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tvN 주말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가 높은 화제성과 7%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싸이코지만 괜찮아>는 국내보다 해외시장에서 더욱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권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오세아니아와 남미, 그리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top10에 진입했다. 역시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많은 해외팬을 확보하고 있던 '한류스타' 김수현의 영향이 컸다.

<싸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김수현이 연기한 문강태의 직업은 괜찮은 (정신)병원의 병동 보호사였다. 아무래도 주인공의 직업상 정신 병원이 배경으로 나올 때가 많았는데 원장 오지왕 역의 김창완과 수간호가 박행자를 연기한 장영남, 경력 3년 차 간호사 선별 역의 장규리 등이 괜찮은 병원의 직원을 연기했다. 뿐만 아니라 이얼, 김기천, 배해선, 곽동연 등 각종 정신병 진단을 받은 환자 역할의 배우들도 열연을 펼쳤다.

<싸이코지만 괜찮아>처럼 정신병원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있었지만 여전히 정신병원은 대중들에게 그리 낯익은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낯선 공간인 정신병원을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도 있었다. 칸영화제 2회 수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이 2006년 '복수 3부작'을 끝내고 <박쥐>를 만들기 전에 필름이 아닌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해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였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2007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2007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 모호필름

 
영화에선 유독 재미보지 못한 슈퍼스타

본명보다 여전히 '비'라는 가수 활동명이 더 유명한 정지훈은 안양예고 시절 팬클럽이라는 보이그룹으로 데뷔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의 눈에 들어 JYP의 연습생이 됐다. 연습생 시절 박지윤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경험을 쌓던 비는 2002년 솔로로 데뷔해 '안녕이란 말 대신', '태양을 피하는 방법', 'It's Raining', 'I'm Coming' 등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최고의 인기가수로 군림했다. 

정지훈은 2003년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 영화로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고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와 <풀하우스>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가수로서도 연기자로서도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정지훈은 2006년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문제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박찬욱 감독이 진지하게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찬욱 감독이 가벼운 마음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연출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와 맞붙어 전국 7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정지훈은 워쇼스키 남매(지금은 자매)의 눈에 들어 2008년 할리우드로 진출해 2008년 <스피드 레이서>와 2009년 <닌자 어쌔신>에 차례로 출연했다. 특히 <닌자 어쌔신>은 정지훈의 단독주연 영화였다.

정지훈은 <닌자 어쌔신>에서 고난도의 액션연기들을 직접 소화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4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닌자 어쌔신>은 세계적으로 61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거두며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12년 한국 영화 < R2B: 리턴 투 베이스 > 역시 100억 원의 제작비로 12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실패했다(물론 영화의 흥행실패를 전적으로 정지훈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2014년 중국영화 <노수홍안> 이후 약 5년간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던 정지훈은 2019년 <자전차왕 엄복동>이라는 괴작(?)을 통해 컴백했다. 무려 <캡틴마블>과 맞대결을 펼친 <자전차왕 엄복동>은 전국 17만 관객으로 관객들에게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정지훈은 2017년에 발표했던 노래 '깡'이 2020년 역주행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했고 유재석, 이효리와의 싹쓰리 활동 역시 큰 사랑을 받으며 건재를 알렸다.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로맨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만능엔터테이너 비(오른쪽)가 영화데뷔작으로 선택하기엔 다소 장난스러운 영화였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만능엔터테이너 비(오른쪽)가 영화데뷔작으로 선택하기엔 다소 장난스러운 영화였다. ⓒ 모호필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복수영화 전문가' 박찬욱 감독이 만든 유일무이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밝힌 것처럼 소꿉놀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영화를 만들었는데 관객들은 '복수 3부작을 끝낸 박찬욱의 차기작'이라는 생각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물론 '소꿉장난'이라고 하기엔 시작 5분 40초 만에 주인공이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버리는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믿고 있는 정신병을 가진 영군(임수정 분)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겪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영군을 비롯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과장된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 분)과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덕천(오달수 분), 전기충격치료로 자꾸 기억이 지워져 언제나 말을 지어내는 설미(이영미 분) 등이다.

주인공 영군을 중심으로 보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핵심 스토리는 '영군이 밥 먹이기'다. 영군은 스스로를 식사가 아닌 '충전'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는 싸이보그라 믿기 때문에 하얀맨(의사, 간호사)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절대 밥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영군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며 영군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던 일순이 밥 열량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는 장치 '라이스 메가트론'을 개발해 영군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만든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임수정은 영군을 연기하기 위해 눈썹을 탈색하고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아 깡마른 영군을 표현하기 위해 가뜩이나 마른 체격에 5kg을 추가로 감량했다. 그리고 영군이 진짜 사이보그처럼 강해지는 상상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와이어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각설탕>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연속으로 찍은 임수정은 차기작(허진호 감독의 <행복>)에서 숨이 차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폐질환 환자 역을 맡았다.

<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비무장지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소음 심한 공장, <올드보이>에서 사설감옥, <친절한 금자씨>에서 교도소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항상 이야기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 등장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도 정신병원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은 정신병원을 어둡고 폐쇄적인 장소가 아닌 파스텔 톤의 동화적인 느낌으로 탄생시켰다.

'박찬욱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배우들
 
 박준면(왼쪽)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식사를 거부하는 영군의 밥을 뺏어 먹는 왕곱단을 연기했다.

박준면(왼쪽)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식사를 거부하는 영군의 밥을 뺏어 먹는 왕곱단을 연기했다. ⓒ 모호필름

 
흔히 유명한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에 특정배우들을 다른 캐릭터로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다. <올드보이>의 사설감옥 사장, <친절한 금자씨>의 빵집 사장 역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오달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뒤로 걷는 예의 바른 덕천을 연기했다. 덕천이 일순에게 인사를 도둑 맞은 후 욕쟁이가 되는 오달수의 능청스런 연기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소소한 재미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저지른 유괴상대였던 원모의 엄마를 연기했던 이영미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작화증'에 걸린 오설미 환자 역을 맡았다.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허무한 캐릭터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최고의 명대사이자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대사를 일순에게 하는 캐릭터가 바로 오설미였다(이 대사는 영화 후반부 일순이 영군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죄수 역할과 입양 여직원 역할로 1인 2역을 소화했던 최희진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영군의 담당의사로 출연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철저하게 단역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비중이 상당히 늘어난 셈이다. 2009년 <박쥐>에서도 간호사를 연기하며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이어온 최희진은 현재까지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영군의 밥을 상습적으로 뺏어먹는 왕곱단을 연기한 배우는 연극과 뮤지컬배우로도 유명한 박준면이다. 박준면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권순분여사 납치사건>과 <하모니>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가수 뺨치는 뛰어난 노래실력을 가진 박준면은 지난 2015년 <복면가왕>에 출연했고 2017년에는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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