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색을 지녔다. 찬란하고 화려하다는 수식을 아낌없이 붙여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앞다투어 피는 봄꽃들 때문이다. 그 수많은 색의 산란이 짧은 봄날에 꿈처럼 펼쳐졌다가 사라지기에 우리는 그 어느 계절보다 더 '봄날의 꽃'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노란 꽃의 개화로부터 봄소식은 들려온다고들 한다. 복수초, 산수유, 개나리 같은 노란 꽃들이 별빛을 머금은 채 산과 들에 지천일 때면 긴긴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땅도 녹아내리지만, 사람들 가슴엔 어떤 희망의 언어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봄이란 단어에는 원래 '노란 희망'이 씨앗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양, 많은 이들이 봄의 색으로 노랑을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찬란한 봄 햇살의 언저리엔 늘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운 한 줄기 꽃샘바람이 숨어 있다는 걸 우린 차마 간과할 때가 많다. 피어오르는 희망의 끝에는 숙명처럼 져야만 하는 절망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

1983년 발매한 양희은 앨범. '하얀 목련'이 수록돼 있다. ⓒ 서라벌레코모드사

 
봄이면 생각나는 노래

어쩌면 절망과 희망은 극성을 띠며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몸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이맘때, 한 번쯤은 듣게 되는 곡,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다. 봄이 시작됐다는 신호를 주던 노란 꽃들이 서서히 사라져 갈 무렵, 목련은 순식간에 작심을 한 듯 터져 버린다. 일생을 단 한 순간으로 보여주며 마무리하겠다는 결연함을 지닌 꽃이다. 

아마 양희은의 <하얀 목련>도 이런 목련의 놀라운 성정을 읽는 것으로부터 곡 작업이 출발하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 가요사에서 양희은이 차지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은 극복의 아이콘일 것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저 유명한 <아침이슬>의 가창자이기에 이런저런 수모를 겪었고, 민중 음악가 김민기의 페르소나로서 짊어져야 할 몫도 상당했다. 그런가 하면 개인사적으로는 '시한부 난소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마까지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1982년 봄쯤이었다고 한다. 당시 서른둘의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입원한 후 병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목련을 보며 '다시 이 목련을 볼 수 있을까?'라는 심정으로 <하얀 목련>의 가사를 써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가사 중 '봄비 내린 거리마다' 보이던 '슬픈 그대 뒷모습'은 어쩌면 절망의 끝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자신을 투영한 가사가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렇게 자신이 생을 마감한다 해도 봄이면 어김없이 송이눈처럼 다시 피어날 목련이 있기에, 자신의 마음을, 영혼을, 온통 병실 창밖의 그 눈물 같은 목련 꽃에 전송하고, 또 전송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양희은이 쓴 가사에 곡이 입혀지고 <하얀 목련>은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노래가 부적이 돼주기라도 한 것인지 양희은은 이후 기적적으로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84년 한 대학의 광장에 민주화를 열망하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고, 거기엔 나도 있었다. 시위군중이 아닌, 학보사의 문화부 기자로 그들의 목소리를 신문에 담기 위해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군중의 맨 끄트머리에 자리해 있던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었다.
 
어, 거기 거 학보사 기자님 앞으로 나와서 노래 한 곡 부르십시오.

시위를 이끌고 있던 4학년 선배였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노래라니. 그런데 그날은 대체 어떤 기운에 내게 와닿았는지, 마음으로는 '안 된다, 안 된다'를 연발하면서도 발걸음은 어느새 광장의 앞 쪽으로 내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손에는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대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무반주 아카펠라로 부르는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곳곳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하얀 목련>을 부르고 있었고, 어쩐지 시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처연하고도 의미심장한 '꽃에 대한 헌사'는 서서히 사람들 가슴에 물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뭔가 뜨거운 것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는 생각은 했었던 거 같다. 목련이 활짝 핀 봄이었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 마를 새 없던 날들이었다. 거기에 노래, 하얀 목련은 봇물이 터지듯 함께 모인 사람들의 합창으로 교정을 크게 울렸다. 한 없이 유약한 꽃인 줄만 알았는데, 노래 속에 살아 있는 하얀 목련은 실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쓸쓸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상징 뒤 편에는 끝나지 않을 윤회, 거듭되는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불렀던 <하얀 목련>이야말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학우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노래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희망을 아로새기다
 
 순백색 목련.

순백색 목련. ⓒ 서산시 제공

 
올해는 꽃 피는 차례가 예년보다 사나흘 느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녘에도 아직 목련이 채 다 피지 않은 곳도 있다. 물론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피면서 지고 있는 꽃이 목련이다. 그러다가 봄비라도 내릴라치면 예외 없이 그 굵은 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픔을 조장하고야 마는 꽃도 바로 목련, 그중에서도 하얀 목련이다. 

봄마다 돌아오는 이별의 편린, 슬픔은 극한의 눈물로 정화될 수 있음을 목련은 몸소 보여준다. 단언컨대, 목련보다 슬프게 지는 꽃은 없을 것이다. 예고도 없이 뚝, 떨어져 버린다. 목련의 낙화를 보고도 가슴에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서정성을 조금 의심해 봐야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목련은 다시 희망을 우리들 가슴에 아로새겨주며 한 생을 마감한다. 양희은이 노래한 것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에 다시 하얀 목련은 지면서' 다음 봄을 기약하므로.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 쳐진 것 같은 병실에서 <하얀 목련>의 가사는 탄생했다. 최루탄으로 매운 눈을 비벼가며 청춘들은 <하얀 목련>을 목청 높여 불렀다. 그리고 분연히 일어섰다. 노래의 씨앗은 하나이겠으나 그 씨앗이 피우는 꽃은 수천, 수만이다. 노래가 가진 최고의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 눈물보다 더 서럽게 지는 하얀 목련을 보며 매양 슬픔에만 젖지 않을 일이다.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몰아치는 어느 봄날엔 또, 눈물을 흘리다가 웃어도 좋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후에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