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종 이방원>은 지난 5일과 6일 방송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다뤘다. 이방원이 쿠데타를 위해 사병을 훈련시킨다는 첩보를 입수한 정도전이 이방원과 그 형제들을 암살하려 하자, 이방원이 이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도전을 죽이는 장면이 방영됐다.
 
정도전이 선제공격을 했다는 것은 <태조실록>에 나오는 이방원의 주장이다. 이방원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정도전 역시 이방원을 숙청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으므로 '이방원의 말이 거짓이다 아니다'를 100% 단언하기는 힘들다. 정도전이 선제공격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왕자의 난을 성사시키고 공식 집권을 기다리게 된 그 시점에서 이방원은 자신이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쿠데타에 필요한 군사적 준비는 돼 있었지만 쿠데타를 어떻게 합리화할 것인지는 준비돼 있지 않음을 노출한 것이다. 쿠데타 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쿠데타 명분을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쿠데타에서도 나타났듯이 쿠데타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쿠데타군이 국가원수의 신병을 확보한 뒤에라도 나머지 정부군이 대규모 반격에 나서면 쿠데타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원수의 신병을 확보한 시점부터 나머지 정부군이 총반격에 나서는 시점까지 쿠데타군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최대 무기는 쿠데타 명분이다. 두 시점 사이에 쿠데타 세력은 이 명분을 무기로 국가원수의 승인을 받아내고 정부군 사령관들의 반격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방원이 내놓은 쿠데타 명분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그런데 그 두 시점 사이에 이방원이 내놓은 쿠데타 명분은 엉성했다. 
 
음력으로 태조 7년 8월 26일(양력 1398년 10월 6일) 밤중에 정도전과 그 측근들을 살해하고 기선을 제압한 이방원이 다음날 어전회의에서 올린 상소에 그런 문제점이 들어 있었다. 음력 8월 26일자 <태조실록>이 그 장면을 소개한다. 음력 8월 26일자 실록에는 다음날인 음력 8월 27일 사건까지 함께 적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백관들을 이끌고 이성계 앞에 나간 이방원은 상소를 통해 쿠데타 명분을 밝혔다. 그는 "적자(嫡子)를 세우되 장자로써 하는 것은 만세(萬世)의 규범"이라고 말했다. 정실부인의 소생 중에서도 장남을 후계자로 책봉하는 것이 오래된 규범이라고 말한 것이다. 첫째부인인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을 세자로 임명하지 않고 둘째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을 임명한 것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시했던 것이다.
 
그런 뒤에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정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전하께서는 장자를 버리고 어린 애를 세웠으며 도전(道傳) 등은 세자를 끼고 여러 왕자들을 살해하려 해서, 재앙이 예측할 수 없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둘째부인의 아들을 앞세워 첫째부인의 아들들을 해치려 했고 그로 인해 예측불허의 혼란이 조성됐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둘째부인의 아들을 세운 장본인이 다름아닌 '전하'라고 이방원이 상소에서 명시했다. 아버지가 이 사태의 발단이라고 은근히 암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언명을 했던 것이다.
 
정도전이 잘못 세워진 세자를 앞세워 자신들을 위협했기 때문에 부득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말을 꺼내기 바로 직전에 "전하께서는 장자를 버리고 어린애를 세웠으며"라고 밝혔다. 쿠데타 명분이 정도전이 아닌 이성계의 잘못된 처사에 있었음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난 시점은 조선 건국 6년 뒤였다. 건국 직후에 이복동생 이방석이 세자가 됐으므로 그 뒤 6년간 이방원이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원망이 쿠데타 성공 직후에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라는 식의 상소를 통해 표출됐다고 볼 수 있다.
 
이방원이 밝힌 쿠데타 명분에 따르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궁극적으로 아버지 이성계였다. 아버지의 잘못된 결정이 정변의 원인이었음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정도전뿐 아니라 이성계도 죄인이라는 논리로 이어질 만한 발언을 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일반적인 임금이 아니라 건국시조인 임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죄인으로 규정되면 조선왕조 자체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쉬웠다.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그런데 이방원은 새로운 나라를 세울 힘은 없었다. 그가 성사시킨 것은 쿠데타였지 혁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좋든 싫든 조선왕조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 새로운 정권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건국시조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던 것이다.
 
세습제 왕조국가 시대에는 임금의 혈통이 특히 중시됐다. 건국시조를 제외한 임금들은 이전 임금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정통성을 갖출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면 이방원 자신의 집권 명분도 자연스레 허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태의 책임이 이성계에게 있음을 명시한 이방원의 상소는 그래서 위험했다. 그것은 건국시조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쿠데타를 스스로 부정할 만한 공식 발언을 쿠데타 성공 직후에 했다는 것은 이방원의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군사력 못지않게 쿠데타 준비에 필수적인 쿠데타 명분조차 정리해놓지 않고 거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의 상소에 담긴 위험성은 쿠데타 지도부에 의해 즉각 수정됐다. 이방원이 허수아비로 내세운 제2왕자 이방과를 세자로 책봉하는 이성계의 교지에서 그 명분이 수정됐다. 이방원 측이 작성한 이 교지는 책임을 오로지 정도전에게만 국한시켰다.
 
위 날짜 <태조실록>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이성계 명의의 이 교지에서는 '외교적 갈등을 일으키는 정도전을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명나라에 보내려 하자 정도전이 이에 반발해 왕자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부분이 강조됐다. 그래서 정도전을 죽이는 게 불가피했다는 점이 쿠데타 명분으로 제시됐다.
 
아버지가 잘못해서 거사를 일으켰다는 쿠데타 명분이 하루도 안 돼 사라지고, 정도전을 '죽일 놈'으로 만드는 선에서 수정된 것이다. 이방원이 쿠데타 명분조차 다듬어두지 않은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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