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개봉됐던 2013년만 해도 고작 감기 하나 때문에 도시 전체를 봉쇄한다는 설정이 크게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보낸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영화의 역대급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팬데믹이라든지 PCR 테스트, 격리, 감염자라는 용어들은 그 당시 우리의 시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지 영화 속 대사였기 때문이다. 

9일을 기준으로 86.53%란 높은 접종 완료율을 보이고 있지만 매일 평균 20만 명을 넘나드는 가파른 확진자 추이는 여전히 견고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보는 영화 <감기> 속 장면들은 결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억지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연급인 장혁, 수애, 유해진, 마동석, 이희준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2013년도판 조합은 대단히 새롭고 신기하다.

영화 속에서 장혁과 유해진은 소방관으로, 수애는 감염내과 전문의, 마동석은 군 작전과장, 이희준은 밀입국자를 실어 나르는 브로커로 등장한다.  
 
 영화 <감기> 포스터

영화 <감기> 포스터 ⓒ ㈜아이필름코퍼레이션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2014년 4월 홍콩. 다수의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통해 대한민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그로부터 9일 후 평택항. 밀입국 노동자를 실어 나르려고 컨테이너를 연 브로커 병기(이희준)와 병우는 큰 충격에 빠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한편 자동차가 밀폐공간으로 추락해 사고를 당한 분당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김인해(수애)는 출동한 분당소방서 구조대원 강지구(장혁)에게 구조된다.

까칠한 성격의 인해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오히려 지구에게 차 안의 중요한 자료가 든 가방까지 찾아달라고 요청하지만 지구는 그런 인해가 싫지 않은 기색이다. 인해가 일을 하는 동안 지구는 인해의 가방을 찾아주고 우연히 걸려온 가방 속 핸드폰을 통해 인해의 딸 미르를 만나게 된다.

5월 2일. 밀입국 노동자를 이동시키고 돈을 받아야 하는 병기와 병우는 컨테이너에서 홀로 살아남은 몽싸이(필리핀 배우 Lester Avan)를 차에 태우고 죽전휴게소에 들른다.

휴게소에서 경찰차를 본 몽싸이는 도망을 가고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로 숨는다. 때마침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고 단지를 거닐던 미르는 숨어 있던 몽싸이를 만나게 되고 굶주린 몽싸이에게 빵을 건네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미르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병기(이희준)의 동생 병우가 갑작스럽게 바이러스로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자 분당의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환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인 요즘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고 감염속도는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유례없는 변형 H5N1 바이러스로 국가는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경기도 분당을 폐쇄하는 초유의 결정까지 내린다.   

격리된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치료제가 없다는 판단에 살아있는 사람마저 내다 버리고 불에 태우는 대규모 인간 소각이 시작된다.

인해는 죽음의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몽싸이로부터 받은 항체를 자신의 딸 미르에게 주입하고 미르는 점차 회복되며 항체를 보유하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을 치료할 유일한 희망이 되어 버린 미르. 한 아이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소방관 지구와 인해가 함께 지켜낸다는 내용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당시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코로나 시국인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재난영화 <감기>를 보면서 소방관의 입장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다소 고민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김성수 감독은 왜 굳이 소방관 강지구를 등장시켰을까. 아마도 재난영화에서 스토리를 원활하게 풀어나가기에 이만한 조건을 갖춘 직업도 없을 것이다.

일반인을 등장시켜 영웅으로 만들기에는 불필요한 배경 설명과 사족들이 많이 붙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희생과 봉사, 그리고 강한 체력과 물불 가리지 않는 기질까지 모두 갖춘 소방관을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물구조나 생활안전 출동과 같은 소방관의 역할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소방관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라는 점을 부각시킨 대사는 소방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노력에도 몇 가지 기술적인 아쉬움은 남는다. 예를 들면 영화 초반 인해를 구조하기 위해 지구가 밀폐공간에 들어가기 전 소방대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농도 측정이 생략된 부분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은 공기의 움직임이 부족하고 치명적인 독성가스가 잔류할 수 있어서 진입 전 가스측정기를 통해 반드시 위험성 여부를 파악해야 하며 진입하는 대원의 안전을 위해 산소호흡기 등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약 200명 정도가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망하는데 그중 60퍼센트가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공공재인 소방서비스를 개인적으로 동원해서 가방을 꺼내는 등 사적으로 이용한 것은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위해 이해할 수 있지만, 소방장이라는 비간부급 계급의 강지구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역할이든 믿음직스럽게 해내는 배우 장혁이 소방관을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상의 한계는 피할 수 없다.

결국 영화는 비번날에도 쉬지 않고 오지랖 넓게 고군분투하는 구조대원 강지구와 감염내과 전문의 인해가 함께 하는 좌충우돌 구조 콜라보로 정리할 수 있다.       

다른 전문적인 평가는 평론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소방관이 본 이번 영화의 평점은.

소방관 별점 :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소방검열관 소방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