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 대통령들의 유명한 연설을 배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 중 어록으로 남는 건 웬만큼 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의 연설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기억에 남는 문장은 없다. 왜 그럴까?

지난 15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대통령은 말했다' 편이 방송되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를 AI로 복원해 시작한 이날 방송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 및 연설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6일 '대통령은 말했다'편을 취재한 하누리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연설은 안 배우는 이유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지난 15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대통령은 말했다' 편을 취재하셨는데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어요?
"이전부터 저희 부장이 대통령의 연설로 아이템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저희가 미국 대통령 연설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 연설 중에는 기억 남는 게 없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죠. 취임식이 다가오니까 지금까지 대통령 연설로 우리나라 역사를 한번 보면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 미국 대통령 연설은 배우는데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안 배울까요?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인터뷰해 주셨던 분 중에 강원국 작가님께서 '우리는 여야가 너무 첨예하게 갈려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있었던 시절이 없다. 누군가가 대통령의 말을 외우고 또 그 말이 좋은 말이었다고 기억하려면 그렇게 찢어져서 싸우는 게 없어야 하고 또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모두 다 부재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감되더라고요."

- 미국은 우리나라 같지 않은가요?
"미국도 그렇긴 한데 보통 대통령 연설을 보면 국가적 통합을 강조하는 게 많더라고요. '우리는 미국인이고 우리는 미국의 자유주의를 위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해'란 구호가 많아요. 어떤 미국인이라도 공감하고 또 항상 주장하는 내용이고, 또 변치 않는 가치잖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남는 연설이 많은 것 같고요. 우리는 그 시대 시대별로, 또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보수 우파냐 진보 좌파냐 이거에 따라서 내용도 많이 나뉘었던 것 같아요."

- 대통령은 비서관이 써준 거 읽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대통령이 아예 초안 방향을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고. 비서관이나 각 부처에서 적어와도 대통령이 계속 소통하면서 고치더라고요. 어느 대통령이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부마다 취임사나 연설마다 특징이 달랐던 것 같아요."

- 처음 취재는 뭐부터 시작하셨어요?
"KBS 아카이브와 대통령 기록관에 이승만 1대 대통령 취임사부터 연설 육성이나 영상이 있는지 찾았고요. 이승만 대통령은 없더라고요. 취임식 영상만 조금 남아 있고, 연설한 모습 자체가 안 남아 있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민부터 시작했었죠."

- 이승만 대통령 땐 녹음 하는 게 없었을까요?
"그때도 취임 선서는 녹음이 돼 있었어요.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연설 자체도 녹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많은데 취임식이 없더라고요. 기록관에서는 소실된 이유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취임 이후에 한국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됐을 수도 있고, 아예 녹음을 못 한 다른 상황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때는 정부 수립 초기였기 때문에 기록물 남겨야 된다는 의식도 없었을 것이고요."

- 이승만 대통령은 육성이 많이 없어서 AI로 복원하셨잖아요. 복원 과정은 어땠어요?
"음성은 500문장 이상 실제 그 사람이 읽은 문장이 있어야 되고 영상으로 치면 한 30분 이상 같은 사람이 한자리에서 말한 음성이 있어야 AI로 복원이 되는데요. 이승만 대통령 음성 같은 경우에는 잡음과 같이 녹음되어 있어서 AI가 학습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연설 음성을 모아서 AI 학습을 했는데 처음에는 AI 업체에서 '이렇게 음질이 안 좋은 경우는 복원할 수가 없을 것 같더라'고 하셨는데요. 정말 많이 노력해 주셔서 복원을 했어요. 처음 듣고는 이게  진짜 목소리 아니고 AI냐고 할 정도로 잘 됐습니다."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박정희 대통령의 1963년 취임사는 온갖 미사여구는 다 썼던데.
"박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취임사가 미사여구가 많기는 합니다. 박 대통령 때 같은 경우에는 좀 특이점이 '국민의 의무'를 설명 많이 하더라고요. 그걸 설득시키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었나 생각도 들고요."

- 전두환씨는 대놓고 시위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게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1987년 6월 항쟁에 대한 예고였던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때 취임사를 보면, 헌법 질서를 지켜야 되고 자유를 향해서 나아가야 된다 얘기를 가장 많이 하면서도 그런 경고를 잊지 않았다는 점이 되게 놀라웠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봤어요."

- 너무 뻔뻔하지 않나요? 대학생보고 시위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저희 인터뷰는 안 나갔는데 박태균 교수님이 그 얘기 하시더라고요. 이게 대학인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게 아마 교수들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라고요. 사실 그때는 서울대 교수들이 거리에 시위를 나서면 발포하거나 경찰력으로 제압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실제로도 교수들이 나섰을 때는 건드리지 못했고요. 그러니까 이 부분을 굉장히 전두환씨가 경계했던 거 아니냐는 거죠."

"취임사, 당시 정부가 마주한 시대상 보여줘"

- 김영삼 대통령은 개혁에 방점을 찍었네요?
"취임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처음으로 '낮은 청와대'를 얘기를 했어요. 방송엔 나오지 않았는데, '청와대는 여러분 곁에 언제나 일하고 있는 존재로 있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얘기를 했거든요. 문민정부로서 정체성을 그렇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얘기했고 실제로 금융실명제부터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이런 위로부터의 개혁이 바로 이어지기도 했었고요."

