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방영된 KBS <태종 이방원> 제15회에서 이성계·정도전의 요동정벌 추진 문제가 거론됐다. 사병 혁파와 맞물려 전개된 요동정벌(만주정벌)을 대하는 당시 조정의 분위기가 묘사됐다.
 
이성계·정도전이 파견한 관군이 이성계 5남 이방원(주상욱 분)과 4남 이방간(조순창 분) 휘하의 사병들을 각각 무장 해제시키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뒤 이성계 이복동생인 이화(이원발 분)가 정도전(이광기 분)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장면이 시작됐다.
 
드라마 시작 4분쯤 지나 등장한 이화는 탁자를 쾅 치며 "이런 모욕은 처음이오! 사전에 한마디 귀띔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서 내 군사들을 뺏어 간다는 게 말이 되오?"라고 불같이 항의했다.
 
그런 뒤 "대체 그 많은 군사들을 틀어쥐고 뭘 하려는 거요?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라며 정도전을 쳐다봤다. 요동을 정벌하려 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이화는 "뭐! 뭐요?"라며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슷한 분위기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어전회의 장면에서도 나타났다. 신하들은 사극의 단골 대사인 "아니 되옵니다!"를 연발하며 '무모한 짓이다', '이제 막 나라의 기틀을 잡고 있는데', '말이 되냐'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요동정벌 반대하는 움직임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실제로도 요동정벌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상당했다. 하지만 위 장면은 좀 과했다. 요동정벌 반대론자들이 정치적 동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지, 요동정벌 자체가 실현 불가능해서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1388년에 요동정벌을 반대하며 위화도회군을 할 당시, 이성계가 내세운 논리 중 하나는 '소국이 대국을 치는 것은 불가하다'다라는 것이었다. 그랬던 이성계가 1397년에 정도전과 함께 요동정벌을 추진하며 '대국'에 맞섰다.
 
한민족과 중국 간의 역학관계가 그 9년 사이에 대단히 변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성계·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추진한 것은 1388년의 논리가 상당부분은 정치적 동기에 입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정권 운영자인 최영 장군이 이성계를 요동으로 내보내려는 이유를 의심했기 때문에 그런 논리를 내세우며 쿠데타를 벌인 측면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의 요동 진출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은 1388년에 우왕과 최영이 취한 행보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어느 정도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을 명령했지만, 오로지 그런 동기에만 입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요동정벌을 위해 실제로 5만 대군을 동원하고 이들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 요동정벌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상대편인 명나라의 분위기에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다. 명나라는 조선이 요동 여진족들과 접촉할 가능성을 끊임없이 우려했다. 중국측 기록인 명나라 <태조실록>에는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3년에 명황제 주원장이 조선과 여진족의 접촉에 관한 보고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명나라 조정은 그 같은 정보수집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에도 나섰다. 요동 지역의 명나라 군사시설을 점검하는 한편, 기병대를 압록강까지 보내 상황을 파악했다. 조선이 요동을 위협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건국 직후의 조선은 명나라를 깍듯이 대했다. 이 때문에 잠깐 동안은 관계가 좋았다. 그랬던 관계가 명나라가 조선을 의심하고 압박을 하면서 파탄났다. 외교문서의 문구를 트집 잡아 "정도전을 보내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은 조선 정부의 조직 체계를 와해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성계를 대신해 국정을 관장한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추진한 것은 그 같은 명나라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었다. 명나라의 무리한 압박으로부터 왕조도 지키고 자기 신변도 지키자면 선제적인 군사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참에 사병혁파를 단행해 귀족과 종친들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명나라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크게 그를 움직였다.

'기가 막힌다'는 조정 대신들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태종 이방원> 속의 조정 대신들은 '기가 막힌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우리 시대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은 당시의 동북아 정세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다루는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시청자들의 이해 편의를 돕고자 조선과 명나라라는 두 행위자만을 등장시키는 예가 많다. 두 행위자만 등장하는 상태에서 조선이 요동정벌을 추진하는 장면이 나오게 되면, 시청자들로서는 이성계와 정도전이 무모한 짓을 시도했다는 느낌을 갖기 쉬워진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는 그 외에도 더 있었다. 동아시아 해적들과 유구왕국(오키나와)과 일본도 만만치 않았지만, 몽골과 여진족은 조선 및 명나라와 더불어 이 질서의 핵심 행위자였다. 조선·명나라뿐 아니라 몽골·여진족도 주요 행위자인 상태에서 요동정벌이 추진됐기 때문에, 이 정벌의 성공 가능성은 이 같은 전체 구도 속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1368년에 명나라가 중국대륙을 장악한 뒤로 몽골족 원나라는 지금의 몽골 땅으로 축소됐지만, 그 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북원으로 불리는 이 나라는 1402년까지 존속했다. 요동정벌이 추진될 동안에는 아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요동 지역 중에서 명나라가 실제 관할한 곳은 요동 서부에 불과했다. 동부는 여진족 군소집단들의 수중에 있었다. 이 집단들은 형식적으로는 조선 혹은 명나라를 황제국으로 떠받들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몽골과 여진족 역시 상당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가 조선과 싸우려면 이들에 대해서도 전략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조선이 이들과 연계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조선과의 싸움에 너무 많은 힘을 투입하는 것은 위험했다.
 
당시 명나라의 도읍은 양자강 주변인 남경에 있었다. 지금의 북경(베이징)으로 천도한 것은 1421년이다. 황제가 남쪽에 있었다는 것은 주력 부대가 그 주변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북방 요동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명나라 내부에 분열적 요인까지 있었다. 요동과 가까운 북중국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 인물은 황제가 아닌 넷째아들 주체(훗날의 영락제)였다.
 
오늘날의 베이징과 그 주변을 다스리는 연왕(燕王) 지위에 책봉된 주체는 명나라판 수양대군 혹은 명나라판 이방원이었다. 넷째아들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를 꿈꿨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황실과 주체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황실과 연왕 사이에 알력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군이 압록강을 넘을 경우에 남경의 황실이 총력을 다해 대응하기는 힘들었다. 남경 조정으로서는 연왕 주체에게 군사적 부담을 지우려 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의 전쟁에서 힘을 빼다가 연왕에게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연왕 주체 역시 이 전쟁으로 자신의 군사력이 대거 손실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몽골과도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연왕과 조선의 싸움이 연왕과 몽골의 싸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조선과 명나라 외에 북원과 여진족 역시 주요 행위자였다는 사실, 명나라 내부의 분열적 요인으로 인해 남경 황실이 요동 전투에 전력을 기울이기 힘들었다는 사실은 이성계·정도전의 요동정벌이 그렇게 허황된 시도만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드라마 속의 조정 대신들은 "뭐! 뭐요?"라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정도전이 싫고 사병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뉘앙스의 차이가 <태종 이방원> 제15회에 제대로 투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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