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는 내가 너를 이렇게 친애하는 줄 몰랐어. 친밀하고 소중하다고. (미조)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 진짜 행복했다. (희도)
 
지난 주 막을 내린 JTBC <서른, 아홉>과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두 드라마의 주인공인 미조(손예진)와 희도(김태리)는 자신들의 단짝 친구인 찬영(전미도)과 유림(보나)에게 '찐 우정'을 고백한다.
 
이들의 대사만큼이나 두 드라마 속 여자들에게 우정은 이성 간의 사랑 이상이었다. <서른, 아홉>의 세 친구 미조, 찬영(전미도), 주희(김지현)는 서로 의지하며 상실의 아픔을 감당해냈고,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두 친구 희도와 유림은 서로를 견인하며 함께 성장했다.
 
나는 이 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여자들의 끈끈한 우정에 마음이 뭉클했고, 현실의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마음 깊이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드라마에서 드러난 여자들의 우정을 살펴본다.
  
잘 모르기에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우정
  
 <서른, 아홉>의 미조, 찬영, 주희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 가장 솔직하고 편안한 친구들이 된다.

<서른, 아홉>의 미조, 찬영, 주희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 가장 솔직하고 편안한 친구들이 된다. ⓒ JTBC

 
심리학에서 우정은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개인적 수준의 관계'로 정의된다. 우정 관계는 법이나 제도로 규정된 역할이나 의무 없이 순수하게 사적으로 맺어진다. 그렇기에 그 어느 관계보다 자발적이고 평등하다.
 
<서른, 아홉>의 미조, 찬영, 주희는 이런 심리학적 우정의 정의에 매우 잘 맞는 관계였다. 삼성동에 사는 미조는 생모를 찾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효창동이 집인 찬영을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생모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고척동 주희네 가게를 찾는다. 이렇게 만난 셋은 나이는 같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동네에 살며, 학교나 소속 등 공식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서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맺어진 관계에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스며들지 않는다. 잘 모르기에 뭐든지 물어보고 답하며 서로를 알아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조, 찬영, 주희의 우정은 선입견 없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시작된다. 게다가 생모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던 미조는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미조 앞에서 찬영과 주희 역시 자신의 상처를 감추거나 포장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가장 자연스런 모습을 드러내며 친구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관계에 있을 때 사람들은 지금-여기, 그러니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미조, 찬영, 주희도 그랬다. 이들은 셋이 있을 때면 언제나 지금-여기에 충실한 상태가 된다. 찬영이 시한부를 선고받은 후에도 이들은 모여서 사소한 농담들을 즐기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조차 찬영의 병실에 모여 장난을 치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12회). 이는 이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정
 

반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와 유림은 서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데 기반해 우정을 쌓아간다. 둘은 처음엔 서로를 선망하는 관계였다. 초등학교 시절 희도에게 8대0으로 진 기억이 있는 유림은 희도를 이기고픈 각오로 노력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반면 희도는 세계적인 선수가 된 유림을 선망하며 실력을 쌓아간다.
 
태양고로 희도가 전학을 오면서 둘은 마침내 만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압도당한 유림은 희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희도를 까칠하게 대한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두 사람은 소속팀 선배들의 견제, 사람들의 기대에 따른 부담감 등을 감내하며 같은 경험들을 쌓아간다. 그러다 PC통신 속 마음을 나눈 친구가 희도임을 알게 된 유림이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면서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9회 유림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희도가 맞서 싸워주면서 유림은 희도야말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아는 상대임을 깨닫는다.
 
11회 유림은 희도에게 "나는 아직도 네가 두려워"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이는 유림이 자신의 불안감과 희도에 대한 두려움을 마침내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희도에게 직접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건 유림이 더 이상 이런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때 둘은 진정으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단짝이 된 희도와 유림은 이제 뭐든 함께 한다. 후배 예지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도록 돕고, 서로가 당한 부당한 상황에 같이 맞선다. 14회 귀화 사실이 알려진 후 유림이 일방적으로 비난을 당할 때 희도는 "내가 겪은 걸 네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며 함께 비난을 견뎌준다. 덕분에 유림은 "안 참고 싸우는 거. 부당한 일 그냥 안 넘어 가는 거. 항의하고 싸우면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실천해낸다(15회). 이는 둘의 우정이 서로를 더욱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아픔을 겪으며 단단해진 사이이기에 둘의 우정은 유림이 러시아에 귀화한 후 맞수가 되어 경쟁할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싸워야 하는 상대이기에 유림은 희도에게 메일 보내는 것을 그만두고, 희도는 "이겨야 하기에" 게임 전 유림을 만나는 걸 거절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서운해하지 않는다. 대신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한 후 부둥켜안고 이렇게 말하며 위로한다.
 
알아. 말 안해도. 내가 겪었던 걸 너도 겪었겠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우리만 아는 거잖아.(15회, 희도)
 
이는 같은 길을 걸으며 서로의 마음을 매우 잘 아는 친구들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와 유림은 같은 경험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와 유림은 같은 경험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 tvN

 
애인·가족보다 친구가 먼저
 
이 두 드라마에서 도드라졌던 점 중 하나는 이런 여성들의 '찐 우정'이 그 어떤 관계보다 우선된다는 점이었다. <서른, 아홉>의 미조는 선우(연우진)와의 데이트 도중에라도 친구들에게 일이 생기면 무조건 달려간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는 애인 이진(남주혁)이 유림의 기사를 터뜨렸을 때 철저하게 유림 편에서 있어 준다. 유림 역시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마음이 힘들 때, 기자들에 둘러싸여 체육관에 갇혔을 때 애인인 지웅(최현욱)이 아니라 친구인 희도에게 도움을 청한다.
 
특히, <서른, 아홉>의 찬영은 죽음을 앞두고 부모와 애인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친구 미조에게는 솔직히 드러낸다. 심지어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부모와 애인을 보살피는 일을 친구들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는 친구 관계가 역할이나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하게 맺어진 관계에서 우리는 도리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없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고 또한 이를 들어줄 수 있다.
 
이처럼 여성들은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알아가고 다름을 수용하며 서로를 지극히 보살핀다(<서른, 아홉>). 또한 같은 분야에서 경쟁을 하면서도 더 진하게 공감하며 연민 어린 우정을 쌓아간다(<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여자들의 우정이 '연애상담'의 도구 정도로 다루어져 왔던 걸 알기에,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두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이 나는 무척 반가웠다.
 
 이성간의 로맨스 뿐 아니라 희도와 유림의 우정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

이성간의 로맨스 뿐 아니라 희도와 유림의 우정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 ⓒ tvN

 
하지만, 여성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우정이 늘 우리 곁에 있음을 말이다. 사실, 이 두 드라마가 마무리되어 가던 무렵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생활을 했다. 그 때 나의 한 친구는 생강차가 담긴 택배를 보내왔다.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많이 힘들지? 빨리 컨디션 회복하길!'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친구의 응원은 답답하고 아팠던 내게 커다란 힘이자 위로였다. 아마도 이런 우정에 대한 기억을 많은 여성들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독일의 심리치료사 이름트라우트 타르가 저서 <그럴수록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에 적었듯, 여성들의 우정은 역사적으로 폄하되어 왔다. 때문에 여성의 우정은 오랫동안 매체에서 로맨스의 소품 정도로만 다루어지거나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 속에 왜곡되어 묘사되곤 했던 것이다.

이젠 여자들의 우정이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익히 알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우정 경험이 널리 공유된다면, <서른, 아홉>과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보여준 공감과 연민 그리고 감동을 현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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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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