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 참사의 역사적 의미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도입 부분은 2001년이 아니라, 그보다 22년이나 앞서 일어났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다.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여전한 때라서 그런가, 마음이 무겁다. 이번 침공은 국제사회에 또 어떤 상흔을, 얼마나 오래도록 남기게 될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 넷플릭스


1979년, 그 해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7개 부족에서 각각 결성된 여러 지하드 무슬림 집단들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점령군과 저항군의 전투가 지난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1989년), 아프가니스탄 무슬림 저항군이 소련 점령군을 자기네 땅에서 몰아내는 데 결국 성공한다. 그 10년 동안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호적 협력관계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때로부터 2001년이 오기까지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이 9/11 테러를 자행할 만큼 미국을 증오하게 된 걸까?

전쟁이 있었다. 두 번이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1990년), 그리고 그에 대한 반격으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1991년)이 차례로 일어났었다. 각각의 전쟁이 내세운 명분은 비교적 근사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었듯, 핵심적 사유는 결국 석유 자원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었다.

바로 이때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 사이에 반미 분위기가 움튼다.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은 무슬림형제국가(이라크)가 공격받는 것을 보고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상기했다. 이라크를 저런 방식으로 침공한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기네 나라에도 얼마든지 (소련처럼) 침공해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올라왔다. 동시에 지하드 무슬림들은 지난 10년간 미국의 지원이 독립국 아프가니스탄의 주권보호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과 안보, 혹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미국 중심의 이기적 행동이었음을 간파했다. 더불어 그들은 기독교국가 미국과 이슬람국가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적 차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한 번 움튼 반미 감정은 해마다 쑥쑥 자라났다. 1996년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지하드 무장군사집단 '알카에다'가 대담하게 미국에 선전포고를 할 정도였다. 미국이 알카에다를 거의경계하지 않으면서 무시하자, 미국을 주적으로 여기게 된 무슬림들이 다양한 테러집단들에 적극 가입했다. 이 무렵, 그 이전까지 난립하던 지하드 군사집단들을 무력으로 통합하려는무슬림 근본주의자 무장군사집단 '탈레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빈 라덴은 탈레반과 꽤 가깝게 지냈다.

어느덧 2000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지하드 무슬림들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들은 미국 비행기 납치테러를 공모했다. 그런 다음 그들 중 몇몇은 학생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다. 그렇지만 영어가 어눌했던 그들은 원하던 항공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며 테러계획을 구체화해나갔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영어가 가능한 미국 내 무슬림들과 연락을 취해 일을 진척시켰다. 
 
그때까지도 미국은 그들의 움직임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강대국이라는 나르시스트적 오만 때문이었을까. 2000년 알카에다가 미국 전함을 공격했을 때조차 미국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공포의 미국
 
9/11 당일 우리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만 공격받았다고 기억하지만, 같은 날 펜타곤도 공격받았으며, 하마터면 백악관도 공격받을 뻔했다. 2,977명의 미국인들이 그날의 테러로 사망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9/11 당시 미국 정부의 수반은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즉각적으로 9/11 '복수'를 선포했다. 9/11의 충격으로 사람들이 슬퍼하는 와중에 부시는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권한을 확대했으며, 의회는 이를 승인해주었다. 모두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가치에는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근절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윤리적 전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건 '느낌'일 뿐이었다. <터닝포인트>에 등장한 브루스 호프먼(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이지적하듯 오해의 소지가 많은 문구였다. 테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와 폭력을 가리키기 때문에 무엇, 혹은 누구와 전쟁을 하는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내용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테러와의 전쟁은 두 방향으로 분산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직접 공격이 그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 내 무슬림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 전체=테러범'은 당연히 아니었고 '모든 무슬림=테러범' 또한 아니었지만, 테러라는 추상적 개념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여타 무슬림국가, 그리고 무슬림 개인들에 대한 반격' 이상의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랬으니 부작용이 일어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때 미국이 테러범 관련해 고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현상금에 혹한 사람들이 출몰해 아프가니스탄 및 인근 파키스탄의 선량한 무슬림들을 아무나 대충 붙잡아 테러범이랍시고 고발하는 사태가 속출했던 것이다. 이때 건네받은 무슬림들을 미국이라도 제대로 조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그들을 별다른 구분작업 없이 쿠바의 관타나모 임시수용소로 보내버렸다. 그곳은 미국 영토가 아닌지라, 대다수 미국인들은 관타나모 임시수용소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심지어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심문과정에서 섬뜩할 만큼 비인도적 고문이 늘 자행되었다.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그뿐 아니었다. 2003년, 미국은 뜬금없이(아마도 어떤 무슬림의 허위자백을 근거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공습을 강행했다. 물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데다 아프가니스탄 영토에 주둔한 미군이 무슬림들을 조롱하고 살해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는데, 소셜미디어를 통해 문제의 장면들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요컨대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듯, 테러와의 전쟁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문구였다. 그것은 '모두 꼼짝마'라는 공포(terror)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괴력의 문구였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 이후에 오히려 테러집단은 더 많아졌고(4배 증가), 그들에게 빈 라덴은 숭배받는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중단 혹은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테러를 증식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9/11 테러가 테러와의 전쟁을 낳았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그 이름도 무색하게 다시금 테러를 낳은 셈이다.  

테러와 전쟁하겠다며 그렇게도 난리법석을 부려놓고 "미국, 대체 뭘 한 거니?"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전쟁은 테러를 감축하거나 예방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테러와 전쟁은 서로가 서로에게 맞물려 돌고 도는, 상당히 친화적 관계에 놓여있는 것들일 뿐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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