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3월에 개봉해 800만 관객을 모으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그동안 느와르나 액션에서만 종종 등장하던 조폭 영화의 장르를 다양화시킨 계기가 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실제로 2001년 한 해에만 조폭 영화와 코미디 영화를 결합한 '퓨전 조폭 코미디'가 대거 개봉해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바야흐로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극장가에 '조폭 코미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1년 9월에 개봉한 신은경, 박상면 주연의 <조폭마누라>는 여성조폭이 평범한 동사무소 말단 직원과 결혼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로 서울에서만 1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위기에 빠진 조폭 일당들이 절로 숨어 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달마야 놀자> 역시 2001년 11월에 개봉해 120만 관객을 모았다. 조폭두목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내기 위해 학교로 편입된 <두사부일체>도 12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조폭 코미디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전인 2001년 6월 <주유소 습격사건>을 히트시키며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던 김상진 감독이 신작을 선보였다. 학교 선생이 된 전설적인 고교 짱과 조직폭력배가 된 우등생, 그리고 분식집을 운영하는 매력적인 여성이 경주를 배경으로 벌이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였다. 단순히 조폭 코미디의 계보에 포함시키기엔 조금 결이 달랐던 독특한 코미디 영화 <신라의 달밤>이었다.
 
 독특한 느낌의 조폭코미디 <신라의 달밤>은 서울에서만 1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독특한 느낌의 조폭코미디 <신라의 달밤>은 서울에서만 1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 시네마서비스

 
모든 캐릭터 연기가 가능한 팔색조 여성배우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가 됐지만 김혜수는 섹시한 팜므파탈 캐릭터부터 진지한 전문직 여성, 완벽하게 망가지는 개그캐릭터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여성 배우다. 1985년 CF를 통해 데뷔해 영화 <깜보>에서 밤무대 가수 역을 맡으며 연기자 활동을 시작한 김혜수는 1980년대 후반 드라마 <사모곡>과 <순심이>, 영화 <잃어버린 너> <첫사랑> 등에 출연하며 청초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6년 MBC 일요 아침드라마 <짝>을 통해 연기대상을 수상한 김혜수는 <파일럿> <복수혈전> <국희>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등 많은 드라마를 히트시키며 최고의 배우로 군림했다. 하지만 김혜수는 한석규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닥터봉> 정도만 서울관객 37만으로 흥행했을 뿐 <영원한 제국>과 <남자는 괴로워> <찜> <미스터 콘돔> < 닥터K > 등 영화에서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괴리가 큰 대표적인 여성 배우로 남아있던 김혜수는 2001년 <신라의 달밤>을 통해 코믹연기를 선보이는 변신을 통해 흥행배우로 우뚝 섰다. 그리고 김혜수는 2006년 <타짜>에서 정마담을 연기하며 청룡영화제와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최고배우로서 건재를 알렸다(사실 원작만화에서 정마담은 그리 비중이 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김혜수가 캐스팅되면서 영화버전에서 정마담의 비중은 매우 커졌다). 

<타짜>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김혜수는 2012년7월에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신작 <도둑들>에서 금고털이 전문가 펩시를 연기하며 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김혜수는 2013년 한재림 감독의 <관상>에서도 연홍 역을 맡아 910만 관객을 동원했고 같은 해 드라마 <직장의 신>을 통해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혜수의 지상파 연말 시상식 3번째 대상수상이었다(KBS 2회, MBC 1회).

2014년 드라마 <시그널>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김혜수는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형사합의부의 심은석 판사를 연기했다. <소년심판>은 김혜수의 열연에 힘입어 누적시청 1억 시간을 넘기며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김혜수는 올해 tvN에서 방영될 예정인 <슈룹>을 통해 2003년 <장희빈> 이후 무려 19년 만에 사극에 출연할 예정이다.

