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이 주도한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 명나라가 보내준 선물이 있다. 조선 군주의 지위를 승인해 준다는 의미의 인장이 그것이다. 이 도장을 받은 것은 1400년에 왕이 된 뒤였다.
 
오늘날의 국제사회에도 승인 제도가 있다. 새로 수립된 국가, 국내법상 비합법적 절차로 수립된 정부, 사실상의 정부 기능을 갖게 된 반군단체, 상당한 힘을 갖게 된 민족해방운동단체, 혁명이나 쿠데타로 취임한 국가수반 등에 대해 외국 정부가 승인을 해주는 예들이 있다.
 
이런 승인을 받으면, 승인을 해준 국가와 정상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 승인을 받지 못한다 해서 국가·정부·반군단체·민족해방운동단체나 국가수반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국가와의 상대적 관계에서만 예우를 받지 못할 뿐이다.
 
과거에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있었던 책봉 역시 상대적인 것이었다. 중국의 책봉을 받지 못한 군주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만 예우를 받지 못할 뿐이었다. 그것과 관계없이 자기 나라 안에서 군주 지위를 행사할 수 있었고, 중국을 제외한 여타 왕조와의 관계에서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책봉의 상대성 원리
 
 조선 군주의 도장이 찍힌 칙명서(관직 임명장). 사진은 1895년 갑오경장 이후의 칙명서.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이준용을 중추원 1등 의관에 임명하는 칙명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조선 군주의 도장이 찍힌 칙명서(관직 임명장). 사진은 1895년 갑오경장 이후의 칙명서.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이준용을 중추원 1등 의관에 임명하는 칙명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세조실록>이나 <성종실록>에 따르면, 조선 주상은 일본의 지방 및 중앙 권력자들로부터 폐하 혹은 황제로 불렸다. 자신들이 조선을 제후국으로 취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당연했다. 책봉의 상대성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상대성 원리'는 중국의 책봉을 받지 않아도 국가의 지위, 군주의 지위에 문제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강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군주의 위상이나 입지가 불안해질 수도 있었다. 국제적인 압력이 생길 수도 있고 국내 반대파의 도전이 거세질 수도 있었다.
 
또한, 책봉을 받아두면 중국과의 무역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었다. 그래서 중국이 동아시아 최강이 된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급적 중국의 책봉을 받으려 했다.
 
그런 책봉이 자국과 중국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이 있었다. 중국이 보내주는 군주의 인장이 그중 하나였다. 이 도장을 찍은 문서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중국의 인정을 받는 군주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왕실 사람들이 비상시에 이 인장을 챙겼던 것은 그것이 없으면 군주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그것이 있어야 만약의 경우 중국의 지지를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도 그런 인장을 확보해 두고자 했다. 이성계가 조선 주상이 아닌 고려 주상으로 즉위한 음력으로 태조 1년 7월 17일(양력 1392년 8월 5일)에 갖고 있었던 인장은 공민왕이 명나라로부터 받아둔 것이었다. 몽골족 원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한 뒤인 1370년에 받은 것이었다.
 
대한제국 때 편찬된 <증보문헌비고>는 공민왕 재위 19년에 명나라 고황제(高皇帝, 명태조 주원장)가 금인 1개를 하사했다면서, 금으로 된 그 도장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 찍혀 있었다고 알려준다.

고려 주상으로 시작한 이성계는 7개월 뒤인 태조 2년 2월 15일(1393년 3월 27일) 국호를 조선으로 개정했다. 그래서 그 인장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명나라에 도장 재발급을 요청했다.
 
그런데 명나라는 발급을 거부했다. 공민왕 때 받은 것을 돌려준 뒤 새로운 것을 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이성계가 정도전을 앞세워 요동(만주)을 차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조선이 여진족과 합세해 요동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선 정부를 흔들어댈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이성계 정권은 독자적으로 도장을 제작했다. '조선왕보(朝鮮王寶)'라는 글귀가 새겨진 것이었다. 제후국의 도장에는 보(寶)나 새(璽) 같은 글자를 쓰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어보나 국새 혹은 옥새 같은 표현은 황제국이나 천자국에 어울렸다.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조선왕보가 사용된 기간 동안에는 조선의 자주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기간에는 명나라에 맞서는 요동정벌도 추진됐다. 반면, 불이익도 있었다. 명나라가 정도전 압송을 요구하는 바람에 조선 조정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실추됐다. 또 명나라와의 무역분쟁도 감수해야 했다.
 
이성계 정권은 1년에 3차례 무역을 하자고 요청했다. 해마다 세 차례 조공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분쟁의 원인이 됐다. 

신하국이 조공을 하면 황제국은 답례로 회사(回賜)를 했다. 실질적으로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적자를 보는 쪽은 일반적으로 황제국이었다. 대체로 볼 때 명나라 같은 농경민족이 중국을 지배할 때는 조공 수량보다 회사 수량이 많았다. 양국 관리들이 조공 물량과 회사 물량을 사전에 협상했고, 그 협상의 결과는 대개 신하국의 흑자 무역이었다. 
 
유목민 출신의 중국 왕조는 조공을 많이 받고 회사를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군사력을 믿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농경민 출신의 중국 왕조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다. 유목민보다 못한 군사력으로 동아시아를 이끌자면 그런 경제적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 정권이 그런 식의 무역을 해마다 3차례나 하자고 하니, 명나라는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많아 봤자 2년에 1차례 혹은 3년에 1차례 할 뿐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요구를 거절하는 방식으로 무역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최강국의 인장을 받지 못한 이성계 정권이 무역분쟁까지 겪게 되니, 정권의 입지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1398년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세력을 모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사정도 작용했다.

친중국파 이방원의 집권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조선과 명나라의 그 같은 불안정 상태를 해소한 것이 친중국파 이방원의 집권이었다. 이는 명나라가 인장 발급을 승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왕자의 난 뒤에 2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1400년에 즉위한 태종 이방원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조선국왕지인'을 받았다.
 
이 인장의 수령은 한중관계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는 이방원의 직계 후손들 사이에서 왕권이 계속 승계되는 데도 기여했다.
 
하지만, 불이익도 컸다. 현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옛날 한국은 중국에 사대를 했다'는 인식이 남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 것. 이방원과 명나라의 유착이 심화되면서 조선은 요동 수복에 대한 꿈을 공식적으로 접었다.
 
또 명나라의 요동 지배를 지원하고자, 툭하면 군대를 보내 여진족을 토벌했다. 조선의 안보보다 명나라의 안보를 위해 여진족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이는 훗날의 임진왜란 발발과도 무관치 않다. 조선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견제하지 못하고 그 침공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여진족 문제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의 요구에 끌려 다니느라 조선군은 여진족과의 전투에 최적화된 군대가 됐다. 임진왜란 초반에 연전연패한 것은, 여진족과 다른 방식으로 전투하는 군대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눈길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자, 조선과 명나라의 압박으로 그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여진족이 강성해졌다. 조선국왕지인을 받은 뒤로 명나라에 끌려 다닌 것이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호란·병자호란 발발에까지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아버지 이성계가 받지 못한 인장을 이방원은 수월하게 받아냈지만, 집권 기념으로 받은 그 선물로 인해 조선 민중은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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