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 오늘로 20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천여 명에 가까운 소방인력이 투입됐지만 여전히 강한 바람으로 인해 진압에 애를 먹고 있다는 기사들이 속속 전해져 온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4일 밤 10시를 기점으로 경북과 강원지역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해마다 발생하는 산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미국은 산림이 울창하고 면적이 넓어 한 번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 면적과 피해액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경북과 강원지역의 산불이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조속히 진화되길 바라며 이번 주는 또 다른 산불 영화 한 편을 소방관의 입장에서 리뷰하고자 한다.     

2017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는 애리조나주 프레스콧의 '그래닛 마운튼 산불 진압대원(Granite Mountain Hotshots)'들의 일과 삶, 그리고 비극적인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로 2013년 '야넬 힐 화재(Yarnell Hill Fire)' 진압 도중 순직한 19명의 소방대원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 Universal Pictures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동료 소방대원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 내용이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순직 소방대원들을 추모하려는 감독의 오랜 연구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산불 시즌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어려움, 그에 따른 가족 간 불화,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인한 산불 진압대 승급 문제, 출동 등급이 다른 소방대간의 충돌 등 실제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어 소방 영화로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주인공 에릭 마쉬(조슈 브롤린)는 애리조나주 프레스콧 지역 출동팀 크루 7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소방대가 타입(Type) 2에 해당하는 후발대라는 역할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혹시나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한 팁 하나. 미국의 산불 진압대인 '핫샷(Hotshot)'은  Type1, Type2 1A, Type2 등 세 등급으로 나뉘며 하나의 크루는 대개 20명 내외로 구성된다. Type1은 Type2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더 많은 훈련과 자격요건을 이수해야 한다.  

핫샷은 산불 발생 초기 단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맞불을 놓거나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등 대단히 제한된 보급 자원을 가지고 상당 시간을 민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해야 한다. 핫샷은 미국 산림청, 국립공원 관리청, 인디언 보호국, 토지관리국 등에서 조직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연방차원에서는 '부처 합동 화재센터(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에서 핫샷 관련 조정업무를 한다.

보수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직급이나 경력에 따라 시간당 17달러에서 32달러 등 다양하며 연봉으로 따지면 7천만 원에서 가장 많이 받는 곳은 1억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하는 일은 비슷해 보여도 소방대의 등급이나 연봉은 소방대원의 자부심과 직결되는 부분도 있다.   

영화 속에서도 에릭이 속한 크루 7(Type 2)은 현장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Type 1 핫샷 대원들로부터 자신들이 처리한 일의 뒷정리나 잘하라며 철저하게 무시 당한다.

에릭은 자신의 소방대가 진정한 핫샷 크루가 될 수 있도록 지역 소방서장인 두에인 스타인브링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두에인은 이제까지 지역 소방대가 핫샷 크루가 된 사례가 없으며 설령 된다고 해도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이 아닌 화재현장에서 보내야 한다며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에릭은 산불 진압이라는 위험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그의 일방적인 희망은 이제 아이를 낳고 진정한 가족을 이루고 싶은 그의 아내 아만다와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한편 실직자이자 약물남용으로 망가진 인생을 살고 있는 브랜든 맥도너는 전 여자 친구가 자신의 딸을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까지의 삶을 후회한다. 그는 보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산불 진압대원 공고에 지원하고 우여곡절 끝에 합격하게 된다.

열심히 훈련한 덕분에 크루 7은 Type 1 핫샷 크루로 승급할 수 있는 평가 기회를 부여받게 되고 깐깐한 베테랑 평가관에게 인정을 받은 그들은 마침내 그래닛 마운튼 핫샷 크루로 정식 승격된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종결될 것만 같았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거센 불길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당당히 Type 1 핫샷 크루가 된 이들은 다양한 산불 화재현장에 투입되고 역사적 가치를 지닌 향나무를 화재로부터 지켜내면서 지역의 영웅이 된다. 

현장활동 중 브랜든은 방울뱀에게 다리를 물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브랜든의 어머니는 손녀를 위해 아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브랜든은 어머니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상급자인 에릭에게 건물 화재 진압대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다고 이야기해 보지만, 에릭은 이미 범죄경력이 있는 브랜든이 건물 화재 진압대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에릭의 아내는 가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브랜든을 지지한다며 에릭과 충돌하고 이를 계기로 에릭은 심경의 변화를 맞이한다.    

그러는 와중에 그래닛 마운튼 핫샷 크루는 또 다른 출동임무를 부여받는다. 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에릭은 자신의 바로 후임인 제시에게 조만간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말한다. 브랜든에게도 그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직 변경을 돕겠다고 말한다. 이런 에릭의 심경변화가 왠지 모를 불안함을 가져다준다.  

현장에 도착한 에릭과 대원들은 맞불을 놓기 위해 작전을 폈지만 출동한 항공기가 이를 산불로 오인해 진압하면서 대원들은 할 수 없이 작전을 변경하게 된다. 에릭은 팀의 막내인 브랜든에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산불의 진행방향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면서 현장에서 다급히 대피한 브랜든은 천만다행으로 또 다른 핫샷 크루에 의해 구조되고 지휘본부로 대피한다. 하지만 현장의 대원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강렬한 화재에 의해 고립되면서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용 보호 셀터 속에 몸을 피신하게 된다. 그렇게 거센 화재가 폭풍처럼 대원들을 휩쓸고 계속되는 무전에 그 누구도 응답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길이 지나가고 현장에 도착한 첫 번째 헬리콥터로부터 대원 19명 모두 사망했다는 무전이 전달된다. 프레스콧 중학교에 모인 대원들의 가족은 나머지 한 명의 생존자가 혹시 자신의 가족이 아닐까 하는 아이러니한 희망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브랜든이 학교 체육관에 들어서자 이를 본 대원들의 가족은 자신의 가족이 생존자가 아니라는 깊은 슬픔에 잠기고 브랜든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울부짖는다.   

그렇게 사고가 난 지 삼 년이 지나고 브랜든은 과거에 대원들과 함께 구했던 향나무에 자신의 딸을 데리고 방문한다. 그렇게 소중하게 지킨 나무에는 또다시 지켜야 할 소중한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다.

슬픈 엔딩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순직한 소방대원과 그들의 역할을 했던 배우들의 사진이 교차되고 엔딩 크레디트에는 유일한 생존자 브랜든 맥도너의 묵직한 소감이 적혀 있다. 

"It is no longer the guilt of surviving that I carry with me, but the honor of knowing my brothers as you know them, as heroes. (더 이상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보다는 여러분들이 영웅으로 기억하는 내 형제들을 알았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살아갈 것입니다.)"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그래닛 마운튼 핫샷 크루가 자신들이 구한 향나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그래닛 마운튼 핫샷 크루가 자신들이 구한 향나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Granite Mountain Hotshots


이 영화는 소방관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프고 약한 곳을 부각시켜 소방관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임무를 위해 노력하는 불곰 같은 소방관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어서 좋다.

다른 전문적인 평가는 평론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소방관이 본 이번 영화의 평점은 다음과 같다.

소방관 별점: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건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소방검열관 소방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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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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