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어쩌다 사장2>의 한 장면.

tvN <어쩌다 사장2>의 한 장면. ⓒ tvN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더욱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쩌면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 그 시절 그곳의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내 DNA에 이미 새겨져 있어, 그 평온함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의 DNA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tvN <어쩌다 사장2>는 그런 면에서 나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대도시의 혼란스러움과는 다른 복작거림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과 어쩌다 대형 할인마트를 맡게 된 사장과 알바생들이 겪는 혼돈의 카오스가 묘하게 얽혀 유쾌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차태현이 전화로 주문을 받아 일용할 양식의 식재료를 배달해주는 곳, 조인성이 생고기를 고기의 결 반대 방향으로 썰어주는 곳, 임주환이 카레가루를 넣은 반죽으로 새우를 튀겨주는 곳, 김우빈이 처음 뵙는 어르신의 손을 잡고 문을 열어 에스코트 해주는 곳, 이광수가 물자반 가격을 찾기 위해 지나가던 어르신의 발목을 붙잡아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마법 같은 곳. 나의 첫눈을 사로잡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장과 알바생들이지만, 사실 그곳의 진짜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김우빈이 어르신들께 저렇게 넉살이 좋았구나, 조인성도 서울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와서 촬영을 하는가보다 라며 할머니에게 너스레를 잘 떠는구나, 평소에 볼 수 없던 스타들의 소탈한 모습이 흥미롭기도 하고, 초보사장들과 알바생들이 마트를 운영하며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소동들과 난장판에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기도 하다 왠지 모를 그리운 향수에 빠져든다.
 
'맞아, 나 어릴 때 저랬는데.'
 
2022년 나주시 공산면엔 할인마트 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며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다. 1990년대 겨울이 되면 버스정류장 앞 작은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 창밖으로 목을 빼고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들이 있었다. 거창한 인류애였는지, 오다가다 든 정이었는지 모를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던 그때의 추억이 공산의 할인마트에서 되살아났다.
 
패션과 방한 그 중간쯤의 목적으로 모자를 예쁘게 쓰고 다니시는 공산의 할머니들을 보니, 겨울마다 모자를 챙겨 쓰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공병을 한가득 오토바이에 모아오신 할아버지에게선, 집안에 굴러다니는 공병을 한 병 두 병 모아 구멍가게에 가져다주고 눈깔사탕으로 바꿔 먹었던 30년 전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거스름돈 받는 걸 잊어먹고 돌아서는 아이를 보니 셈이 약했던 동네 아이들을 불러 세우던 주인아저씨의 거스름돈 받아가라는 외침이 귓가에서 맴도는 것만 같다.
 
오징어 굽는 냄새에 이끌려 오징어 한 입을 얻어먹고 돌아가는 엄마와 아들. 아침 10시부터 코인노래방에서 실력을 뽐내는 동네 유명인사 청소년. 엄마 아빠 손잡고 소중한 까까를 사러 나온 어린 아기들. 점심을 배불리 드시고 할인마트 핫플에서 쇼핑을 즐기시는 할머님들. 추운 겨울바람 따위에 굴하지 않고 내복바람으로 강렬하게 등장한 어린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나에게는 까마득히 기억에서 잊혀졌던 소소하고 평온한 일상이 추억과 함께 되살아났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꾸며지지 않아서 더 마음에 와 닿는 장면들이다.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어린 내가 그랬고, 젊었던 우리 부모님이 그랬고, 살아계시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모습과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지금 모습이 닮아있어 한편으론 놀랍고 또 한편으론 반갑다. 화려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사람들의 소박한 정이 오고가는 그곳은, 시간을 거슬러 추억의 한가운데로 나를 데리고 가 그때의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고향에 대한 향수인지,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인지, 저런 사장님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인지 모를 마음으로 방송을 보다보니 어느새 나는 힐링 중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 살기가 힘든데 힘내서 살라'는 생면부지 할머니의 말씀에 내 마음은 토닥토닥 위로도 받는다.   

나의 어릴적 기억과 닮아있는 그 평범한 일상에 '키 큰 양반, 예쁜 양반'들이 들어와 갑자기 판타지 드라마가 되었지만, 허리를 굽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는 그들은 환상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우리의 일상으로 조용히 안착한다. 판타지에만 머물지 않고 휴먼 드라마를 그려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전남 나주의 작은 마을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사장님과 함께하는 축제 같은 열흘이 그들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비록 브라운관을 통해서지만 나도 그 행복의 대열에 함께하고 있으니까. 어떤 일상으로 날 초대할지, 나의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할지 키 큰 양반, 예쁜 양반들이 일하는 그곳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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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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