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아마 음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제 발표된 그래미상 소식에 분루를 삼키며 밤잠을 설친 이들이 꽤 많지 않을까 싶었다. bts의 연속된 도전이 '그래미의 고집스러움'에 의해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당한 기준에 의해 받을 만한 이에게 상을 줬다며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잘 봐줘도 그것은 '고집스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아, 물론 리더인 RM은 내일이면 이 허망함과 화도 잊을 것이라 멋지게 얘기해서 역시!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시상식 내내 이어졌던 가수들의 퍼포먼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그들의 몸짓과 당당함이 비교불가로 사랑스러웠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면 위안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오늘은 섭섭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노래를 꺼내 들어야 할 것만 같다. 그들에겐 글로벌 무대를 호령한 히트곡만 해도 이미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미농지 같은 느낌의 '봄날'을 플레이 리스트 젤 위에 올려놓는다. 2017년 발표된 곡이니 벌써 햇수로 6년에 든 곡이다. 

4월을 위로하는 노래 '봄날'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빅히트 뮤직

 
'위로와 격려', 혹은 '고마움과 미안함'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떨어지는 꽃잎들에 투영되는 달 4월의 초입에 서면 언제부턴가 이 노래를 조용하게 찾아 듣는 이들이 많아졌고, 나도 5년 전쯤 스스로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시작은 딸아이로부터였다. 아이의 음악 취향은 굉장히 폭넓어서 가끔은 놀라울 때가 많았는데, 글램록을 좋아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랩 가사를 읊조리다, 종래는 발라드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소위 '음악방송작가'로 밥벌이를 오랫동안 해왔던 엄마를 선곡으로 이겨먹을 때가 많았다.

그런 딸아이였기에 종종, 새로운 음악 트렌드가 생겨나면 엄마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알려주고는 했었다. 물론 여러모로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다소 편향적으로 음악을 듣는 나였기에 아이의 경계 없는 선곡으로 편협함을 조금씩 넓혀나갈 수 있었고 가끔은 고맙기조차 했다. 아마 아이의 전언이 날아온 날도 오늘처럼 꽃잎들이 눈처럼 날리는 날이었을 거다. "엄마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방탄소년단이라고 아이돌인데, 엄청 노래가 좋네. 요즘 듣기 딱 좋겠어"라는 짧은 메시지 뒤에 노래, '봄날'의 동화 같은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그것도 기분 좋은 충격.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한 얘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워낙에 BTS에 대해선 '힙합 아이돌 그룹'이라는 선입견을 혼자 가지고 있던 터라, 그들의 노래를 잘 듣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전 지식조차 거의 없던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봄날'을 듣는데, 자꾸 가슴께가 먹먹해져 왔다. 화면은 파스텔톤인데, 어디선가 매서운 봄바람이 여기저기서 불어오는 듯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게 노래의 끝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라서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정지시키고는 심호흡을 길게 했다. 가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런 노래를 그때까지만 해도 힙합을 지향하는 아이돌 그룹이었던 bts가 불렀다는 놀라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숨죽이며 다시 가사만 찾아 찬찬히 읽어보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 될까 널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만나게 될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말로는 지운다 해도
사실 난 아직 널 보내지 못하는데
눈꽃이 떨어져요
또 조금씩 멀어져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 될까 널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만나게 될까  -BTS, '봄날'의 가사 중


아... 참으로 절절했다. 누구를 그리워 하기에 이 봄날에도 추운 겨울을 떠올리며, 오직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꽃잎 하나하나에 보고 싶다는 말들을 아로새길까? 정녕 봄이 이토록 아린 계절이었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노래 가사 한 줄을 읽을 때마다 딸려 왔다.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 '봄날'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 숨은 뜻을 인지한 순간 노래는 또 다른 의미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위력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봄이 아닌 겨울에 머무르고 있는, 먼저 간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던 거다. 이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노래는. 그리하여 꽃 피어 찬란한 '봄날'의 한가운데서 외치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정수였던 것이다.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빅히트 뮤직

 
굳이 입에 올리기 싫은 그날의 그 참담함을 가져오지 않아도,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BTS의 목소리로 너무나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리움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롯이 내 것으로 스며든다. 어쩌면 내가 아는 한, BTS의 노래들 중 가장 한국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 누구든 몇 번만 들으면 따라 흥얼거릴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우리 고유의 한을 품은 정서를 가지런한 노랫말로 잘 나타냈다 생각한다. 가사가 이토록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봄노래'의 왕좌를 지켜오던 장범준의 '벚꽃엔딩'을 위협적으로 따라붙고 있는 봄노래로 손꼽히고 있다니, 좋은 노래는 듣는 이들의 여하를 막론하고 마음에 가닿는다는 내 관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국의 지독하게도 슬펐던 어느 해 봄을 노래로 펼쳐내던 그들은 이제 세계를 호령하는 보이그룹이 됐고, '그래미쯤이야 다음에 다시 또 도전하면 된다'는 말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굳센 힘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들이 노래 '봄날'로 위로하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4월이 올 때마다 노란 물결이 쉴 새 없이 일렁이는 걸 그들은 언제까지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노래로 한 약속은 시대를 넘어 유효하다 그리고 그 약속을 보란 듯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대중음악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숙명 같은 것일 게다. 그러므로 또 한 번 다시 맞게 된 우리의 봄날에도, 그래미 수상 실패라는 짧은 좌절을 딛고 새로운 도전과 내일을 기약하는 BTS의 '봄날'에도, 아직 꽃 필 차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때론 노래 한 곡의 생명이 우리의 온 생애보다 더 길고도 깊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후에 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ggotdul 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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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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