- 김영삼 대통령은 왜 개혁을 강조했을까요?
"앞에 말씀드린 거와 마찬가지로 문민정부가 처음 들어서면서, 그전에 군사 독재 시절과는 끊고. 개혁하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고요. 이때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의 맨 마지막 문구가 '낙오자 없이 다 함께 갑시다'였거든요.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불평등하고, 가진 사람만 편법으로 계속 가지는 격차를 해소해야겠다고 김영삼 대통령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 말을 잇지 못하는 부분이 인상적인 거 같아요.
"IMF 한복판에 취임했고, 정말 국민들이 어려웠던 시기여서 그 부분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복받쳤던 것 같더라고요. 취임사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취임사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굉장히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본인이 국민들 아픔에 공감한다는 듯이 말을 못 이으니까 국민들한테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 이전 연설을 소개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임기 중 탈권위적인 화법이 화제가 됐었죠. 이런 화법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좀 보여줘야 될 것 같았어요. 재임 전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굉장히 움직였었고 그게 대통령 시절에도 이어져서 그런 화법으로 이어졌다는 걸 보여줘야 재임 시절의 연설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명박씨는 취임사에서 실용적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이념적으로 한 것 같아요.
"실용을 강조하고, 그다음 재임 중 연설들을 보면 녹색 성장이란 말도 만들고 콘텐츠 문화 산업 같은 걸 진행 시켰던 부분들도 있었거든요. 박태균 교수님도 북한이 이명박 정부 초기에 도발도 하지 않고, '실용'에 근거해서 대북 정책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점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촛불집회 있으면서 분열이 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 집회 이후에 라디오 연설을 격주마다 했거든요. 퇴임 전날까지요. 그런 방향으로 국민들한테 실용이나 경제 문제를 직접 이야기해보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박근혜씨 취임사에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 비서관은 최서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하는데 맞을까요?
"조인근 비서관님 말씀은, 취임사 이후에 연설들 예를 들어 '통일 대박', '우주의 기운' 이런 말들을 최서원씨가 다 써줬다고 하는 보도나 수사 결과에 대해서 '아니다. 모든 게 최순실씨를 그렇게 거친 게 아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취임사는 사실 이미 그 최씨의 녹취가 공개돼서 개입을 했다는 부분은 사실이죠."

- 문재인 대통령은 말만 그럴 듯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제가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 취임사는 시대가 요구했던 대통령상을 잘 담았던 것 같아요. 그땐 부패하지 않은, 특정인, 특정 세력과 결탁하지 않은, 깨끗한 대통령을 요구했죠. 특히 정유라씨 문제로 공정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던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대통령이 되겠다' 이 약속이 국민들한테 제일 필요했던 상황이라서 그런 취임사가 나왔던 것 같아요. 취임사가 매 정부마다 그렇게 시대상을 보여주더라고요."

"대통령 취임사에서 집중해서 볼 부분은..."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1TV

 
-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연설의 공통점,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미국 대통령들은, '우리는 하나로 모여 있는 여러 객체, 여러 인종, 민족이다', '하나로 뭉쳐 있다'는 점을 많이 강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성향의 대통령이 말을 하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감동 받는 것 같더라고요. 미국이 항상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가치 부분도 항상 강조하고요. 부시 대통령이 9·11 사태 이후 했던 연설들이 명연설로 꼽히던데, 이 역시 '민주주의 미국'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시대적인 과제들 예를 들어 공업 발전, IMF 극복, 북한과의 문제 해결 같은 시대적 과제가 항상 있었죠. 이런 부분에 더 집중해서 얘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 공통점은요?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조하는데, 미국처럼 그걸 전면에 내세우느냐 아니면 그걸 기저에 깔아놓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얘기하느냐 이런 차이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마지막 부분에 5월 출범하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듣고 싶은 비전이 무엇인지 담으셨잖아요. 기자님이 듣고 싶은 건 뭔가요?
"저는 설문조사에서 3위로 꼽혔던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싶습니다. 경제 회복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 살림살이 회복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가 계속 장기화되면서 청년들도 자신감을 많이 잃고 그런 것 같아서요. 에너지나 자신감 이런 회복도 포함해서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저는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게 취임사도 그냥 짜인 각본이고 좋은 말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취재해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촘촘하게 5년 동안 해야 할 일들, 할 일들, 혹은 대통령 자신이 하려고 하는데 반대에 부딪힐 것 같아서 약간 미리 말해두는 일들, 이런 것이 다 있더라고요. 그런 점이 흥미로웠고요. 취임사가 우리나라 5년의 예언을 하는 '예언서' 같은 부분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대통령 취임사는 그런 점에 집중해서 눈여겨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취재했지만 방송에 못 나간 게 있을까요?
"사실 대통령의 사과라는 부분을 따로 떼서 하고 싶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사과를 안 한 대통령은 없었거든요.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도 사과했었더라고요. '부동산 투기로 인해서 집값이 너무 뛰었다, 내가 그걸 못 잡아서 국민 여러분한테 죄송하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잘 안 알려진 게, 이 연설을 했는데 육성이나 영상을 청와대랑 방송사가 안 남겨둔 거예요. 연설문만 남아 있더라고요. 사실 AI로 저희가 박정희 전 대통령 육성을 복원했어요. 분량이 길어서 나중에 빠졌습니다. 부동산은 모든 정부의 숙제였다는 점도 흥미로웠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