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오면 나무에 물이 오르고 봄볕에 마지못해 혹은 앞다투어 꽃이 핀다. 봄꽃의 여왕은 어느 사이 벚꽃인 듯하다. 서울 시내 곳곳에 벚꽃이 피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개화가 나날이 당겨지면서 개나리, 목련 등 다른 꽃들과 함께 흐드러진 벚꽃은 그 자색이 더 도드라지다. 그러다가 봄바람이 불면 벚꽃은 버틸 만큼 나무에 붙어 있다가 말 그대로 찬란하게 비산(飛散)한다.

일본인의 벚꽃 사랑이 유별나지만, 한국인 또한 뒤지지 않으며 요즘엔 벚꽃에 그다지 왜색을 결부하지 않는 듯하다. 사실 꽃에 무슨 죄가 있고 아름다움에 무슨 분별이 있으랴.

봄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리고, 그 상승은 낙화의 다른 이름이어서 비장미에 가깝다. 봄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리듯, 춤사위가 날린다.
 
     '입춤' 공연

'입춤' 공연 ⓒ 달구벌입춤보존회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M극장에서 열린 '2022 달구벌입춤과 함께하는 우리춤' <춘풍화무(春風化舞)>는 봄바람 같은 공연으로 기획되었지만, 봄꽃같은 공연이기도 했다. '달구벌입춤보존회'의 2022년 5차례 정기공연 중 첫 공연이었다.

올해 공연은 한국 무용가 고 최희선 선생을 기리는 공연으로 준비하였다. 최희선은 당대를 풍미한 명무로, 특히 1988년에 '달구벌 전통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박지홍류 전통춤을 정리·전수하였다. 그 성과로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발행무보집에 '최희선 달구벌입춤 무보'가 수록되었다.
 
이날 공연의 피날레는 역시 달구벌입춤. 고 최희선의 수제자인 윤미라(경희대 무용과 교수)가 추었다. 스승의 춤을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 없었으나 사진 속 최희선의 자태가 윤미라 속으로 페이드인 하고 페이드아웃하는 듯했다. 사진 속 최희선과 공연하는 윤미라의 치마와 저고리의 톤이 뒤집힌 것이 흥미롭다.
 
     달구벌입춤

달구벌입춤 ⓒ 달구벌입춤보존회

 
소극장의 근접성 속에서 다가오는 발구법입춤의 사위는 한국춤의 기본 맛을 정수만 골라 보여준다. '수건춤'이라는 별칭처럼 무용수가 명주수건을 오브제로, 악기로 사용하며 때로 은은하고, 때로 애절하게, 또 때로 강단 있게 정조를 표현한다. 손에서 벚꽃처럼 너울댄 명주수건은 어느 사이 허리에 질끈 묶여 한복의 미를 더 깊이 있게 끌어올리고 소고를 들고 무대를 휘어잡은 무용수는 관객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고 최희선은 달구벌입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달구벌입춤을 가르칠 때는 딱 하나, 정직함만 가지고 추라고 주문합니다. 동작만 만들면 뭐 합니까. 달구벌 입춤을 출 때는 '달구벌'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생각해야죠. 경기지역 춤은 아름답고 풍물이 있는데, 대구의 지명을 내걸고 추는 달구벌 춤은 투박하고 뚝배기 같은 여인의 멋, 즉 내면의 강함을 통한 멋으로 희비애락을 나타냅니다. 달구벌은 푸른 언덕이라는 뜻이니 고단한 여인의 삶 속에서도 그 정신을 잘 새겨 추는 춤이어야 한다는 것이죠."(경향신문 인터뷰 중)
 
푸른 치마에 명주수건으로 허리를 동여맨 윤미라의 나른한 어깨선에서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스승 고 최희선이 느껴졌다. 휘청이는 푸른 춤에 한국 춤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동감이 객석 여기저기에서 퍼져나갔다.
 
     진쇠춤

진쇠춤 ⓒ 달구벌입춤보존회

 
윤미라는 공연의 중간쯤에 진쇠춤을 추었는데, 무대장악력이 압도적이었다. 관객의 강력한 호응이 느껴져 객석과 무대가 하나가 된 느낌을 받았다. 진쇠춤은 이동안 선생에 의해 전승된 전통무용으로 왕의 환갑을 맞아 팔도 원님들이 진쇠를 들고 추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원래 남성 무용수가 추던 춤이다. 윤미라는 진쇠춤을 300회 이상 공연했다. 강력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흥과 은은한 관능미가 도저한 공연이었다.
  
     장유경의 선살풀이춤

장유경의 선살풀이춤 ⓒ 달구벌입춤보존회

 
이날 공연은 최지원, 이화연, 이혜인, 한비양, 김미소의 최희선류 입춤으로 시작됐다. 수건과 소고를 활용한 홀춤을 군무로 재구성하였다. 장유경(계명대 공연학부 교수)의 '선 살풀이춤'은 긴 명주 천을 연결한 부채로 추는 춤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인 임관규는 한량무와 태평무를 선보였다. 공연기획자 장승헌이 해설을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2022 달구벌입춤과 함께하는 우리춤'은 6월에 한혜경 등과 함께 올해 두 번째 공연을 진행한다. 
 
     임관규

임관규 ⓒ 달구벌입춤보존회

 

글 안치용 춤평론가, 사진 달구벌입춤보존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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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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