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극우 만화가로 알려진 윤서인씨가 자신의 SNS에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라고 적힌 사진을 올린 후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라며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해방된 지 78년이 흘렸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친일 문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3.1절을 맞아 '끈질긴 친일'편이 방송됐다. 앞에서 언급한 윤서인씨 SNS 글 소개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윤서인씨 글에 대한 팩트체크, 나아가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문제점을 같이 짚었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3일 '끈질긴 친일'편 취재한 류란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다음은 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1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끈질긴 친일' 편 취재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모든 취재와 방송이 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팩트나 논리 구성에 오류 같은 흠결이 없어야 하는 주제였어요. 취재하고 원고 쓰고 또 영상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요. 끝나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제가 목표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 기자님은 친일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대다수 국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 조상들이 많이 힘들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목숨 걸고 독립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운동하셨던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그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죠. 아직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선례나 과거는 제대로 정리를 해서 후대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방송을 보면, 지난해 만화가 윤서인씨가 자신의 SNS에 올려 논란이 된 글로 시작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3.1절 기념 방송이기 때문에 3.1절에 관련된 얘기를 해야 되는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장 최근의 사건인 윤서인씨 SNS 글로 시작한 거예요. 왜냐하면 독립유공자 400여 분이 처음으로 한 번에 집단소송을 하셨거든요.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봤습니다."

- 윤서인씨 SNS에 나온 독립 운동가 후손 집을 찾아가셨는데, 직접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보시니 어땠나요.
"저만 느낀 게 아니라 그때 당시 같이 간 5명이 공통적으로 느낀 건데, 말씀이나 행동에서 기품이 느껴지더라고요. 본인의 생각을 굉장히 분명하게 말씀하시지만, 결코 무례하거나 과격하지 않게 표현하셨어요. '이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독립운동가 후손분을 여러 명 만났는데 모두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 후손분은 윤서인씨 글에 대해 뭐라고 하시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생각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결코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일은 삼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 윤서인씨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을 했잖아요. 
"제가 그 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죠. 이번 방송하면서 제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 중의 하나가 제 사적인 사견은 배제하고 사안의 모든 부분을 골고루 다 듣고 전달하려고 노력한 거거든요. 그런데 대체로 주변 분들이 윤서인씨 해명을 들었을 때 '아 그랬구나. 오해했네'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더라고요."

- 윤서인씨는 3.1운동 때 대한독립 만세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조선독립만세라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조선과 대한이 다를까요?
"그분들은 차이가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전문가들은 실제 현장에서 조선독립 만세와 대한독립 만세는 구분 없이 혼용되어 사용됐다고 말씀하세요. 3.1 운동은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주도한 게 아니라 산발적으로 지역에서 일어난 운동이기 때문에 당시 우리 선조들이 두 가지 개념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거죠. 후대에 와서 (다르다고) 나누고 어떤 의미를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 극우들의 공격 대상 중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잖아요. 이들은 왜 위안부 문제를 공격하는 걸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분들의 얘기가 대체로 비슷하거든요. 일단 '머리채를 질질 끌고 갔다는 증거가 없지 않냐. 그렇게 끌려갔는데 가족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냐. 그리고 계약서에 월급을 준다고 쓰여 있지 않았냐. 그러면 본인의 의지인 거 아니냐'라는 것들인데, 이게 전부 일본 극우들이 오래 전부터 해 온 주장이거든요. 조금만 찾아보면 해방 직후에 미군의 주도로 진행이 됐던 연합군 조사 보고서에 이미 다 반박이 돼 있는 내용이에요. 이런 명백한 근거가 해방 직후 문서화 된 내용으로 있는데 어떤 근거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당사자분들이 계시잖아요. 그것보다 더 명확한 역사와 증거가 있을까요. 그 어떤 것보다 직접적인 증거인데 왜 (이 증거를)외면하며 모욕하고 공격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 대해서도 짚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 말씀에 되게 공감하고요. 3.1절 100주년일 때 한 언론사가 뉴스에서 길 가는 학생들한테 3.1절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면서 '이거 무슨 날인지 아느냐? 한번 읽어봐라'라고 했더니 3점 1절이란 식으로 읽어서 굉장히 화제가 됐던 적이 있거든요. 극단적으로 우리나라 독립의 단초가 된 3.1 운동 자체를 고등학생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시청자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입시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까 어렵고 점수 안 나오는 역사를 기피한다고 하더라고요. 한때는 국사가 교과 필수 과목에서 빠지기도 했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 없거나 가르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 나라를 제외하고 자국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는 없을 거예요. 그런 결정을 주도하거나 따라가도록 침묵으로 동의해서 사회가 그렇게 흘러간 거잖아요. 결국 침묵으로 잘못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높아져야 역사 교육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완용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요. 현재 거주자는 이완용과 전혀 관계가 없나요?
"현재로서는 관계가 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현재 그 집터에 집을 짓고 사시는 거주자분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꽤 크게 사업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그 회사와 또 그분이 회장으로 있던 모임들까지 찾아가면서 일본 현지 취재를 병행했어요. 또 이완용 집안의 족보까지 어렵게 구해서 일일이 다 찾아서 추적을 해봤지만 둘 사이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집을 지은 건축사무소까지 찾아가서 어떤 주문을 받아서 그런 건축물이 나오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답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 앞으로 남은 과제가 뭘까요?
"저희가 많은 시간 고민하고 여러 번 집단지성을 모으기 위해 회의도 했지만 뭐라고 답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방송도 질문으로 끝나거든요. 그게 저의 한계일 수도 있는데 다만 바람이 있다면 이 방송을 보신 분 중에 단 몇 분이라도 이 질문과 고민에 공감하고 함께 동참해 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도 충분한 성과라고 생각 합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저희가 <시사기획 창>에서 3.1절에 이런 문제를 다루자고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많았고 다른 의견들도 있었어요. 사실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어서 개인적으로 서글펐는데요. 막상 취재를 시작하면서는 불안했지만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더 이상 외면하고 무시해서 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주장들이 굉장히 견고한 세력으로 자리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구나'란 생각과 위기감이 들었어요.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일까요. 그리고 이걸 꼭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시기인 것 같다는 결단이 서더라고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끝까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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