반복되는 실패로 내일이 없다 여기는 경찰지망생 재수(3,4회),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이 모두 떠나버리는 아픔을 겪은 뮤지션 우진(5회)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 오직 죽음만이 해결책이라는 데 사로잡힌다. 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아왔던 순간도,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죽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자살시도자들은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일까? 슈나이드먼은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의 마음은 '양가적'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자 혹은 자살시도자들의 90%는 단서를 남긴다. 이들은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자살을 암시한다.

자살자 혹은 자살시도자들의 10% 정도는 죽음 직전까지 그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위장하지만, 이들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단서를 남긴다. 바로 위축된 지각을 드러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뿐' '~밖에' 같은 표현이나 양자택일적인 언어 사용이 갑작스레 늘어난다.
 
슈나이드먼은 자살을 하려는 자들이 남기는 이런 단서들은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는 양가적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 즉, 도움을 요청하는 사인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양가감정은 잘 드러난다. 1회, 자동차 안에 모여 집단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구 팀장은 차를 몰고 절벽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자신들이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죽음이 다가오자 자살을 원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살려주세요"라고 외친다. 죽기를 바라고 높은 곳에 오른 이들도 떨어지는 순간 "살고 싶다"고 외친다. 이는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려는 자들 역시 살고 싶은 사람들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슈나이드먼은 이처럼 '죽고 싶지만 살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고통을 줄이고, 블라인더를 걷고, 압박을 줄이는 것이다.
- <자살하려는 마음> 216쪽- 

살고 싶은 마음과 손잡도록 도우려면
 
 구팀장(김희선)은 자살시도자들의 과거 삶 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아픔에 함께 머물러 준다.

구팀장(김희선)은 자살시도자들의 과거 삶 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아픔에 함께 머물러 준다. ⓒ MBC

 
드라마 <내일>의 인물들은 슈나이드먼이 이야기한 이 방법들을 통해 다시 삶의 의지를 찾는다. 특히 이들은 블라인더가 걷히는 순간 즉, 위축된 지각이 넓혀지는 순간 살고 싶은 욕구를 상기해냈고, 결국 삶을 선택했다.
 
1,2회 등장했던 방송작가 은비는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정신통을 재경험한다. 주변에 고통을 호소하지만 사람들은 왜 아직도 과거 속에 사냐고 나무랄 뿐이다. 결국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더욱 탓하게 된 은비는 죽음을 택하려 한다.

이 때 등장한 구 팀장은 죽음은 자신의 고통을 나무랐던 사람들이 대했던 바로 그 태도로 스스로를 대하고 있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구 팀장과의 직면은 은비의 위축된 사고를 넓혀준다. 은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에 고통뿐 아니라 행복도 함께 했음을 깨닫는다. 그러자 자살욕구는 현저히 줄어든다.
 
3,4회의 주인공이었던 경찰 지망생 재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기관리팀은 그에게 행복한 순간을 느끼게 할 치킨을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이는 재수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위축된 사고를 넓혀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긍정적인 정서는 지각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말로 재수는 추억의 치킨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위축된 사고에서 벗어난다.

5회 등장했던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였다며 자책하던 뮤지션 우진 역시 사망한 아내가 자신을 살리려고 했음을 깨달은 후, 그러니까 사건의 다른 면을 보게 된 후 마음에 블라인드가 걷히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되찾는다.

압박을 줄이려면
 
드라마 속 위기관리팀은 매 회 최선을 다해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해낸다. 하지만, 그 노력은 무척이나 힘겹고 때로는 위험해 보인다. 이는 개개인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자살예방이 어려움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슈나이드먼이 말했던 '압박을 줄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압박이란 욕구를 좌절시키고 정신통을 유발하는 환경적 요소들을 말하는 것일 테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 혐오의 시선 등은 살고자 하는 노력을 묵살해 버리는 대표적인 압박들이다. 이런 것들이 제거되어야 정신통을 견뎌내지 못하는 이들이 줄어들 것이고 근본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시도자들에 대한 편견 역시 이런 압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심리적 고통을 오직 그 사람의 노력 부족이나 나약함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압박에 무게를 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살을 범죄라 여기는 박중길 팀장은 5회 "고작 말 몇 마디로 살아갈 힘을 얻을 거면서 왜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러자 옥황(김해숙)은 이렇게 말한다.
 
그 간단한 말 몇 마디를 듣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자의 심정은 어떻겠어? 장담하건대 죽음을 쉬이 선택하는 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이런 따뜻한 시선이 세상에 퍼져나갈 때, 어차피 만나게 되는 죽음을 앞당기느라 애를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내일> 속 자살시도자들은 위축됐던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내일> 속 자살시도자들은 위축됐던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 MBC

 
미국의 심리학 교수 에밀리 쉬라 커틀러는 <비판정신의학>에서 자살을 불이 난 집의 창에서 뛰어내리는 것에 비유했다. 뜨거운 불길이 다가오고 연기로 질식할 것 같을 때 그 안에 갇힌 이들의 선택은 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화재를 신고하고, 불을 꺼주려 애쓰는 것, 구조의 손길을 내밀고, 버틸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아마도 불길과 연기가 덮쳐오지만 않는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불이 나지 않는 사회, 혹여 불이 나더라도 얼른 진화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