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옛 소련 소속 국가들 중 우크라이나가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이후 30년 남짓 러시아와 서방세계 중간에서 어떠한 정치적 입장과 군사적 태도를 취해왔는지에 대해서 전문적 지식은 거의 없고, 다만 우크라이나가 '오렌지혁명'의 나라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오렌지혁명은 우크라이나에 2004년 친러정권을 수립하고자 부정선거를 자행한 야누코비치 규탄시위의 상징색이 오렌지색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라 한다. 오렌지혁명은 당시 야누코비치 당선자를 무효화하고 '대선 재투표'라는 성과를 올린 전국민 저항시위라는 점에서, 3.15부정선거로 촉발되어 4.26이승만 하야성명을 이끌어낸 우리나라의 4.19혁명을 빼닮았다.
 
영화 스틸컷 광장시위대의 모습(2004년처럼 오렌지색 헬멧을 쓴 사람들이 많다.)

▲ 영화 스틸컷 광장시위대의 모습(2004년처럼 오렌지색 헬멧을 쓴 사람들이 많다.)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적 저항시위를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2004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10여 년 뒤(2013년 11월〜2014년 2월)의 사건을 다룬다. 그러니까 대규모 국민 저항시위가 십년 간격으로 우크라이나에 재현됐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첫 번째와 두 번째 저항시위가 표적으로 삼은 사람이 얄궂게도 동일인물이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부정선거 전력이 있는 전직 총리가 어떻게 10년 만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유럽연합(EU)에 들어가겠다"고 확언했던 게 주효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대놓고 친러 성향인 야누코비치가 EU에 순순히 들어갈 가능성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속았고, 야누코비치는 EU 협정서 서명 업무를 않고 버티다가 종국엔 무산시켜 버렸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전체 여론은 '유럽연합 소속'에 확연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랬기에 EU협정서 서명이 무산되자 2013년 11월 21일에 대규모 저항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윈터 온 파이어>는 그 저항시위를 '광장시위'로 부른다. 시민들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장시위 소식을 공유했고, 음악공연이나 평화행진 등의 프로그램으로 시위를 즐기며(?) 참여자 수를 늘려갔다. 
 
그러나 비겁한 야누코비치 정권은 광장시위 대열 안에 폭력행동을 유발할 사람들을 심어놓아 분란을 유도했고, 야금야금 폭력진압의 명분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폭력 진압을 시작했다. 고무탄에 실탄을 섞고, 최루탄뿐 아니라 수류탄을 사용했으며, 나중엔 저격수를 투입했다. 그리하여 인권단체 집계에 따르면, 93일의 광장시위 기간 동안 125명이 사망하고 65명이 실종되었으며, 1890명이 다쳤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시민들을 구타하는 경찰과 '베르쿠트(특공대)' 그리고 '티투쉬키(범죄자 출신으로 구성된 용병부대)'의 폭력적 움직임이 80년 광주항쟁 자료사진들과 너무도 흡사해,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스틸컷 시위 진압 장면

▲ 영화 스틸컷 시위 진압 장면 ⓒ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시위 진압 장면

▲ 영화 스틸컷 시위 진압 장면 ⓒ 넷플릭스

 
 
그 같은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광장시위 대열은 흩어지지 않았다. 때로 지치기도 했지만, 그들은 3시간마다 기도하듯 국가를 불렀고, 그때마다 힘을 냈다. 아닌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애국가는 레퀴엠 같기도 하고, 나지막한 기도송, 찬송가, 비장한 군가 혹은 응원가 같기도 하다. 그 노랫말은 굉장히 직설적이다. 바로 이 구절.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우리의 애국가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보다 확실히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11월 말에 시위 시작하고 나서 해를 넘기며 70일, 80일, 90일이 지나도 광장시위대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광장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고, 출신 민족과 신앙 여부(러시아정교, 이슬람교, 유대교, 무종교 등등)도 초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진압방식은 더욱 폭력적으로 비화됐지만,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더욱더 단단히 결합했다.  

마침내 2월 22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항복했다. 밤중에 짐을 싸서 도망가고 말았다. 더는 우크라이나를 대표할 수 없었고, 더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탄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얼핏 '시민의 승리'인 듯한 인상을 풍겼으나, 안타깝게도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러시아군대가 개입해 이듬해(2015년) 봄이 올 때까지 6천 명 이상이 사망하게 되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우크라이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러시아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직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스틸컷 광장시위에 참여했던 한 우크라이나인의 말

▲ 영화 스틸컷 광장시위에 참여했던 한 우크라이나인의 말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알려주는 것처럼 2013년-2014년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꿋꿋이 정말 끈질기게 저항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실제로 그때 광장시위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다수 등장해 자기들의 사연을 생생히 들려준다. 

광장시위대에서 자원해 일한 한 우크라이나인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정기적인 야간 보초임무를 나갈 때 어린 딸이 제게 와서 가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가 어른이 되면 이들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더군요. (…) 지금 끌어내리지 않으면 영영 불가능할 거라고 했죠." 

다큐멘터리 거의 끝 부분에 나온 한 우크라이나인의 말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아직 자식이 없는 사람들조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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