모범생과 문제아, 조폭과 선생님으로 만났다
 
 차승원,김혜수,이성재는 <신라의 달밤>을 통해 코믹연기에도 능하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차승원,김혜수,이성재는 <신라의 달밤>을 통해 코믹연기에도 능하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 시네마서비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서울과 인근지역 고등학교들은 대부분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물론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혈기왕성한 10대들이지만 그렇다고 인근지역 학교의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이며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라의 달밤>에 등장하는 최기동(차승원 분)을 비롯한 강산고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운운하며 현지 학교 학생들과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패싸움을 주도했던 강산고의 최기동은 수학여행지인 경주로 내려와 자신과 패싸움을 했던 학교의 선생님이 됐다. 한편 당시 패싸움에서 낙오됐던 왕따 우등생 박영진(이성재 분)은 전국에서도 소문난 엘리트 조폭이 됐다. 박영진이 경주를 '접수'하러 내려와서 고교 동창인 최기동, 그리고 최기동 제자의 누나이자 분식집 사장 민주란(김혜수 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신라의 달밤>의 핵심스토리다.

<신라의 달밤>은 감독 데뷔 전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날렸던 박정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장길수 감독과 장선우 감독의 조연출을 맡으며 현장경험을 쌓던 박정우 감독은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의 시나리오를 쓰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박정우 감독은 2000년대에도 <선물>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특사> 등의 각본을 썼고 2004년 <바람의 전설>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신라의 달밤>은 코미디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OST 역시 제법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너를 품에 안으면>으로 유명했던 3인조 밴드 '컬트'의 메인보컬 손정한이 부른 '카리스마'는 차승원의 테마곡으로 쓰이며 <신라의 달밤> 관련 영상에 많이 사용됐다. 캔디맨이 부른 모던 락발라드 '일기' 또한 같은 해 11월 캔디맨 1집에도 수록되며 잔잔하게 사랑을 받았다(사실 헤어진 연인을 잊겠다는 가사와 <신라의 달밤> 영화 내용에 접점은 거의 없다).

<신라의 달밤>을 비롯해 <주유소 습격사건> <광복절특사>를 연출한 김상진 감독은 액션전문감독이 아님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체 액션 장면 연출에 능하다. <신라의 달밤>에서도 초반 학생들의 패싸움 장면을 상당히 자연스럽게 연출했는데 김상진 감독은 이 재능(?)을 살려 강우석 감독이 만든 <공공의 적2>에서도 오프닝 패싸움 장면을 연출했다(실제로 김상진 감독은 감독 데뷔 전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에서 조연출을 담당했다).

오고 가는 주먹 속에 싹 트는 우정?
 
 유해진(오른쪽)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직을 두 번이나 배신하는 악역으로 출연했다.

유해진(오른쪽)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직을 두 번이나 배신하는 악역으로 출연했다. ⓒ 시네마서비스

 
2000년대 중반 예능프로그램 <엑스맨>에서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이글아이'로 불리며 맹활약했던 이종수는 <신라의 달밤>에서 조폭이 장래희망인 김혜수의 동생 민주섭을 연기하며 많은 웃음지분을 담당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형 배우로 성장할 유망주로 주목 받았던 이종수는 송승헌, 소지섭, 권상우 등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이 스타로 성장하는 동안 정체돼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끝내 대형스타가 되진 못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초연기의 달인 중 한 명인 성지루 역시 <공공의 적>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전 <신라의 달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성지루는 강산고 최기동과 패싸움을 벌이는 현지 고등학교의 짱으로 등장하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경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최기동과 친구가 됐다. 최기동과 사사건건 육두문자를 주고 받으며 실랑이를 벌이지만 최기동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항상 발벗고 나서는 의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김상진 감독의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용가리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유해진은 두 번이나 조직을 배신하다가 응징 당하는 넙치 역을 맡았다.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다소 과장된 코믹연기를 선보였던 것과 달리 <신라의 달밤>에서는 나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물론 유해진은 2002년 1월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다시 코믹한 칼잡이로 돌아갔다). 

노이즈의 막내로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끌던 김학규는 2집 활동 후 군에 입대하면서 노이즈를 탈퇴했고 전역 후 배우로 전업했다. <주유소습격사건>에서 무대뽀(유오성)의 헤드락에 걸리는 용가리파로 출연한 김학규는 <신라의 달밤>에서는 마천수(이원종 분)에게 예비군 통지서를 전달하는 상근 예비역을 연기했다. 이후 여러 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던 김학규는 2007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끝으로 영화 출연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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