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버지' 박지성은 세계적인 명문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7년 간 활약하며 4번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한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축구조기유학의 모범사례를 보여준 '손세이셔널' 손흥민(토트넘 핫스퍼FC)은 만29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유럽리그 모든 대회를 합쳐 171득점(2022년 4월 8일 기준)을 기록하며 한국축구 역사에서 유럽리그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에 대해 토론을 벌일 때 박지성, 손흥민과 함께 절대 빠지지 않는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7~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름 잡았던 '차붐' 차범근이다. 차범근은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 활약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372경기에서 121골을 터트리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이처럼 '최초'라는 타이틀은 대중들에게 프리미엄이 붙게 마련이다.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최초의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도 같은 이유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19편이나 탄생한 천만 관객 한국 영화 중에서도 역대 최초로 천만 관객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은 <실미도>는 한국 영화 역사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실미도>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천만 영화가 탄생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미도>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천만 영화가 탄생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시네마 서비스

 
'국민배우' 타이틀 어울리는 안성기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어 칠순의 나이가 됐지만 안성기는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서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다. 5살의 어린 나이에 배우로 데뷔해 아역배우로 활동한 안성기는 학군사관 육군중위로 군복무를 마친 후 직업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안성기는 '아역스타는 성인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성인배우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당시 안성기는 배창호, 이장호 등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최고의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며 당대 최고 여성배우들의 상대역을 전담했다. <적도의 꽃>,<깊고 푸른 밤>,<황진이>의 장미희, <고래사냥>,<겨울나그네>의 이미숙, <무릎과 무릎 사이>,<어우동>의 이보희, <기쁜 우리 젊은 날>,<개그맨>의 황신혜, <베를린 리포트>,<그대 안의 블루>의 강수연 등이 대표적이다.

1993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투캅스>에 출연하며 코믹배우로서의 재능을 뽐낸 안성기는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냉혹한 킬러로 변신해 팔색조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안성기는 2003년 <투캅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60년대 실존했던 북파공작부대를 소재로 한 <실미도>에 출연했다. 안성기가 설경구, 정재영 등과 열연을 펼친 <실미도>는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실미도>를 통해 흥행배우로 건재를 과시한 안성기는 2006년 <칠수와 만수>, <투캅스>의 명콤비 박중훈과 재회해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면서 2006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안성기는 2012년 <남부군>,<하안 전쟁>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의 복귀작 <부러진 화살>에서 부당한 사법부에 저항하는 김경호 교수를 연기하며 백상예술대상에서 통산 8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장률 감독의 <동행> 같은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하며 활동범위를 넓힌 안성기는 상업영화 활동이 뜸해지자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5.18을 다룬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 출연하며 건재를 알렸고 오는 여름 개봉 예정인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두 번째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이순신을 보좌한 광양 현감 어영담 역할을 맡아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팩트와 픽션이 뒤섞인 가상역사물
 
 <실미도> 개봉 이후 출연배우들은 대부분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실미도> 개봉 이후 출연배우들은 대부분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 시네마 서비스

 
지난 1999년과 2000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박찬욱 감독의 < 공동경비구역JSA >가 전국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2001년에는 수 많은 유행어와 패러디를 낳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등급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8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한동안 불멸로 남을 확률이 높다던 <친구>의 기록은 불과 2년 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의해 깨졌다.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실제 있었던 사건과 영화의 내용은 제법 차이가 많이 있다. 실제로 예고편부터 '실제 사건과는 무관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으며 '팩션'임을 밝혔음에도 엄청난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비극적인 사건을 돈벌이에 이용한 감성팔이 영화"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미도>는 북파 부대원들이 훈련을 받는 내용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에 출연배우들 모두 출연이 결정된 후부터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특히 주인공 강인찬을 연기한 설경구는 전작 <광복절특사>에서 입만 산 탈옥수 유재필을 연기하면서 긴장을 풀었는데 <실미도>에 캐스팅되자마자 다시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야 했다(그리고 다음 작품인 <역도산>에서는 다시 100kg으로 몸무게를 불렸다).

탈출을 결심한 684부대의 강인찬과 교육대장 최재현 준위(안성기 분)가 대치하는 장면은 <실미도>에서 영화적 긴장감이 가장 팽팽하게 조여지는 부분이다. "날 쏘고 가라"와 "비겁한 변명입니다"로 이어지는 <실미도>의 명대사들이 바로 이 장면에서 쏟아진다. 강인찬은 끝까지 군인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한 교육대장을 차마 죽이지 못했고 최재현 준위는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을 선택했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천만 감독으로 등극하며 '충무로 파워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충무로에서 18편의 천만 영화가 더 탄생하는 동안 더 이상 <실미도>에 버금가는 흥행작을 연출하지 못했다. 특히 2010년 웹툰 원작의 <이끼>로 340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로는 세 편 연속으로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고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끝으로 6년째 차기작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천만 관객 울린 허준호의 '씹을 거리'
 
 <실미도>에서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든 것은 배우의 명연기가 아닌 종이봉투 속에 든 사탕이었다.

<실미도>에서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든 것은 배우의 명연기가 아닌 종이봉투 속에 든 사탕이었다. ⓒ 시네마 서비스

 
<실미도>의 주인공은 설경구와 안성기, 정재영이지만 <실미도>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는 바로 허준호가 연기했던 조돈일 중사였다. 중반부까지는 훈련병은 물론 기간병들에게도 폭력을 일삼는 거친 간부로 나오지만 후반부 병사들이 탈출을 시도한 후에는 진압군의 대대장을 설득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관객들의 눈물샘을 작극하는 '씹을 거리' 장면을 보여준 보여준 배우도 허준호였다. 

실미도 부대원이 군인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윗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조중사에게 부대원들은 '씹을 거리'를 부탁한다(사실은 조중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탈옥을 감행하려 했던 것). 하지만 조중사는 끝내 '씹을 거리'를 부대원들에게 전하지 못한다.

허준호가 악역에서 선역으로 바뀌며 관객들의 호감을 얻었다면 인간적인 간부였다가 최후에는 냉정하게 훈련병들을 죽이자는 의견을 내는 박상근 중사(이정헌 분)는 관객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던 캐릭터였다. 물론 처자식을 둔 젊은 부사관 박중사 입장에서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684부대의 훈련병들에게 동화된 관객들은 흑화된 박중사의 선택과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형사반장과 부장검사 역할로 미쳐 날뛰는 강철중(설경구 분)을 통제했던 강신일은 <실미도>에서도 듬직한 훈련병 조장 조근재 역을 맡았다. 특히 강인찬과의 권투대결에서 패한 한상필(정재영 분)이 내무반에서 난동을 부리자 한상필을 한 주먹에 쓰러트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근재는 21살의 어린 기간병과 각별한 우정을 쌓았는데 탈출 과정에서 그를 총으로 쏜 후 본인도 박중사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실미도>는 설경구와 안성기 등 이미 스타로 군림하던 배우들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인기 배우로 떠오른 신예들도 적지 않았다. 훈련병 원상 역의 엄태웅은 처음엔 살벌한 조직폭력배로 등장하지만 버스에서는 겁에 질린 승객들을 안심시키는 반전매력(?)을 선보였다. 훈련병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민호 역의 김강우도 <실미도> 출연 이후 주연급 배우로 성장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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